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의 소설가다. 우리나라에는 장발장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온 소설 레미제라블을 쓴 작가다. 위고는 소설가이기도 했지만 그림도 꽤 많이 그린 화가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가 흔히 아는 그림 재료인 수채화나 유화 물감이 아니라 주로 잉크나 먹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다. 아시다시피 물감에 비하여 잉크나 먹은 단색의 재료이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동양화의 수묵화를 많이 닮았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그림 나의 운명이라는 그림을 보게 되었다. 어쩌다 보게 된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갈색톤의 단조로운 그림으로 파도치는 바다가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고 그림의 하단부에는 친절하게 자신의 이름인 Hugo와 그림의 제목인 Ma Destinee를 써두었다. 일본의 우키요에 (판화의 일종) 화가 중 한 명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그림 중에 부경 36 경이라는 것이 있다. 그 시리즈 중 "가나가와의 파도"라는 그림이 있는데 느낌은 다르지만 구성이 상당히 비슷하다. 호쿠사이는 서양의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의 파도 그림은 서양에도 꽤 알려진 그림이니 위고가 호쿠사이의 그림을 참고했는지도 모르겠다. 위고의 그림이 호쿠사이의 그림보다 20여 년 뒤에 그려진 것이기도 하니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여하튼 파도는 인생의 험난함을 비유하는 대상으로 종종 쓰이다시피 자신의 운명을 파도에 비교한 위고의 삶도 순탄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위고에 비하면 나의 삶이란 정말 지루하고 단조로운 여정에 불과하다.
살면서 이건 운명이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어떤 사건일 수도 있고 혹은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기도 하고 나 스스로에게도 많이 물었던 질문은 그것이다.
"왜 산부인과 의사를 선택했어요?"
그때마다 "산부인과 의사를 하도록 운명 지어졌나 봐요. 글쎄 이런 일이 있었지 뭡니까?" 하고 그럴싸한 에피소드를 말해주면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나나 좋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대답은 그것이 아니다.
의과대학은 2년의 예과 과정과 4년의 본과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과 시절은 시간 여유가 많은 편이라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 나는 미술반 동아리에서 1년 정도 활동을 했다. 잠깐 배우다 만 상태라서 데생만 좀 해 보았고 유화는 몇 점 그려 보지 못했다. 그때 그렸던 몇 점의 그림 중에 유일하게 기억나는 그림은 탁자에 올려놓은 바이올린을 모델로 그린 그림이다. 나는 그때 왜 바이올린을 그렸을까? 음악에는 문외한이라 바이올린과 첼로, 비올라의 구분도 잘 못하는 처지의 내가 말이다. 오래전 일이므로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내 추측으로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첫 번째 이유, 인물이나 풍경은 초보자가 그리기 쉽지 않고 구도도 잘 정해야 하지만 정물은 대상이 움직이지도 않으며 구성도 단순하여 나와 같은 그림 초보자가 그리기에 쉽다. 두 번째 이유, 사실 더 직접적인 이유일 텐데 그때 마침 미술반 동아리에 낡은 바이올린이 하나 뒹굴고 있었다. 나의 최초의 완성 미술 작품, 더군다나 함춘 미전에도 출품했던 그 그림은 미술반을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 되찾아 오지 못하고 잃어버렸다.
대부분 문화권에서 음악은 탄생이나 죽음과 관련이 깊다.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도 단순한 도구 이상의 의미가 있다. 러시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마르크 샤갈의 그림에는 바이올린이 많이 나온다. 바이올린 연주자, 녹색의 바이올린 연주자, 푸른 바이올린 연주자,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 등이 그 예다. 러시아에서는 아기가 태어났을 때나 결혼할 때 축하의 의미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물론 내가 바이올린 그림을 그린 것과 새 생명의 탄생과는 아무 관계는 없다. 바이올린을 그릴 당시 러시아의 문화에 대하여도 물론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 그림이 내가 산부인과를 하게 될 운명의 암시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내가 이곳 마포구에서 개업한 지도 이제 20년이 다 되어 간다. 마포구는 이전까지 나와 아무 인연이 없는 곳이었다. 내가 아내와 약혼을 하기 전까지는. 학창 시절 단 한 번도 이쪽 동네로 놀러 온 적도 없다. 서대문구의 반대편인 동대문구에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냈으니 서대문구의 옆인 마포구도 올 일이 없었다. 그러나 우연하게도 내가 아내와 약혼을 한 곳이 마포구에 있는 서교 호텔이었다. 내가 산부인과 의사로 개업하여 지낸 곳도 거의 대부분 서대문구와 마포구다. 바이올린을 그린 것이나 내가 지금 마포구에 자리를 잡은 것이나 그 모두는 사실 우연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운명을 믿는 운명론자는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이 우연에 의하여만 굴러간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너무 삭막할 것 같다. 산부인과와 바이올린 그림과 내가 모두 어쩌다 발생한 우연으로 만났다는 것보다는 미리 예정된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그럴싸해 보인다. 내가 아내와 결혼하게 된 것도 미리 예정된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우연히 그날 내 친구를 만났고 내 친구의 여자 친구를 함께 만났고 내 친구의 여자 친구의 동성 친구를 만났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릴 때 동대문구에 사는 것이 지긋지긋하여 나는 그 반대인 서대문구에 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하였던 것을 기억해 본다면 모든 것이 과연 우연이기만 한 지는 의문이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다는 것도 운명일 수도 있고 우연일 수도 있다. 방금 출산을 끝내고 아기를 산모의 가슴에 안겨드리면 감동에 겨운 산모와 남편들이 하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행복하게 잘 살자."
각자 우연히 만났다고 생각하든 운명에 의해 필연적으로 만났다고 생각하든 간에 드디어 두 사람 사이에 이제는 피로 엮인 새 생명이 탄생했다. 하나의 생명은 어쩌다 저절로 우연하게 생겨나지 않는다. 숱한 우연이 쌓이고 셀 수 없는 날들이 만난 결과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운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기 실은 그림-
Hugo의 "나의 운명",
-함께 보면 좋은 그림-
Hokusai의 "가나가와의 파도",
Chagall의 "녹색의 바이올린 연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