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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규 Nov 28. 2024

24-11-6 ~ 24-11-11

24-11-6

요즘 갑자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꽂혔다(전에도 좋아하긴 했다). 처음에는 <흑백요리사>를 재미있게 보았다. 도파민이 터지는 연출과 편집은 좋았지만, 무엇보다 사람 대 사람이 실력으로 승부를 결정 짓고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는 단순한 룰이 마음에 들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자신의 한계를 깨기 위해 노력하는 요리사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태하기 짝이 없는 자신을 돌아 보며 반성도 하게 되면서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곤 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출연진들의 리뷰 영상과 인터넷 댓글을 읽는 재미로 꽤나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랬는데 어느날 갑자기 허한 기분이 들었다. 파생 컨텐츠는 나올 만큼 나왔고 댓글로 사람들과 아무리 떠들어 봐야 새로운 도파민이 나오진 않았다. 더 재미있고 눈길을 끌만한 컨텐츠가 필요했다. 다른 서바이벌을 찾아 볼까?

그러던 참에 곧 있으면 <피의 게임3>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시작한다는 소식을 보았다. 출연진 정보를 보니 예전에 봤던 프로그램에서 관심이 가던 사람이 있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전작을 볼까나. 그렇게 시리즈 1과 2를 단 며칠 만에 몰아서 봤다. 참신한 설정에 스케일도 크고 눈이 즐거웠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만큼 즐겁게 봤다. 2까지 봤는데도 아직 시간이 남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국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고전이라고 하는 <더 지니어스>가 땡겼다. 지금은 그 시즌 1부터 찾아서 보는 중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때는 너무 즐겁고 기분이 좋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빠져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조금 걱정이 되곤 한다. 


24-11-7

차량 사고 접수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보험 회사에 전화했다. 지난 주에 주차장에서 회사 차를 빼다가 옆에 주차된 차를 긁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벤츠였다. 그때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가슴이 얼마나 철렁하던지! 살짝 긁힌 것만으로도 수리비가 몇 백이 나온다는 벤츠 얘기를 하도 들었기 때문이다. 보험으로 수리비 감당이 안되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도 몰랐다. 웬만하면 법인 차량이니까 회사에서 처리를 하시겠지만, 요즘 가뜩이나 장사가 안된다고 걱정하는 회사 분위기상 그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만약 추가 비용이 크게 나오게 된다면 내가 책임지고 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게 당연했다. 그런데 불쑥 드는 생각. 가뜩이나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데 안 나가도 될 돈이 빠진다는, 속물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오, 하필 그때 운전대를 잡아가지고! 운전이 미숙해 가지고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울한 마음은 점점 커졌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연락이 올 때가 지났는데 외제차라서 진행이 느린가요?” 보험 회사 직원은 그건 아니라면서 절차가 간단하고 비용이 저렴한 일반서비스센터를 이용하라고 상대 차주를 설득하는데 결정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하길, 거의 추가 비용 없이 원만하게 잘 처리가 될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했다. 회사에 전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셨다. 일주일 동안 묵은 체증이 조금은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24-11-8

카톡 알림이 와서 봤더니 회사 단톡방이다. 폰을 꺼내 한번 슥 봤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행복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면서 어쩌고 저쩌고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역시나 회사 대표님의 카톡 메시지였다. 평소 평일이든 주말이든 이런 ‘좋은 글귀’나 여러 신변들을 회사 단톡방에 공유하시곤 한다. 이정도는 그나마 양반이다. 이외에도 개인 일정 때 만난 가족이나 친구분들과 하하호호 하며 찍은 사진부터,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유머글이나 올드팝송 유튜브 영상 따위를 공유하시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갈 때는, 당신께서 열심히 참여하시는 정치 활동 게시글도 퍼나르시거나, 거리 시위 현장에서 열렬한 투사의 모습처럼 찍힌 사진 같은 것도 공유한다(노골적인 욕설과 비방이 담겨서 자칫하다 외부로 유출되면 모욕죄로 고소당할 정도의 정치 선동 문구도 있을 때가 있음) 대체 이런 것을 왜 공유하시는 것일까.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물어 봤더니, 특별한 의미보다는 당연히 공유를 해야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공유한다는 대답이 돌아 왔다. 이해하려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런 사람일 뿐이다. 어느덧 회사 3년 차. 이제는 모든 것이 익숙하고 그저 무덤덤하다. 


24-11-9

오후 3시가 넘어 동네 카페에 갔다. 집에 있으면 하루종일 유튜브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다가 아까운 하루를 날려 보낼 지도 몰랐다. 그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먹고 자고 싸는 행위 말고 좀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었다. 오늘은 카페에서 가서 선생님께서 읽으라는 한 책을 읽고 밀린 일기를 써야지. 오르한 파묵의 산문집 <다른 색들>은 이제 읽기 시작했다. 30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한 전업작가 파묵은 하루에 10시간씩 글을 쓴다고 한다. 회사에서 일 안 하고 눈치나 보는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빈대처럼 살면서 월급을 조금 벌어 연명해 봤자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나도 이제는 어디가서 나이가 제법 많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가 되었다. 어릴 때는 이쯤이면 뭔가 하나는 이뤘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자기 목숨 하나 건사하는 것도 어려워 하고 빌빌대고 있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그런 상황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과연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지금이라도 제대로 글을 배워 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든다. 내가 미련이 좀 많은 사람이라서 그런 건가.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더니 금방 날이 어두워졌다. 슬슬 저녁을 먹으러 들어가야겠다.  


24-11-10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예전과 식습관이 거의 비슷함에도 살이 찐 것으로 보아 나잇살이 불어나는 것을 느낀다. 바지 벨트를 매는데 허리가 전보다 너무 꽉 꼈다. 날이 추워져서 옷장에서 기모바지를 꺼내 입었더니 들어가질 않아서 새로 장만했다. 얼마 전에는 한동안 발바닥 중앙에 통증을 느껴지길래 병원에 갔더니 족저 근막염 진단을 받았다. 그런 자질구레한 일이 자꾸 생긴다.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쯤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식습관이 불규칙하고 운동을 거의 안 하니 신체가 점점 약해질 수 밖에. 자칫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늘 가지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면 그 순간 만큼은 인근 헬스 클럽을 검색하거나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운동법을 찾는다. 혹은 동네 천변길이라도 뛰어야겠다고 크게 다짐을 한다. 문제는 자고 일어나면 그런 마음가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평소대로 빈둥거리는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거다. 최근에는 엄마를 만났는데 “너 운동 좀 해. 저번에 보니까 배가 많이 나왔더라.”라고 여러 번 신신당부를 들어야 했다(안부 전화를 할 때도 듣는다) “내가 이 나이 먹고 엄마한테 그런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나이냐고. 알았어, 운동하면 될 거 아냐.” 그렇게 짜증을 낸 뒤 앞서 말한대로 운동할 궁리를 찾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얼마 지나지 않아 도돌이표가 된다. 동기부여는 충분한데 왜 실행에 옮기기 힘든 것일까. 내 인생이 꼬인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문제였다.


24-11-11

여태 이런저런 회사를 거쳤지만(현재 회사 포함) 직원으로서의 평가는 별로 좋지 않은 편이다. 워낙 덤벙대는 성격이다 보니 의도치 않게 일하다가 작은 실수를 여럿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나를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람’으로 인식되게 만들었다. 가령 퇴근할 때 회사 전화기를 착신 전화로 돌리라는 지시를 까먹고 그냥 퇴근하거나, 보고서를 작성할 때 이전 보고서를 복붙해서 작성하다가 앞 내용 일부를 삭제하지 않고 올렸다가 상사에게 걸리는 식인데, 문제는 이게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실수하고 남한테 싫은 소리를 듣는 게 싫다. 처음에는 크게 당황했고 다음에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눈에 잘 띄는 곳에 메모를 붙이거나, 한두 번으로 끝날 체크를 두세 번 더 하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그런데도 사소한 실수는 반복적으로 일어났고, 나의 상사들은 그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심한 경우에는 욕을 했다. 그것은 어떤 회사를 가더라도 비슷하게 일어났다. 다행히 불행 중 다행이지만 해고까지 가지 않았다(라기 보다는 직원 한명이 없어지면 공백이 심할 정도로 작은 규모의 회사를 다녀서 운이 좋았다). 나는 점점 소극적인 자세로 회사를 다녔고 그렇게 나이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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