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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꿈이 뭐냐고 묻더군요

누구나 꿈꾸는 곳, 우붓

by 아리




인도네시아 발리, 산 중턱 예술가들의 마을 우붓, 남북으로 길게 뻗은 하노만 로드의 남쪽 끝 코코 마트, 그리고 그 옆의 무슈 스푼 Monsieur Spoon. 그곳이 바로 내 작업실이자 영혼의 안식처였다. 맥북과 디지털 노마드, 요가 매트와 쫄쫄이, 시커먼 얼굴과 커다란 배낭이 늘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거주자와 여행자로 늘 북적였고 아는 사람이 한둘은 꼭 있었으며 커피와 케이크가 맛있었다. 아이와 학교 끝나고 간식을 먹으러 갔고 와인에 곁들일 바게트를 샀다. 그곳에 앉아 몇 권의 책도 번역했다.


나의 시그니처 메뉴, 카페라테와 갓 구운 크루아상. 한때 나무 도마에 놓인 그 커피 한 잔과 크루아상 하나로 해결 못 할 고민은 없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복잡해지면, 아이가 말썽을 부리면, 삶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면 경건한 마음으로 따뜻한 라테와 크루아상을 앞에 놓고 앉았다. 두 손으로 유리잔을 들고 카페라테를 홀짝이며 따끈하고 바삭한 크루아상을 손가락으로 쭉 찢어 입에 넣었다. 도마에 떨어진 부스러기까지 손가락으로 꾹 찍어 쪽쪽 빨고, 다 식은 커피 거품을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먹고 나면 그제야 가슴이 펴지고 부글부글하던 마음도 차분해졌다. 다시 힘을 내 새 마음으로 걸어 나갈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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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그곳에서 앤디를 만났다. 은퇴한 교수님인 앤디는 가끔 프로젝트 연구를 하느라 우붓과 브리즈번을 오가며 살고 있었다. 백발이지만 나이에 비해 몸이 탄탄했고 물구나무도 벌떡벌떡 서는 요기였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


“글을 써.”


“글? 무슨 글?”


“소설? 글쎄, 나도 모르겠어. 그게 뭐가 될지. 그래도 우선 날마다 써보려고. 내 머릿속에 이야기가 좀 많거든.”


“어떤 이야기?”


“사람들 이야기. 떠도는 사람들, 꿈꾸는 사람들,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뭐 그런 사람들 이야기.”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봐.”


그날, 나는 질투와 자기 비하에 사로잡혀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망치로 맞은 듯 머리가 핑핑 돌았다.


나는 늘 늦었다 생각했고 그래서 조급했다. 그런데 검은 머리 하나 없는 그는 아직도 청춘인 듯 여유로웠다. 청년처럼 꿈을 이야기했다. 나는 아직 젊고 그는 늙었는데, 내가 한발 물러나 회의하고 불안해하는 동안 그는 나이가 대수인 듯 삶에 풍덩 빠져 있었다. 나이가 주는 선물인가? 더 이상 공들여 삶을 꾸릴 필요 없는, 필요한 만큼 다 갖춰놓은 자의 여유인가? 내가 생각하는 젊음과 그가 생각하는 젊음이 그렇게 다르다는 생각에 아득했다.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 아니, 곧 다가올 중년의 삶, 그보다 먼저, 지금 이 순간을 과연 어떻게 꾸려가야 할 것인가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보아 온 노년의 삶은 골프와 등산과 소비, 가끔의 해외여행이었다. 안락한 집과 풍족한 돈으로 못다 한 취미생활을 하며 귀여운 손자 손녀들에게 두둑한 용돈을 건네주는 삶. 그런데 그 흰머리 할아버지는 여전히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고 했다. 난센스 퀴즈에 혼자만 기발한 답을 생각해내지 못한 청춘처럼 나는 쪼그라들었다.


그가 어렵게 꾸려온 삶의 태도였을까, 그가 자란 사회의 힘이었을까. 사회는 어떻게 개인을 북돋거나 가두는가.

자본의 톱니와 소비의 군대로 사람들을 키우는가, 개인의 성장을 살피는가. 왜 어떤 이는 소비로 위로하며 노년을 흘려보내고, 어떤 이는 창조적 사고로 노년을 빛내는가. 내가 보는 그의 모습이, 그가 세심히 골라 보여주는 모습이 그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도 호주에서는 성질머리 더러운 바람둥이였는지 모른다. 그의 노년이 그가 살아온 사회의 척도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내 앞에 앉아 있던 그는, 아직도 꿈꾸는 흰머리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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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서른, 혹은 마흔과 꿈은 쉽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두 단어를 보란 듯 걸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삶은 워낙 귀하고 신기해 책으로 쓰였다. 희망을 주며 당신도 할 수 있다 말하지만 그 희망은 너무 멀었다. 나는 주변에서 함께 꿈을 나누고 성장하고 힘을 주고받을 친구를 원했다. 어린이집 엄마들과도 아이의 성장 말고 서로의 성장을 논하고 싶었다. 오늘 뭐 먹지도 중요하고 방학 때 뭐하지, 한글 학습지 뭐하지도 좋지만, 어른들의 삶도 함께 가꾸고 싶었다.


하지만 사회가 엄마에게 바라는 건 너무 많았고 바라지 않는 건 확실했다. 엄마들은 꿈꾸고 성장할 여유가 없었다. 어렸을 때는 다들 꿈을 꿨는데, 그 단어 하나로 버티던 시절도 있었는데 뭐가 달라진 것일까. 나이? 결혼?

나는 하고 싶은 게 자꾸 생기는데 그 꿈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갔고, 어느 순간 ‘내가 이상한가?’라는 자기 의심이, ‘이러면 안 되나?’라는 확신 없음이, ‘다들 그렇게 사는데 뭐.’라는 체념이 착실히 꼬리를 물었다.


부부끼리도 마찬가지다. 일단 무적의 콩깍지로 후다닥 거사를 해치우고 아이를 낳고 쳇바퀴에 무사히 안착하면, 꿈은 바큇살 사이로 어느새 다 빠져나가 버리고 없다. 서로 묻지 않는다. 아이가 있는 부부에게 그중 한쪽이 꿈을 꾼다는 것은, 꿈을 이룬다는 것은, 그래서 가족을 돌보지 않겠다고? 라는 질문을 피워 올렸다.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거 아니야? 라는 질책을, 왜 너는? 왜 너만 아직도? 라는 힐난이자 철 좀 들라는 협박을 낳았다.


그는 결혼하고 급속도로 꿈을 잃어갔다. 아니, 새로운 꿈을 꿨다. 숫자로 말할 수 있는 꿈, 경제적 지표로 정리되는 꿈. 나는 변한 그의 모습을, 어쩌면 철이 든 그의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같은 꿈을 꾸며 무대에서 만난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꿈을 묻지 않았다. 저녁 뭐 먹을까? 라는 질문은 자연스럽지만, 당신은 꿈이 뭐야? 라는 질문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결혼이라면, 한 번뿐인 인생, 그 결혼 무르고 싶었다.


아무도 어른에게는 꿈을 묻지 않는다. 질문이 사라지면 답도 사라진다. 비록 꿈 한 자락 피어올랐다가도, 에이 되겠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한숨을 쉬며 아이를 데리러 가거나 청소기를 집어 들거나 이불을 턴다. 싱크대로 가서 수세미를 들다가 마음을 바꿔 냉장고를 열어 주전부리를 찾는다. 그리고 스스로 따끔하게 한마디 한다. 철 좀 들어, 혹은 정신 차려.


하지만 그 반대의 말도 끝없이 들려왔다. 왜 안 되는데? 왜 나는 꿈을 꾸면 안 되는데? 왜 엄마는, 아내는, 서른 중반의 여자는 꿈을 꾸면 안 되는데? 쉽사리 내치기 힘든 목소리가 밤마다 일기장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런데 우붓은 달랐다. 아무도 엄마니까, 어른이니까, 결혼했으니까, 꿈같은 건 내려놓으라고 하지 않았다. 네 삶을 찾고 즐기고 꿈꾸라 했다. 무엇보다 네 행복이 우선이라 했다. 나는 마음이 점점 간지러워졌다. ‘그래! 나도 꿈이 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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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넌 꿈이 뭐야?”


“공주님!”

어렸을 때 그녀는 불쑥 되물어 나를 긴장시켰다.

“그럼 엄마는 꿈이 뭐야?”


“어? 엄마? 응, 엄마는, 글쎄, 꿈이 뭐냐면, 어, 엄마가 전래 동화책 읽어줄까?”

나는 여전히 묻는다.


“딸, 지금은 꿈이 뭐야?”


“글쎄, 얼마 전까지는 요리사였는데 지금은 별로야. 재미없을 것 같아. 몇 가지 있긴 한데 아직 잘 모르겠어.”


조금 자란 딸은 제 꿈에 대해서는 재잘재잘 늘어놓지만 이제 엄마에게 되묻지 않는다. 엄마는 그저 엄마인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 아이도 어느새 그게 익숙하다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우붓의 친구들이 내게 묻고 있었다. "넌 꿈이 뭐야? 네가 원하는 삶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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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불가능해 보여야 더 멋져 보이는 꿈, 최대한 비현실적이어야 재미있는 꿈, 실현 가능성이 없을수록 더 흥미진진한 꿈을 말이다. 그래, 춤추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리고 작가가 되어야지. 우붓에서라면 무슨 꿈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꿈은 널리 알려야 이루기 쉽다지만 소심해서 그럴 수도 없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만 결의에 충만했다. 글을 쓰고 춤을 추겠다고. 아줌마 꿈 깨, 라는 소리가 간혹 들려 뜨끔했지만 무시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기로 했다. 우붓은 그래도 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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