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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삶은 소풍이라면서요

우붓에서 요가하는 행복

by 아리




우붓, 전 세계 요기들이 모여드는 곳, 그런 우붓의 터줏대감이 바로 요가반 The Yoga Barn이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초록으로 둘러싸인 카페가 있고, 이어진 계단 아래 탁 트인 넓은 마당을 두고 웅장한 건물이 우뚝 서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카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려고 교실 한가운데 매트를 펴고 누웠다. 하나둘 앞뒤로, 옆으로 매트가 촘촘히 교실을 채웠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사람들, 누워서 명상하는 사람들을 창에서 들어온 바람이 한 번씩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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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카 샘이 들어왔다. 한참을 쉬다 왔는데도 그는 어제처럼 그대로다. 맨날 입고 다니던 흰 반바지까지. 그런 그를 보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늘 떠나고 싶으면서, 돌아올 곳의 사람들은 그대로이길 빈다. 그리고 그대로인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한때 방황하는 딸이었던 나도 곧 자리를 지키는 엄마가 되겠지. 방황의 총량을 채우면 결국 어딘가에 자리 잡고, 방황하다 돌아온 딸을 맞이하겠지. 아니, 그보다는 ‘엄마! 지금은 또 도대체 어디야?’라는 질문을 받는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이, 굿모닝. 웰컴 투 더 클래스. 저는 에카라고 합니다. 발리 사람이에요.”


에카 샘의 목소리. 그 목소리만 들어도 몸과 마음이 차분해진다. 무슨 말을 하든 고분고분 듣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남자는 역시 목소리지, 생각하며 음흉하게 웃었다. “요가 처음 하시는 분 있나요? 아니면 어깨나 손목 어디가 안 좋으신 분?” 간단한 확인이 끝나고 선생님을 따라 다 같이 눈을 감았다. 멋진 목소리가 하라는 대로 정성스럽게 호흡하는 말 잘 듣는 학생이 된다. 그는 내가 자기 말대로 열심히 호흡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훗,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감상하고 있다!



“등을 펴고 똑바로 앉습니다.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지금 우리는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방황하는 마음도 들여다보겠지만 몸과도 친밀한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옆 사람은 보지 않아도 좋아요. 자기만 느끼고 자기만 봅니다. 오늘도 나를 위해 고생해 준 몸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남은 하루도 잘 도와달라고 부탁해 봅시다. 호흡하다 보면 당연히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왔다 가지요. 그저 가만히 바라봅니다. 지나가 버린 생각은 붙잡지 않습니다. 그저 지나가게 내버려 두세요. 사실 살다 보면 그렇게 중요한 생각은 별로 없어요. 생각은 언제나 왔다 가니까요. 괜히 붙잡아 고민하지 맙시다. 우리는 너무 심각하게 살잖아요. 잠시만이라도 내려놓아 보세요. 이 순간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살아 있는 것. 그것이 삶입니다. 삶은 저 멀리 손에 닿지 않는 곳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 숨을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우리 삶이자 인생입니다.”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말라고 그 좋은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그러면 안 들을 재간이 없다. 넷! 알겠습니다! 경례라도 하고 싶어 진다. 그래, 지금 여기 숨 쉬며 살아 있는 것이 인생인데 그동안 이마에 인상 쓰고 너무 심각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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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원래 어려운 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이렇게 힘들고 다들 이렇게 산다고. 온갖 풍파를 헤치고 나가야 그게 사는 거라고. 하하 호호 웃음소리는 나와 상관없는 소리 같았고, 언제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진짜 인생이 뭔지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진지하지 않으면, 심각하지 않으면 삶을 낭비하는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인상 쓰고 장애물을 넘으며 삶이라는 트랙을 달리다 고개를 들어보니, 달리고 있는 트랙이 삶의 전부가 아니었다. 트랙 밖에도 삶은 있었다. 땀 흘리며 달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트랙 밖에서 신나게 응원만 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그늘에 돗자리 펴 놓고 바람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꼭 달리는 것만 삶이 아니었다. 완주할 필요도 없었다. 달리다 힘들면 쉬고, 그래도 힘들면 아예 달리기를 포기해도, 그래도 삶은 바람과 빛, 함께 있는 사람들의 웃음과 함께 지속되는 것이었다. 나는 결승선까지의 시간을 견디고 싶지 않았다. 다시 트랙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저 돗자리에 앉아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그동안 땀 뻘뻘 흘리며 달리려고만 했던 내가 가여웠다. 나는 달리지 않으나 너희는 달리라고 가족의 등을 떠밀 필요도 없었다. 우리가 손잡고 가야 할 곳은 결승선이 아니라 돗자리였다. 결승선은 달려도 달려도 멀어지기만 할 테니까. 결승선이 안 보여도 돗자리에 앉으면 풀이 보이고 꽃이 보인다. 그것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웃으면 될 것이다. 삶은 소풍이라지 않는가!


소풍을 가자고 내 손을 잡아끌던 건 아이였다. 아이는 늘 내게 웃으라 했다. 존재 자체로 웃겼고 재밌는 표정으로, 기발한 생각으로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종종 우울했던 내게 행복을 들이밀어 주었다. 달리고 있을 때는 지금 웃을 때가 아니라며 밀어냈지만, 이제는 안다. 더 늦기 전에 그 행복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아이 때문에 달리기가 늦어졌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안다. 아이 덕분에 돗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고.


그때 한 줄기 바람이 들어왔다. 밖에서 새가 울었고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가 매트가 그대로 돗자리가 되었다. 눈을 감고 그 순간을 누렸다.


결국 아이는, 내게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이 세상에 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의 지금 이 순간은 결혼과 육아인가. 아이를 따라 지금 이 순간을 누리고도 싶었지만, 나는 어쩐지 그게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마냥 지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순간을 버리고 지금 여기로 도망 와 있는지도 모른다. 평화로웠던 한 줄기 바람이 이번에는 고민 많은 나를 놀리듯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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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 헤일, 날숨에 무거운 고민도 함께 얹어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가 매트를 돌돌 말며 생각했다. 결혼도 이렇게 돌돌 말아 잠시 벽장에 넣어둘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요가 매트 같으면 참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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