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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좀 쉬고 봅시다

저 고양이처럼

by 아리




"2년 살림 치고 짐이 너무 없어서 깜짝 놀랐어요."


그런 말을 들었을 정도로 두 사람의 2년 살림은 단출했다. 큰 트렁크 하나, 작은 트렁크 하나, 내가 번쩍 들 수 있는 택배 상자 하나가 전부였다. 그렇게 소박한 짐을 작고 단정한 방에 풀었다. 퀸사이즈 침대와 양옆의 작은 탁자, 대나무로 짠 문 없는 옷장과 선이 예뻤던 고동색 화장대, 화이트 워싱이 된 작은 책상과 의자가 전부였다.

당연히 방은 한 칸. 밖으로 나가면 벽이 없는 거실 한쪽에 귀여운 싱크대가 있고 정사각형 모양의 식탁과 의자 넷, 셋이 앉을 수 있지만 혼자 눕는 걸 추천하는, 장식이 정교한 원목 의자가 있었다. 그 열린 거실 바로 앞 정원에는 푸른 잔디에 징검돌이 딴, 딴, 딴 박혀 있었고 역시 대나무로 만들고 짚으로 지붕을 얹은 정자가, 그 왼쪽으로 투박한 나무 대문이 있었다. 부엌살림은 거의 없었으므로 귀여운 싱크대 아래 커튼으로 가려진 수납공간은 텅텅 비어 있었고 옷장도 옷 몇 벌 개어 넣으니 넉넉히 남았다. 내 살림도, 아이 살림도 꼭 필요한 것들로만 꾸려진 미니멀 라이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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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뚝 떼어 우붓에 갖다 놓으니 그렇게 단순했고 그 단순한 공간이 좋았다.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맑은 가난이 구름처럼 둥실거렸다. ‘풍부하게 소유하지 말고 풍성하게 존재하라.’는 말씀대로, 그렇게 살고 싶었다. 바람처럼 와서 구름처럼 가볍게 떠 있다가 때가 되면 또 미련 없이 떠나고 싶었다. 늘 그렇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은 뿌리를 내리라 했다. 존재보다 소유를 권했다. 집과 차가, 아이를 키울 넉넉한 돈과 좋은 환경이 있어야 한다고 너도나도 외쳤다. 그래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우선 빠져나왔다.


아침에 아이를 깨워 식탁에 앉히면 파란 하늘이 그대로 쏟아졌다. 그 파란 하늘 아래서 커피를 마시고 마당을 보며 옆집에서 빌려온 책을 읽거나 그냥 뒹굴었다. 동네 이웃들과 꼬박꼬박 수다를 떨었고 요가를 하거나 장을 보러 다녀왔다. 마당의 초록이 어느새 어둠에 잠기면 옆집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데려와 저녁을 먹이고 씻겨 재웠다. 그런 날들의 반복. 그렇게 소박하고 단순한 날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 있었다.


빨래는 일주일에 한 번 동네 빨래방에 맡겼고 속옷은 모아 손빨래를 하거나 귀찮으면 이웃집 세탁기를 빌려 썼다. 초록 마당에 한국에서 공수해 온 빨랫줄을 걸고 잔디를 사그락사그락 밟으며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거는 이른 아침의 햇살이 좋았다. 그늘에 앉아 바짝바짝 말라가는 빨래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활짝 펴져 뽀송뽀송 말랐다. 잔디는 부지런히 자라 올랐고 작은 웅덩이의 연꽃은 새침하게 피고 졌으며 마당의 쁘란지빠니 나무는 무심한 듯 그 하얗고 예쁜 꽃을 툭 떨어뜨려 나를 설레게 했다.


아이는 한국에서도 빛났지만 우붓에서 더 활짝 피었다. 하루가 다르게 완두콩처럼 여무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나는 구석에서 잎사귀에 먼지를 얹고 처박혀 있던 가련한 화분에서 마음씨 좋은 새 주인을 만나 마음껏 물 마시고 햇빛을 보게 된 신나는 화분이 되었다. 가끔 싱그러운 아침이슬도 맞으며 완두콩에 질세라 기운을 차렸다. 그렇게 기운을 차리고 무럭무럭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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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쉬어요."


처음 우붓에 살기 시작했을 때 가장 신선했던 말이 바로 그 쉬라는 말이었다. 열심히 노력하라고도,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다. 노느니 뭐하냐는 말도, 지금 놀면 나중에 고생한다는 말도 없었다.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해도 마무리는 바로 그 '쉬어요'였다.


그 말이 그렇게 좋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니 평생 살면서 몇 번이나 그 말을 들어보았을까. 쉬라는 말도, 이제 좀 쉬겠다는 말도 나는 영 어색했다. 그런 말을 주고받아본 기억이 없다. 쉬겠다는 말은 곧 포기 선언이었다. 노력하지 않는 자, 게으른 자를 연상시켰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 는 말은 떠나서 쉬어라! 는 말이 아니라 떠났다가 돌아와 더 열심히 일해라! 는 뜻이었다. 그런데 우붓에서는 오늘도 쉬어요, 내일도 쉬어요, 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신의 허락이라도 떨어진 듯 나는 그 말을 고이 마음에 담아와 아이가 학교에 가고 텅 빈 거실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며 가만히 쉬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울면 어쩌나, 여기서 이렇게 놀아도 되나, 한국에 있는 남편은 잘 있을까,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가만히 쉬었다. 감사히 쉬었다.


침대에서 뒹굴다가 소파로 자리를 옮겨 뒹굴고 쪼리를 질질 끌고 동네를 걸었다. 입꼬리를 치켜올리고 동네 구멍가게에 들어가 먼지 쌓인 과자와 음료수를 구경했고, 파파야나 바나나를 쌓아놓고 부채질하며 더위를 식히는 아줌마들과 미소를 주고받았다. 허리춤에 사롱을 예쁘게 두르고 가게 구석 높은 곳의 제단에 하루에 세 번씩 짜낭 올리는 아가씨들을 훔쳐보았고, 몇 걸음에 한 번씩 발에 채는 길바닥의 짜루에 오늘은 뭘 올렸나, 개미들이 얼마나 모였나 구경했다. (짜낭 canang은 천상의 힌두 신들에게, 짜루 caru는 지하의 신들에게 하루에 세 번씩 바치는 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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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볕을 뒤로하고 책상에 앉아서도 쉬었다. 열대의 한낮, 열기는 방 안이라고 다를 것 없었다. 열어놓은 문으로 가느다란 실바람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인기척을 했다. 노트북을 켜고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열기가 몸속까지 스며 등줄기가 데워졌다. 그대로 조금 더 있으면 데워진 등줄기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이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문을 닫고 에어컨을 켤 수도 있었지만, 중력을 이기지 못한 땀방울들이 결국 미끄럼을 타는 그 순간이 좋았다. 그 순간을 종종 기다렸다. 더위 때문에 나오는 한숨인지 쉼이 벅차 나오는 탄성인지, 더운 공기가 입안을 맴돌다 탈출했다. 그 평화로운 한낮을 사랑했다.


집에서 쉬다가 지겨워지면 카페에 홀로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몽키 포레스트와 가까운 카페에서는 갑자기 원숭이가 달려들어 설탕을 한 주먹 쥐고 태연히 내 앞에 앉아 있기도 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여행자들은 정오부터 빈땅 맥주로 열기를 식혔고, 알록달록 건강 주스나 코코넛을 통째로 마시며 차크라나 명상, 카르마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요기들은 어딜 가나 있었다. 나처럼 노트북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이들은 뭘 하나 화면을 힐끔거렸고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자유로운 영혼들의 타투를 구경하는 재미도 좋았지만, 하다 하다 얼굴까지 타투로 뒤덮은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기도 했다. 그러다 지겨워지면 오토바이를 타고 새로운 동네를 구경하러 가거나 어디나 하나씩 있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다디단 발리 커피를 마시며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아궁산의 정기를 받고 돌아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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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도 같은 휴식이었다. 지쳤던 몸과 마음을 열대의 햇살 아래 고이 늘어놓았다. 새로운 풍경에 몸과 마음을 맡겼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완전한 휴식이었다. 열심히 달리던 쳇바퀴에서 빠져나온 세상은 그렇게 싱그럽고 충만했다. 비교할 대상도 없었고 타인의 버거운 시선도 없었다. 원래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기어이 바라보고 평가하는 시선이 없다는 것 자체가 차원이 다른 자유를 선사했다. 내 삶에서 벗어나, 무엇보다도 답답했던 한국의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벗어나, 우선 쉬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 결혼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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