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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꼬리가 슬슬 올라가더란 말입니다

나를 웃게 만드는 곳, 우붓

by 아리




나는 늘 혼자가 편했다. 혼밥, 혼술이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부터 혼자 느긋하게 밥을 먹었고 중학교 때부터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노라 에프론은 그랬다. 멀찍이 서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지켜본다고. 나도 늘 관찰자였다.



누구에게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시간이란 어쩌다가 우연히 홀로 남게 되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수동적인 상황이 아니다. 자발적인 선택 때문에 만들어진,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시간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나에게 소중한 것을 발견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만 보이는 것이 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마음, 감정, 생각 그리고 비밀 같은 것들. 사람은 혼자일 때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다. 충실하다는 것은 자신에게 정직하다는 뜻이고, 진짜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다. …… 그러고 보면 카페야말로 혼자 있기에 알맞은 장소다. 나라는 사람에서부터 다른 누군가와 또 다른 누군가에 이르기까지,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독립이 존재한다. 나만을 위한 순간에 나만 느낄 수 있는 것에 몰입하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 너무 외로워서 차라리 혼자이기를 자처한 사람 등 많은 이들이 하나의 장소에 모여 그곳의 공기를 공유한다. 카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켜봄으로써 모든 것을 품는다. 이것이 카페가 주는 푸짐하면서도 든든한 위로다. <혼자 있기 좋은 방>



내게는 그 카페가 바로 우붓이었다. 실제로 우붓 구석구석의 수많은 카페에서 그 다양한 독립을 관찰했고 나를 만나 위로했다. 제대로 잘 찾아온 곳이었다. 우붓에서 나는 편했다. 마음이 기지개를 켰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가 커피 한 잔에 머릿속 고민을 털어내는 시간.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입꼬리가 올라갔다.


거울을 보며 그날의 행복을 가늠하던 때가 있었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곳은 입꼬리였다. 입꼬리의 위치는 늘 미세하게 달랐다. 아래로 살짝 처진 날은 괜히 더 불행하다 느꼈다. 내 삶은 왜 이런가, 이게 다 잘 풀리지 않은 연애 때문이고 생각과 다른 결혼 때문이라 여겼다. 큰 고민 없이 즐겁게 살 때는 가만히 있어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즐겁다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굳이 행복하다 되뇌지 않아도 입꼬리로 알 수 있었다. 오늘의 운세 보듯 그렇게 입꼬리를 살폈다.


생각해보면 입꼬리가 늘 올라가 있던 시절은 살면서 별로 길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을 들고 서울로 상경해 극단에 들어갔을 때였다. 부족한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연기를 하면서 무대에 서던 그 시절, 안정적인 집은커녕 안정적인 공연도 보장되지 못했지만 어디든 필요한 곳으로 달려가 공연을 했고 연습시간만큼 길에 많은 시간을 뿌렸다. 김밥으로 수많은 끼니를 때웠고 쇼핑이 뭔지도 잊고 살았던 그 시절, 입꼬리는 늘 올라가 있었다.


가족들이 반대하던 길 위에 있을 때, 친구들이 의아해하던 선택을 할 때, 나의 입꼬리는 지그시 올라갔다. 그럴 때는 혼자만의 시간이 없어도 버틸만했다. 내가 원하던 삶 한가운데 불쑥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무대 위에서 우리는 사랑을 시작했다.


하지만 가볍게 무대 위를 떠다니던 사랑도 점점 무거워지면서 현실로 굴러떨어졌다. 우리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쫓기듯 무대에서 내려왔다. 돈이 필요했다. 입꼬리는 점점 내려갔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선택에서 나는 늘 행복하지 못했다. 내가 내 삶의 방관자일 때, 주체적으로 내 삶을 이끌어가지 못할 때는 혼자만의 시간이 몇 배로 필요했다. 다시 관찰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원하는 삶에서 밀려나 버둥거리는 나를 살펴야 했다.


결혼과 육아는 그것마저 힘들게 했다. 남편은 힘이 되고 아이는 예뻤지만 혼자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삶은 삐걱거렸다. 결혼은 관찰자로 머무를 수 없는 구조였다. 좋든 싫든 한 가정을 꾸려가는 주인공이 되어야 했고 아이를 낳은 뒤로는 앙앙 울어대는 초특급 주인공을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엑스트라도 되어야 했다. 관찰하는 자리에서 엉뚱한 무대로 올라오니 배터리는 늘 빨간 경고등이었다. 결혼은 받아치기 힘든 애드립이 난무하는 공연이었고 어떻게든 대꾸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 보니 내가 고른 남자는 북적북적 사람들과 어울리며 충전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혼자 있을 때 차오르는 사람이었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마음이 헝클어지면 나는 혼자 동굴로 들어가 글을 토했다. 타인을 관찰하기도 좋아했지만, 최고의 관찰 대상은 바로 나였다. 경고등이 깜빡이는 나를 관찰하고 글로 정리하지 못하면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 떠밀리듯 살아졌다. 짬을 내 벨트에서 내려와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숨을 고르며 허둥지둥 글을 뱉어낸 후에야 실타래 풀리듯 마음이 정리되고 다시 돌아갈 힘이 생겼다. 주인공도 아닌 엑스트라의 삶조차 가만히 지켜볼 시간이 없으면 쉽게 차오르지 않았다. 물러나 관찰하기는 심심한 시간 보내기가 아니라 나를 채우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결혼을 한 것뿐인데 인생이 너무 달라져 버렸다. 잠시 멈춰 생각하고 사태를 파악해야 했다. 그 고민을 하는 순간에도 아이는 부지런히 먹고 싸고 뛰었으며 남편은 조금씩 집안의 기둥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만 나만, 오직 나만, 아이를 안고 남편을 바라보며, 길을 잃은 눈동자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우붓, 아이가 학교에 가고 없는 조용한 방에서, 바깥의 뜨거운 햇살이 들지도 않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나는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쳐진 입꼬리가 슬펐다. 그럴수록 거울을 외면하고 시선을 돌려 아이보다 키 큰 야자나무를 바라보았다. 새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논을 바라보며 길 잃은 눈동자를 조금씩 붙들었다. 조금씩 입꼬리를 올려보았다. 조금씩 입꼬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뜨겁게 내리쬐는 열대의 햇살에 선크림도 바르지 않은 얼굴일 때, 세차게 내리붓는 우기의 비에 뻥 뚫린 거실로 비가 들이칠 때, 그럴 때 더 올라갔다. 나시짬뿌르를 현지인처럼 손을 쪽쪽 빨며 먹을 때, 태연하게 방 안으로 들어와 공동 거주를 선언하는 도마뱀을 바라볼 때, 아이도 아무렇지 않게 도마뱀에 눈길 한 번 주고 말 때, 그럴 때마다 입꼬리는 조금씩 올라갔다. 경쟁이 없고 평가가 없는 학교에 행복한 표정으로 다니는 아이를 볼 때도 그랬다. 영어 스펠링을 모르지만 4개 국어를 하는 아이들과, 덧셈 뺄셈은 느리지만 놀라운 그림을 그려내는 아이들을 볼 때 입꼬리가 올라갔다. 교실보다 운동장이, 연필보다 축구공이 더 가까운 아이들이 나를 웃게 했다. 빨아도 지지 않는 교복 티셔츠의 얼룩에 괜히 웃음이 났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우면서 세상을 탐험하는 아이들이, 나를 다시 웃게 했다. 한 가지 그림이 아닌 다양한 그림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곳, 이혼 가정이 흔하고 또 흠도 아닌 그곳이 좋았다. 아빠랑 따로 사는 아이, 일하는 부모 대신 유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 이혼한 부모 집을 오가는 아이, 아빠의 여자친구와 즐겁게 지내는 아이,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들, 많은 형태의 삶을 자연스럽게 용인하는 곳에서 나는 웃고 있었다. 조금만 다른 그림을 그려도 손가락질하거나 안 그런 척하면서 슬며시 멀리하는 한국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그곳이 좋았다. 있는 그대로, 어떤 모습도 자연스러운 그곳에서 나는, 계속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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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찾아왔다. 다시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한 이곳에서, 어디서든 입꼬리를 올리고 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결혼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 계속 꾸려 가기는 해야 하는지, 아예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했다. 길은 많았고, 내 마음은 그보다 더 많은 갈래 길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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