#05. 누구나 순산하는 건 아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by 팔랑심

어느 날 접수된 초진 산모의 병력 예진표를 보니 나이는 30대 중반에 키가 150cm가 채 안되었다.

순산하지 못하고 난산이 되기 쉬운 상황들이 몇 가지 있다. 고도 비만 산모, 너무 마른 산모, 체구가 너무 작은 산모들이 그런 경우들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며 설사 그렇다 해도 필요하면 제왕절개로 출산하면 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가급적 산모의 자연분만을 돕고자 하는 편이고 산모 분들도 자연분만을 꼭 하고 싶어서 일부러 우리 병원을 찾아서 오신 분들이 많아서 너무 작은 체구의 산모나 비만한 임신부의 경우 자연 분만을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난산이 되는 수가 많다. 난산으로 고생하다 응급 수술을 하게 되면 산모도 그만큼 힘들고 아기 또한 위험에 빠질 수가 있다. 그래서 산모들이 처음 오시면 진료 챠크에 산모의 키와 임신 전 체중, 비만 지수를 반드시 기록하여 둔다. 물론 산모 수첩에도 기록해 드린다.


사례로 든 산모의 경우 나로서는 난산의 우려가 매우 높은 산모였기 때문에 가능하면 소아과 선생님이 상주하는 대학 병원을 추천하였지만 내 설득은 실패했다. 이렇게 대학 병원으로 가서 진찰받으시도록 권하는 경우 소수이기는 하지만 어떤 분은 찾아온 산모를 쫓아낸다고 서운하게 생각하면서 항의하고 가시는 분도 있었다. 내가 말하는 방식이 세심하지 못하고 거친 데다가 인상이 험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오신 분들 대부분은 이런 설득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료를 다닌다. 그런 분들 중 2 / 3 정도는 자연 분만을 했고 나머지는 난산으로 결국 제왕 절개 수술을 통하여 출산했다. 내가 출산을 도운 분들 중 보통 1 / 10 정도만 수술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수술률이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평범한 경우 즉 보통의 체격에 나이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인 경우라도 어떤 산모가 난산이 되고 어떤 산모가 순산을 할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진통이 오고 나서 출산의 진행 과정을 보고 정상 과정인지 아닌지 판단하여 대응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모인 많은 사례를 바탕으로 학자들이 통계를 내서 평균에서 많이 벗어나는 경우 난산으로 정의한다. 난산의 분류는 잠복기 연장부터 개대 지연, 개대기 하강 지연, 개대기 하강 시간 연장, 만출기 정체 등으로 다양하다. 도대체 무슨 암호 같은 말인지 일반 사람들은 들어도 알 수 없는 용어일 것이다. 의사인 나에게는 용어는 낯설지 않지만 그 기준을 일일이 확인해 보지 않으면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지 전문가도 알기 어렵다.


출산 산모를 옆에 두고 이런 수치를 일일이 보아 가면서 난산인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동안의 경험으로 정상적 진행인지 난산인지 판단을 한다. 그럼에도 진통이 시작되기 전에 난산이 될 산모와 순산이 될 산모를 자로 긋듯이 분명하게 알아내기는 30년에 가까운 산부인과 의사 경험으로도 쉽지 않다.

의사들은 산부인과 분야에서 노벨상을 타는 사람이 나온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을 알아낸 사람일 것이라고 말한다.

첫째, 왜 출산 진통이 오고 언제 오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

둘째, 원하는 시간에 자연적 진통이 오도록 하는 약물이나 처치 방법.

셋째, 순산할 수 있는지 아니면 수술을 하게 되는 경우일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

대부분 40주 전후하여 진통이 오지만 아직도 그 정확한 기전은 모르며 진통 촉진도 옥시토신과 같은 약물이 있지만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정확한 출산 시간까지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위에 말한 비만 지수, 내진 소견, 초음파 검사 상 태아 크기 등을 통하여 순산 여부를 짐작하지만 그건 눈 감고 코끼리 만지는 수준에 가깝다.


롤프 메르클레라는 독일의 심리치료사는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타고난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어떤 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이 분이 산부인과 의사를 친구로 두었다면 이렇게 말하기는 좀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순산과 관련해서는 이 말이 완전히 반대로 작용한다. 임신과 출산을 기다린 일이고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순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보다 순산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순산을 위해 많이 노력하는 임신부라 하더라도 타고나기를 골반이 넓게 타고 난 사람보다 순산하기가 더 쉽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골반의 크기는 직접 내진을 통하여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는데 대체로 키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어서 키가 크면 골반도 넓다. 넓이만큼 아니 넓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골반 관절의 유연함이다. 나이가 젊을수록 관절이 유연하기 때문에 순산이 가능할지 예측하는 데에는 나이도 중요하다.


위에 사례로 든 임신부는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자연 분만을 했다. 나이가 30대 후반이라 골반이 유연하지 않고 체구가 아주 작은 임신부가 나에게 순산할 수 있는 비결을 묻는다면 나는 예의상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속마음으로는 넓은 골반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지는 뒤에 말하겠다.

임신한 산모는 누구나 많이 아프지 않고 진통도 오래 끌지 않는 순산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일부는 어쩔 수 없이 난산이 된다. 협골반처럼 타고나는 체형이 그런 경우도 있고 자궁 종양이나 태아 위치 이상처럼 자신의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결정되는 것도 있다. 그리고 모든 거대아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거대아처럼 임신부 개인의 식생활 양상과 운동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있다. 세상사는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출산도 마찬가지다. 체형처럼 타고 나는 부분이야 어쩔 수 없지만 영양과 운동처럼 개인의 노력에 의해 바뀔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외모든 체형이든 바꿀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두면 삶이 고단해진다. 물론 요즘은 성형 수술을 통해 외모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고 심지어 성장 호르몬 주사나 수술을 통해 키를 늘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한계와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산부인과 의사로서 순산을 원하는 산모들께 전하고 싶은 말은 바꿀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두기보다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순산이 될지 난산이 될지는 타고난 체형에 많이 달려 있지만 노력도 상당히 영향을 끼친다. 결국 같은 체형일 경우 노력을 했느냐 아니냐가 순산과 난산을 좌우하게 된다. 물론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난산이 되거나 혹은 수술을 하게 될 수 있다. 그런 경우 괜한 노력만 하고 순산도 못하였으니 손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순산 체조를 열심히 했으나 순산을 못한 분들이 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런 정성이 깃든 노력으로 비록 원래 목표하던 순산은 얻지 못했지만 체력을 얻었고 후회와 미련을 갖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들은 순산 못지않게 가치 있는 것들이다. 원래 산다는 것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 삶에서는 목적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사실 목적지라면 누구나 무덤 밖에 더 있겠는가? 무덤에 가기 위해 그렇게 서둘러서 앞뒤 안 보고 달려갈 필요가 과연 있을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 섬의 왕이었다. 어느 날 피그말리온은 상아로 아름다운 여인을 조각하고 그 조각상을 실제 연인처럼 사랑했다. 그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저 조각과 같은 아름다운 여인을 보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의 소원이 이루어져 조각상은 살아 있는 여인이 되었다. 갈라테이아가 그녀의 이름이다. 조각에 생명도 불어넣는다는 이야기는 그저 재미있는 신화일 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미국의 교육학자인 로젠탈은 누군가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 기대가 대상에게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그런 현상을 피그말리온 효과 또는 그의 이름을 따서 로젠탈 효과라고도 부른다.


조각상에 삶을 불어넣는 정도의 노력과 열정을 쏟아부었다고 해서 모든 임신부가 순산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피그말리온의 노력과 바람에도 불구하고 조각상이 생명을 얻지 못했다고 해도 그의 삶은 그리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비록 함께 소통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지만 그런 대상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한 간절한 노력을 기울 일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를 그린 화가들이 몇 명 있다. 그중 나는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이 그린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가 제일 마음에 든다. 그 이유는 여인의 모습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의 그림에서 갈라테이아는 산부인과 의사가 좋아할 만한 좋은 골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여기 실은 그림-

장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5_Gerome_Pygmalion_Galate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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