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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왜 그랬을까요

행복을 찾는 각자의 방법

by 아리




한때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번역을 빨리하지 못하는 건 다 설거지와 청소 때문이라며. 그런데 마침내 우붓에서, 아내는 아니지만 빨래와 설거지를 해주는 우렁각시를 두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얀띠라는 이름도 예쁜 스무 살 아가씨가 매일 아침 우리 집으로 출근했다. 아무리 월급을 준다지만 하늘하늘 원피스를 입고 출근한 아가씨에게 내가 하기 싫은 집안일을 시킨다는 게 영 미안하고 어색했다. 하지만 그래야 그녀도 먹고살고 나도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애써 받아들였다. 그래도 그녀가 변기 옆에 쭈그리고 화장실 바닥을 닦고 있을 때 맘 편히 앉아 있기가 쉽지 않아 보통은 자리를 비웠다.


아침 먹고 엉망이 된 부엌도 나갔다 돌아오면 반짝반짝 광이 나 있었고 옷을 벗어 빨래 바구니에 넣어놓으면 어느새 세탁기와 건조대를 거쳐 옷장에 얌전히 개켜져 있었다. 머리를 말리며 머리카락이 온 바닥에 투하되어도 걱정이 없었다. 화장실은 늘 뽀송뽀송했고 진흙 투성이던 아이의 신발도 며칠에 한 번씩 새로 산 듯 윤이 났다. 김치 냄새 풍기는 냉장고부터 먼지가 다소곳이 세 들어 사는 책장까지, 쥐똥 치우기부터 정원에 물 주고 잔디 돌보기까지 나는 얀띠의 손길에 점점 길들었다. 한 번은 하수구 구멍이 막혀 정체 모를 시커먼 물이 야금야금 넘치는 곳을 보여주며 (미안하지만) 이것 좀 해결해 달라고 했는데 그날은 하필 그녀가 가장 소녀다운 원피스를 입고 출근한 날이었다. '어머나, 저 예쁜 원피스에 구정물이 튈 텐데 어쩌나.' 그래서 꽃무늬 원피스에 구정물이 튀기 전에 유난히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러다 내가 우붓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게 되었고, 나의 얀띠에게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금발 미남들이 우리 예쁜 얀띠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오길 바랐다. 그런데 아니란다.


"왜? 아이스크림 뽑아주고 돈 받고 테이블 닦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설거지하고 변기 닦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아?"


얀띠는 예쁘게 웃으며 그래도 아니란다. 가치관이 뒤흔들렸다. 도대체 왜?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앞에 두고 나는 고민했다. 과연 얀띠의 선택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지금도 충분히 행복해서? 아니면 그저 새로운 도전을 회피하는 스타일이라서? 행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게 아니라 가진 것을 즐기는 거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래서 얀띠는 청소를 하면서도 행복했던 건가. 현재를 받아들이고 지금에 충실한 것, 내가 책을 파고들며 몸에 새기려고 애쓰던 것을 발리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는 것인가.


물론 그들도 집에 가면 닭싸움에 정신 팔린 남편이,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노모가, 대대로 내려오는 땅을 팔아 팔자 고치려는 철없는 아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것도 신의 섭리라 여기며 받아들인다. 모든 게 신의 섭리라고 나도 한때 믿었지만 내가 믿던 신은 너무 허술했고 종교의 울타리는 훌쩍 뛰어넘기도 쉬었으며 뛰어넘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가는 힌두 사람들에게 그 울타리는 견고했고 그래서 든든해 보였다. 그들의 삶 자체였다. 삶을 공유하는 공동체와 간절한 기도에 응답할 거라 믿는 신이 있어 그들은 더 행복한 것일까? 내게도 그런 울타리가 있었다면 감히 뛰어넘을 생각을 하지 않고 명쾌하게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고 더 행복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아니, 나는 그래도 뛰어넘었을 것 같다. 그 덕분에 우붓까지 와서 살아보고 있는 거겠지. 그런 나도 얀띠만큼, 이들만큼 내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결국 얀띠는 우리 집 일을 그만두고 마침 성대하게 문을 연 동네 요가센터 커피숍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칫! 내가 하라고 할 때는 안 하더니! 가끔 요가센터에 가면 거기서 일하고 있는 얀띠의 모습을 본다. 커피를 내리고 테이블을 닦고 요가 용품을 보기 좋게 정리한다. 내 눈에는 얀띠가 사다리를 한 칸쯤 올라간 것 같다. 물어보진 못했지만 얀띠는 조금 더 행복해졌을까. 나는 사다리를 걷어차고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얀띠가 사다리를 올라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내 모습이 자꾸만 헷갈렸다.


35요가가뭐길래4.JPG 얀띠의 새로운 일터



다음 타자는 리나, 그녀가 출근하기 시작하고 얼마 후부터 집안의 물건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집에 먼지 도깨비가 있나? 사각 유리 반찬통 하나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고 (이웃집에 뭘 담아 갔었나?) 핑크색 립스틱이 안 보였다. (어디다 흘렸지? 책꽂이 뒤로 떨어졌나?) 발 매트가 여섯 개였는데? (바람에 날아갔을 리도 없고?) 가계부를 쓰는데 돈이 매일 몇만 루피아씩 (몇천 원씩) 부족했던 것도 생각났다. 어디다 쓰고 기억 못 하는 거냐며 자책도 여러 번 했다. 나도 얼마나 둔했는지, 아니면 착했는지, 리나가 그랬을 거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엄마, 나 언제 핸드폰 줄 거야?"

"응, 생각 중이야."

"엄마, 내 핸드폰 그냥 한 번만 봐도 돼?"

"그래, 엄마 책상 서랍에 있어."

"없는데?"

"없다고?"


후다닥 달려가서 보니 서랍 깊은 곳에 고이 넣어둔 핸드폰이 없다. 갑자기 머리가 핑핑 돌며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확인하지? 대놓고 물어봐? 아니면 핸드폰 좀 보자고 해?’ 고민하다 하루가 지났고, 다음 날 카메라를 넣어놓았던 파우치가 눈에 띄었다.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나 지퍼를 열어보니, 아무것도 없다! 내 캐논 450D!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고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침 리나는 아프다고 안 온 날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정신없이 비옷을 뒤집어쓰고 오토바이에 올라 리나의 언니가 일하는 동네 구멍가게로 갔다. 다짜고짜 리나를 찾는 내 말투에 언니의 표정이 어두워지는데 바로 그때,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쓰다 남은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 언니랑 동생이 한패였구나!


"이거 내 건데 왜 여기 있어요?"

"몰라. 리나가 가져왔어. 당신이 줬다던데?"

"내가? 준 적 없거든요. 리나 집이 어딘지나 빨리 말해요."

"집은 나도 몰라."

"말이 돼? 동생 집을 모른다는 게?"


언니는 모른 척 버티면 외지인이 별수 있겠나 싶었는지 미안한 기색도, 해결할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지원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리나를 소개해 준 꼬망 아줌마를 찾아가 일러바쳤다. "꼬망! 리나가 우리 집에서 물건을 훔쳤어요. 가서 좀 도와줘요. 내 핸드폰이랑 카메라!" 꼬망이 깜짝 놀라더니 나보다 더 허둥거리며 비옷도 입지 않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평소에 순하디 순한 꼬망이 날카롭게 목소리를 높여 리나 언니를 다그쳤다. 풀 죽은 그녀가 할 수 없이 꼬망의 오토바이 뒤에 탔다. 5분도 안 달려 도착한 곳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난 젊은 청춘들이 모여 사는 고시원 같은 곳이었다. 열린 방문으로 덜컥 들어서니 바닥에 내 카메라가 태연히 놓여 있었다. 그동안 없어진 모든 물건이 전부 그 방에 있었다. 아이의 영어책,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화장품들, 새카매진 발 매트는 화장실 앞에 푹 젖은 채 깔려 있었고 싱크대 한 칸이 전부인 부엌에는 익숙한 반찬통들이 음식 냄새 풍기며 담겨 있었다. 심지어 내가 입던 팬티까지! 핸드폰을 뺏어 들고 말했다.


"이거 뭐야? 왜 네가 이걸 갖고 있어?" 아이가 줬단다.

"거짓말 마. 그 아이가 핸드폰을 얼마나 갖고 싶어 했는데 그걸 널 줘!"


그러니 빌려줬단다. 점점 화가 났다. 제발 그냥 미안하다고 해! 나는 눈이 뒤집혀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아파 누워 있는 (누워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구경하며 낄낄거리던) 애를 일으켜 매트리스까지 뒤집었다.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이 튀어나왔다. 뒤지면서도 내가 왜 이러지, 왜 이리 못됐지, 자책했다. 그래도 되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카메라에는 남자 친구와 찍은 사진이 가득했고 핸드폰에는 아파서 못 간다고 내게 보낸 문자가 약 올리듯 남아 있었다. 처음 스마트폰을 갖게 된 아이의 설렘이 가득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수많은 셀카를 찍어 올렸다. 내 옷을 입고! 내가 집에 없는 사이 하라는 청소는 안 하고 옷장을 뒤져 패션쇼를 했구나!


그렇게 방을 뒤집어 놓고 나오니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뒤흔들려서, 발리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 또한 뒤흔들려서. 그래도 결국 일한 날까지 월급은 챙겨줬다. 마지막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아니면 무서워서? 리나는 딸의 학교도 알고 함께 작당할 남자 친구도 있다. 나 몰래 학교에 가서 아이에게 해코지할까 봐? 안다. 상상력이 과했다.


늘 웃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하루에 세 번씩 신을 만나며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 틈에, 행복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어쩌다 그들의 불행을 (어쩌면 내가 몰랐던 또 다른 형태의 행복을) 엿보게 되었고 본의 아니게 그들의 삶을, 적어도 삶의 한순간을 뒤집어 놓았다. 비난하고 욕했다. 그럴 수 있었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그러고 며칠 동안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태연하게 빌린 거라던 그 아이의 행복을 내가 망친 것인가. 그 아이가 빠져나가고자 했던 불행을 내가 더 헝클어뜨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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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했던 행복과 얀띠의 행복, 리나의 행복, 우리의 행복은 모두 달랐다. 그리고 서로의 삶에서 만나 그렇게 부딪쳤다. 다 같이 행복할 것만 같았던 우붓에서의 삶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았다. 나는 환상을 벗고 실상을 조금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렇게 들여다보니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바로 꼬망이었다. 얀띠와 리나 사이에 잠시 나의 우렁각시가 되어주었던 꼬망 아줌마는 아이가 벌써 셋에, 남편과 함께 동네에서 코딱지만 한 오토바이 수리점을 하고 있었다. 부부는 늘 새까맸지만 볼 때마다 하얀 이가 다 드러나게 웃어 주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시커먼 손을 들고 얼마나 반갑게 인사를 하는지, 하마터면 답례로 손을 흔들려고 핸들을 놓아버릴 뻔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오토바이 기름밥을 먹으면서도 늘 웃는 꼬망이 가장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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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장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남들이 올라타는 사다리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과거의 나와 똑같은 나는 견딜 수 없었다. 조금씩 더 현명해지고 조금씩 더 행복해져야 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씩 멀리 가면 인생이 나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서도 행복해 보였다. 언젠가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넌 왜 우붓에 자리를 잡았어?”

“우붓은 특별한 곳이니까.”

“뭐가 특별한데?”

“사람들. 이 사람들은 정말 여기 사는 게 행복해 보여. 전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발리 사람들만큼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없었어.”


몸에 밴 그들의 웃음과 친절, 눈에 보이는 이익을 좇기보다 보이지 않는 신의 돌봄 안에서 현재에 충실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 달아나거나 바꾸기보다 그저 받아들이는 사람들.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나 자기 속도대로 자기 것을 지키며 느릿느릿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들. 내게 비친 우붓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늘 달아나려 했고 바꾸려고 했던 내게 그들의 차분한 받아들임은 이질적이었다.


그렇다면 이 결혼에서 내가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은 바로 그 받아들임일까. 그와 내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삶을 꾸려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지금의 내가 현재에 충실한 모습인 걸까. 결혼에 대한 내 모든 고민을 사치스럽게 만들어버리는 꼬망 아줌마의 순한 미소를 볼 때마다 나는 괜히 부끄러워져 오토바이 속도만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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