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가 날아왔다. 우붓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니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아이의 돌잔치를 앞두고 번역 공부를 시작해 천천히 자리를 잡았다. 내가 옮긴 책들이 한 권씩 나올 때마다 마음이 부자가 되었다. 일정이 급하면 아침 일찍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작업실로 출근했다가 일곱 시에 데리러 가기도 했다. 오래 엄마를 기다릴 아이가 안쓰러웠지만 작업 시간이 쌓일수록 뿌듯함도 커졌다. 내 손으로 옮긴 문장들이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온다는 매력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일이 없을 땐 어린이집에 안 보내고 함께 놀기도 하고, 일이 급할 땐 오래 맡기고 열심히 일하면서 일과 육아의 균형을 맞춰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번역가로 얼추 자리를 잡아놓고 우붓으로 왔다.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번역의 매력이다.
타국에서도 다시 책을 펼치는 것, 자연스러운 흐름이자 선택이었다. 우붓에서의 생활은 그 자체로도 좋았지만, 여기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그 새로운 생활의 단단한 버팀이 되어 주었다. 혹시 아나. 인세로 계약한 번역서가 대박이 나서 남편한테 이렇게 외칠 날이 올지! ‘당장 그만두고 와! 내가 먹여 살릴게!’ 물론 결혼에 대한 고민을 마무리하는 게 먼저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 말만 듣고 섣불리 번역을 시작하는 사람이 없어야 하기에 말하자면,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한국에서 날아온 책을 펼쳐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디지털 노마드가 되었다.
"우붓 사세요?"
"네. 여기 살아요."
"어머. 좋겠다. 여기서 일하세요? 무슨 일 하세요?"
"책 번역해요."
"와, 멋져요. 좋으시겠어요."
멋지긴. 전 세계 어디서든 일과 육아의 병행이 그렇게 멋질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그 멋져요, 라는 말에 담기지 않는 실상은 과연 어땠을까.
우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이런저런 급한 일 (쌀이 떨어졌다! 빨래방에 다녀오지 않으면 내일 입을 옷이 없다!)을 처리한 뒤 책을 펼치고 앉는다. 중간에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슬렁슬렁 이웃집에 가서 수다도 떨다 오지만, 기본적으로 종일 영어 책과 한글 문서만 번갈아 들여다본다. 아 지겨워, 하면서 엉덩이가 들썩해도 꾸역꾸역 버티다가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30분 전 작업을 멈춘다. 대개 그때가 한창 잘 되는 때인데 어쩔 수 없다. 그때 멈추지 않으면 아이가 집에 도착했을 때 좀비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십 분이라도 멍하게, 혹은 초록을 보며 복잡한 뇌를 단순하게 만들어야 ‘오늘 학교는 어땠어? 재밌게 놀았어?’ 라고 눈이라도 마주치며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돌아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지만 영 상태 전환이 쉽지 않다. 게다가 아이는 어느새 영어로 말하는 게 훨씬 편해졌다. 처음에 얼른 영어를 배워 학교에 적응하라고, 그래야 좀 안 울고 친구도 사귈 수 있을 것 같아서 집에서 영어로 말을 해줬더니 엄마와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져 버렸다.
그땐 몰랐다. 그게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될지. 아이의 영어는 점점 속사포가 되어 잘 들리지 않았고, 겨우 유지하던 나의 영어는 눈에 띄게 희미해져 가고 있었으니까. 아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좔좔 늘어놓으면 ‘What the hell are you talking about? 도대체 뭔 말을 하고 있니?’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마음 편히 놀다 아이를 맞으면 그래도 영어로 대꾸해주는데, 아니 최소한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듣는데, 한참 번역하다 딱 끊고 그 상태로 아이를 맞으면 뇌가 도대체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라고? 엄마한테는 한국말로 좀 하지?"
그런데 고놈, 아무리 말해도 절대 안 바뀐다. 고집 있다. 결국 나는 이렇게 외친다.
"아, 쫌! 엄마한테는 한국말만 하라고!"
번역은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신나서 한다기보다 툭하면 들썩이는 엉덩이를 진정시키고 달래 가며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번역한 글이 책이 되어 나오는 게 뿌듯했지만, 이 책만 끝내면, 이라는 주문으로 즐거운 시간을 뒤로 미루기 쉬운 일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빨리 자리 잡고 싶어 마음이 급했다. 다른 번역가들보다 작업 속도가 느리다는 조급함도 있었다. 함께 작업실을 쓰던 동료들은 어찌나 속도가 빠른지 집에 숨겨놓은 번역 기계라도 있는 줄 알았다! 아니면 우렁각시가 있거나, 그도 아니라면 아이가 없거나. 그렇게 비교하기 시작하면 남들이 하는 책은 전부 재미있어 보이고 내 책은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책인 것 같다. 남들이 어려운 책을 번역하고 있으면 와, 저런 책은 하고 나면 정말 뿌듯하겠다. 나도 하고 싶다, 생각했고 남들이 술술 넘어가는 책을 붙잡고 있으면 왜 나만 늘 어려운 책인가 투덜댔다. 다음 책이 줄 서 있는 번역가들을 보면 텅 빈 내 다이어리가 부끄러워졌다. 내 하루의 가치가 그들과의 비교로 상승과 폭락을 반복했다. 끝이 아니었다. 일이 없을 땐 없다고 걱정했고 일이 있을 땐 다른 일을 하나도 못 하겠다고 입을 내밀었다. 작업하는 두세 달은 곧 죽을 하루살이처럼 보냈고 일이 없는 몇 달은 갑자기 생긴 여유를 어쩔 줄 몰라 윙윙거리며 방황하는 똥파리처럼 보냈다.
생계를 책임지는 수준의 번역을 하는 것은 늘 나의 희망 사항이었지만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었다.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은 늦게 시작했어도 치고 올라왔다. 처음 번역을 배울 때부터 잠든 아이 옆에서 숙제를 해야 했던 나는, 번역가로 데뷔하고 나서도 아이의 어린이집 등 하원 시간이 우선이었다. 한 번도 내가 쓰고 싶은 만큼의 에너지를 전부 쏟아부어 일해 볼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한 에너지를 남기는 것이 우선이었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우선이었다. 6개월부터 어린이집을 보냈지만, 그렇게 일찍 아이를 보내 놓고서도, 엄마의, 아이를 낳은 여자 사람의 일은, 늘 목말랐다.
그렇게 목마른 시간들이 흘렀고 이제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이 생겼다. 여기서 더 발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결혼에 대해 고민한다면 동시에 내가 독립할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마음껏 일해보지 못한 여자 사람은 어느새 자신감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어디서도 딱히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내가 아무리 일 인분의 고민을 하고 일 인분의 꿈을 꿔도 일 인분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면 말짱 헛것이라고, 그 얄미운 속삭임이 귓가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일에 대한 목마름과 간절함 사이를, 잠든 아이 옆에서, 열대의 밤하늘에 안겨 그렇게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