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당신이 최초는 아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by 팔랑심

난산으로 진통 중인 한 산모가 숨을 헐떡 거리면서 어지러워하고 있다. 호흡은 빨라지고 의식은 간혹 가물가물해지며 놓으려 한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과다 출혈로 인한 증상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궁이 대정맥을 눌러서 나타난 증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호흡증후군에 의해서 생긴 증상인 경우가 제일 많다. 과호흡증후군은 호흡을 지나치게 빠르게 한 탓에 이산화탄소가 과도하게 배출되고 결과적으로 동맥혈의 이산화탄소가 정상 범위 아래로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호흡곤란과 어지럼증이 나타나고 심하면 기절하기도 한다. 진통 중인 산모에게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아주 위험하다. 산모에게도 위험하지만 실신으로 하여 힘도 줄 수 없고 태아에게 가는 산소량이 대폭 줄어서 태아도 위험해진다. 이런 과호흡증후군은 폐렴이나 폐색전증 혹은 심장 질환으로 오기도 하지만 심한 스트레스나 불안감으로 생기는 경우도 있다. 진통 중에는 통증에다 불안감이 더하여 이런 증상이 잘 생긴다. 이때의 조치로는 긴장을 풀고 마음을 안정시키도록 도우면서 필요하면 검은 비닐봉지를 코에 씌워 천천히 호흡하도록 돕는다.


사람은 살면서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 임신 중에도 그런 순간들이 적지 않지만 특히 여성에게 출산이란 아마도 일생을 통틀어 가장 긴장되고 두려운 순간일 것이다. 출산에 따르는 두려움처럼 대상이 분명한 것이든 아니면 밤길을 걸을 때의 두려움처럼 그저 막연한 것이든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는 사실 쉽지 않다. 모든 이들에게 작용하는 두려움 극복 방법도 없다. 미국의 유명 사회자인 오프라 윈프리는 두려움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 두려움은 우리가 그 두려움에 너무 큰 비중을 두었을 때 생겨 납니다. 우리가 그 두려움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 두려움은 유령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두려움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치료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용기입니다."

그녀의 방법은 살면서 겪는 보통의 두려움에 대한 일반적 극복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어느 정도 도움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출산을 앞둔 임신부들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하여는 산부인과 의사인 나로서는 조금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싶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윌슨 교수는 미토콘드리아 DNA가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이 된다는 사실과 또 돌연변이는 일정 한 횟수로만 반복될 것이라는 추측을 바탕으로 1987년에 과학 잡지인 네이처 지를 통해 주목할만한 연구 보고를 발표하였다. 그는 전 세계 다섯 개 대륙을 대표하는 200여 명 여성의 태반에서 얻은 조직을 통하여 미토콘드리아 DNA의 염기 서열을 상호 비교하여 가계도를 작성하였다. 그 결과 그는 인류의 어머니인 이브는 14만 년 전에서 28만 년 전 사이에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여성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브의 자손들은 약 12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져 나가 각 지역에 적응하면서 지역의 특성에 따라 백인과 황인 또 흑인으로 갈라졌으며 기존에 그곳에 있던 원시 인류는 진화 과정에서 도태되어 멸종되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보고는 인류가 20만 년 전부터 지금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출산을 해왔다는 사실을 함께 말해 준다. 출산의 순간은 여성에게 위험하고 힘든 과정인 것은 사실이다. 그 와중에 희생된 산모나 아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여성들이 이런 힘든 과정을 완벽히 잘 해냈다. 지구 상에 넘쳐 나는 이 많은 인간들이 그 증거다. 그러므로 출산을 하는 임신부들은 본인들의 그 일이 20만 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되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한 세대를 30년쯤으로 본다면 28만 년은 대략 만 세대에 가까운 기간이다. 즉 내가 이 세상에 있기까지 만 번쯤의 어머니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중 단 한 명이라도 출산에 실패하였다면 나는 태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제 출산을 앞둔 임신부는 만 번에 더하여 만 한 번째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즉 지금 출산을 앞둔 당신이 처음 출산하는 어머니는 아니라는 말이다. 이전에 숱한 어머니들의 성공의 역사가 DNA에 남아 있다. 그러므로 당신도 무사히 그 일을 해낼 것이다. 이런 내 이 이야기가 출산을 앞둔 임신부들에게 두려움을 줄여주는 데 기여하면 좋겠다. 이것이 내가 출산의 두려움 앞에 선 어느 임신부에게 해 주고 싶은 첫 번째 조언이다.

두려움을 줄여주는 두 번째 조언은 출산을 돕는 의사와 관계된 것이다. 출산 순간에 의사의 역할은 정상적인 진행 과정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판단하여 빠르게 조치하는 것이다. 의사는 그대로 자연분만을 진행해도 좋을지 아니면 의료적 개입을 할 것인지 결정을 한다. 그러니까 출산에 대하여 상당한 지식과 경험으로 무장한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안게 될 두려움이 있다면 전문가인 의사에게 넘기고 당신은 오로지 순산에 집중하고 곧 만날 아기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산부인과 의사에게는 그렇게 두려움을 대신 떠안는 역할도 있다. 어쩌면 산부인과 의사는 산모가 겪어야 할 두려움과 걱정을 대신 먹고사는 존재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물론 출산이 주는 그런 두려움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덜 긴장하는 의사도 있고 과도하게 긴장하는 의사도 있다. 전자가 강심장이라면 후자는 약심장이다. 약심장이라는 말은 사실 없다.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여하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약심장이다.

나와 친한 어느 산부인과 선생님, 편의상 J 선생님이라고 해두자. 그 J 선생님이 출산을 도왔던 아기의 상태가 안 좋게 되어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면서 의료 분쟁에 휘말렸던 적이 있다. J 선생님은 아기의 아빠가 요구한 합의금이 너무 많아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합의에 응하지 않고 법정에 해결을 맡기자고 하였다고 한다. 며칠 뒤 아기 아빠가 신문지에 둘둘 싼 길쭉한 어떤 것(아마 칼일 것이라고 하였다.)을 들고 진료실로 불쑥 들어와서는 J 선생님의 배에 그것을 갖다 대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 새끼야, 여기서 같이 죽던지 아니면 제대로 보상금을 지불해!"

그러나 J 선생님의 대응은 보호자가 기대한 것과 달랐다. J 선생님은 오히려 배를 앞으로 쑥 내밀면서 말했다고 한다.

“찔러라 찔러. 나는 그렇게 큰돈을 배상할 만큼 잘못한 것도 없고 그런 큰돈도 없다. 그러니 정 억울하면 나를 찔러라.”

그러자 오히려 보호자가 뒤로 움찔 물러나면서 부탁을 했다고 한다.

"왜 이러세요? 원장님. 위험하게. 저희 집이 가난하고 아기 치료할 병원비도 없어요.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

안타까운 그 사건은 보호자와 합의하여 적절한 수준에서 보상하여 해결하였다고 들었다. J 선생님은 내가 아는 가장 강심장인 산부인과 의사다.


약심장인 나는 앞으로도 밤새 진통하는 산모의 옆방에 쪼그려 누워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진통 때문에 내지르는 비명 소리에 수시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출산 후 출혈이 다른 산모들보다 조금이라도 많다 싶으면 산모의 옆을 잠시도 떠나 있기가 불안해서 수시로 내진하고 살펴보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산부인과 의사를 하는 동안은 약심장은 불치병이다. 출산에 임해 산부인과 의사가 느끼는 두려움은 아기의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새로운 생명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방식으로 보상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새로운 한 생명을 무사히 인도했다는 보람은 다른 것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기쁨이다. 이 세상에 대가 없는 기쁨은 없다.


성경에 나오는 이브를 그린 화가는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 내가 고른 이브는 수잔 발라동이 그린 “아담과 이브”에 나오는 이브다. 그녀가 그린 이브는 보통의 이브들과는 다르다. 아담의 부속물처럼 여겨지는 이브가 아니고 한 개체로서의 당당한 이브의 모습이다. 아마도 사생아로 태어났고 그녀 역시 사생아를 낳았던 험난했던 삶과도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낳은 아이는 나중에 화가가 되는데 모리스 위트릴로가 그 사람이다. 발라동의 이브는 두려움이 없고 부끄러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벌거벗은 모습이다. 나뭇잎으로 음부를 가리고 있는 아담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여기 실은 그림-


수잔 발라동의 “아담과 이브”



3_Valadon_AdamEv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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