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이제는 신혼이 아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by 팔랑심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의 조언을 진지하게 들었다면 어쩌면 지금 의사가 아니라 화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나 사이에 아이는 셋을 두었다. 셋 중 둘은 미대에 입학했다. 여동생의 두 딸도 모두 미대를 나왔다. 남동생의 두 딸은 미대가 희망 사항 중의 하나였으나 다른 분야로 갔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집안에 미술가의 피가 흐르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 후기의 화가 심사정이 직계 조상인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재능도 별로 없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감수해야 하는 편이라고 들어서 미대 쪽은 감히 선택하지 못했고 편한 길을 가고 싶은 소시민적 욕심으로 의사가 되고 말았다. 의과 대학 때는 잠시 미술 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때 그린 그림은 지금은 어디 있는지 찾을 길이 없고 아마추어로서 그린 작은 그림 한 개가 병원 어느 구석엔가 걸려 있다. 미술에 대하여는 못 이룬 첫사랑처럼 아련한 아쉬움이 남아서 지금도 서점에 가면 미술 서적 코너는 반드시 들리곤 한다.


음악과는 다르게 미술은 진품을 직접 보거나 진품에 가까운 작품을 감상하는 기회가 거의 없다. 미술관 나들이를 갈 만한 정성도 없어서 그저 책에 실린 그림을 감상하고 그림과 얽힌 이야기를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산다. 얼마 전 레스카페라는 분이 쓰신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 찾아보니 책도 내셨다고 해서 오래된 책이라 중고 서점에 가서 구입했다. 책 이름은 "처음 만나는 그림"이었다.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화가의 신혼이라는 그림에 대한 설명이었다. 프레데릭 레이턴이라는 화가였는데 내가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 처음 듣는 화가였다. 그런데 책의 첫 부분에서 그 화가를 다루고 있었다. 화가의 신혼이라는 작품의 설명도 거의 첫 부분에 올라 있었다. 대다수의 그림 소개 관련 책들은 고흐든 렘브란트든 유명 작가를 책의 첫머리에 두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하면 의외였다. 사람도 첫인상이 중요하듯 책도 보통 첫 부분에 시선이 많이 가기 때문에 저자라면 첫 부분에 신경을 가장 많이 쓴다. 화가의 신혼이라는 그림은 왼손으로는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을 담았다.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무엇보다 소중한 순간일 텐데도 그 순간조차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놓기 싫은 마음이 그림에 담긴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내게도 전해졌다. 설명을 보니 화가 자신을 모델로 한 그림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프레데릭 레이턴은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혼자 살면서 외로운 마음을 아내와 함께 행복한 순간을 보내는 상상의 그림으로 달래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신혼 시절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아마도 가장 달콤한 시절일 것이다.


신혼의 부부에게 누가 먼저 고백했냐고, 혹은 누가 더 사랑하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자기가 먼저 고백했다고 말하고 자기가 더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혼한 지 10년 이상된 부부에게 누가 먼저 고백을 하였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부부가 상대방이 먼저 고백을 해서 자기가 마지못해 구원해 주었다고 말한다. 이상한 현상이다. 신혼일 때 비하여 과연 뭐가 달라지기에 이렇게 기억도 달라지는 것일까?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호르몬의 유효 기간은 3년이라고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행복감도 모두 호르몬의 농간 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나의 경우는 거짓말을 보태지 않고 정말 아내가 나를 더 좋아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내는 나와 생각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났던 것은 의과대학 4학년 때였다. 내 친구의 여자 친구의 친구가 내 아내다. 우리 둘이 처음 만났을 때 둘 다 아마 비호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첫눈에 반해서 빠졌다고 할 상태도 아니었다. 며칠이 지난 후 내 친구가 하는 말이 얼마 전 만난 여자가 나를 한번 더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번 4명이 만남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보고 싶어 한다고 해서 만나러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친구와 아내의 친구의 농간에 의해 속아서 만남이 이어지고 결국 어쩌다 보니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우리 부부에게 누가 더 적극적으로 대시하고 고백해서 결혼하게 된 것이냐고 하면 나는 아내가 적극적으로 만나고 싶다고 해서 그리 되었다고 하고 아내는 그 반대로 말하곤 한다.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하고 쫓아다녀서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도 여러 사람이 말해서 이제는 다들 그러려니 하면서 산다. 기억은 견고한 것이 아니라 세월이 지나면서 재편되기도 하니 진실은 어차피 알 수가 없다. 어떤 것이 진실이든 사랑해서 결혼한 신혼 시절과 막 임신해서 첫아기를 낳을 무렵, 혹은 한 10년 내지 20년쯤 함께 살면서 이제 모든 것이 시들해진 때나 아니면 3, 40년쯤 되어서 부부인지 친구인지 혹은 그냥 동거인인지 애매한 나이의 애정이 똑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 나이 26세 아내 나이 23세, 이제 막 서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키워가는 때가 기에 해당한다면 첫째 딸을 낳던 때는 승쯤 될 것이다. 막내를 낳고 몇 년 지나면서 사네 못사네 하면서 수도 없이 싸우다 가정 법원 앞까지 갔던 때가 전이라면 진주혼도 지나고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은 아내를 보는 지금은 결에 해당 할런지도 모르겠다. 뜬금없지만 아내는 젊었을 때도 장미보다는 국화를 닮았다.


내가 아침마다 열어보는 옷장의 문 안쪽에는 시가 적힌 천이 걸려있다. 천에는 신영복 님이 쓰신 "처음처럼"이라는 글이 수놓아져 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부부가 신혼의 마음을 떠올리는 것처럼 의과 대학에 들어갔을 때의 그 처음 마음을 조금이라도 떠올려 볼까 해서 아침에 로션을 바를 때마다 본다. 물론 처음의 그 순수하고 열정적인 것을 되살려 오지는 못한다. 그래도 보다 보면 내가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했던 의과대학을 들어가서 의사를 업으로 하면서 먹고살고 있다는 사실이 후회의 마음은 조금 줄여 주고 감사의 마음은 조금 늘어나게 해 준다. 더불어 오늘은 어제와 같은 날이 아니며 내일은 오늘의 반복이 아니라는 사실도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된다. 매일매일은 내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 어제의 남편과 아내가 아닌, 오늘의 새 신랑, 새신부와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고 일부러라도 착각해 보는 연습을 한다면 모든 구혼 부부의 하루하루는 신혼 시절의 하루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참고 그림-


프레데릭 레이턴의 "화가의 신혼"



2_Leighton_Painter's_Honeymoo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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