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우붓 하노만 로드에 ‘이트 소프트 러브 Eat Soft Love’라는 요거트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었다. 그렇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변주. 초록색 나무판에 예쁘게 쓰인 가게 앞 그 글귀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심심찮게 붙잡았다.
"아리, K가 곧 한국 돌아간대요. 혹시 아이스크림 가게 할 생각 있어요?"
"네? 그걸 팔고 간대요?"
"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걸 그냥 다 넘기고 간대요. 가격이 좋아요. 관심 있으면 한 번 해봐요."
"에이, 저 장사는 못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사장님이 되었다. 그래, 장사를 하자! 나도 돈 좀 벌어보자!
요거트 아이스크림과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기계에서 뽑아 과일과 견과류를 비롯한 각종 토핑을 얹어주는 가게였다. 가장 큰 매력은 가게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어차피 발리에서 외국인은 일할 수 없다. 할 수는 있지만 몹시 복잡하다. 대부분 하면서 안 하는 척하고, 관리하는 공무원들도 대부분 알면서 모르는 척한다. 그래서 가게는 직원들이 지키고 매일 밤 정산만 하러 가면 된다는 것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덜컥 해 보고 싶게 만든 매력이었다.
밤마다 가게에 가서 계산기 두드리기, 직원들 관리하기, 원가 절감할 재료 공급처 찾아 사다 나르기, 주문 가능한 재료는 늦지 않게 주문하기, 계약 연장을 위해 집주인과 좋은 관계 유지하기 등 할 일은 생각보다 많았지만, 처음엔 재미있었다. 투자한 돈이 엄연히 있었지만, 그 돈은 통장에서 통장으로 바로 넘어가 추상적이었고 매일 몇 푼이라도 따박따박 지갑으로 들어오는 현금은 구체적이어서 신이 났다. 하지만 장사는 그런 몇 푼 현금에 좋아하는 게 다가, 당연히 아니었다. 아이들 소꿉놀이도 아니고.
"정전이다!"
우붓에서 정전은 낭만적이었다. 낮에 정전되면 해가 있는데 무슨 상관이람 태평했고, 밤에 정전되면 와, 정전이다. 촛불 켜자! 분위기 있고 좋네. 하늘의 별 좀 봐! 진짜 밝다. 우리 손전등 들고 산책 갈까? 했던 내가, 이렇게 외치게 되었다.
"정전이라고? 에잇! 또 가게 망했네. 아이스크림 기계 멈추고, 안에서 아이스크림 녹아 줄줄 새고, 내일 아침에 뜯어서 청소해야 하고, 앙앙, 정전 싫어!"
정전은 직원 관리에 비하면 문제도 아니었다. 직원들은 나보다 열심히 일했다. 가게 문 앞에 나가 '마사지'를 외치는 아가씨들처럼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외쳤다. 그건 고마운데, 그래서 분명 손님이 많았던 것 같은데 수익이 그만큼 나오지 않았다. 수상해서 씨씨티비를 들여다보는 날들이 많아졌다. 매일 밤 정산한 영수증을 들고 와 씨씨티비를 틀어놓고 비교했다. 그랬더니! 더 비싼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팔고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팔았다고 입력하고 있었다.
"너 요거트 아이스크림 팔아놓고 왜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라고 입력했어?"
"아니야, 소프트 아이스크림 팔았어."
"여기 씨씨티비 봐봐. 이게 소프트 기계고 이게 요거트 기계인데, 너 지금 여기서 뽑았잖아."
"내가 가끔 기계를 바꿔주거든. 그래서 그날은 그 기계가 소프트였어."
"아니잖아! 여기 봐. 두 시간 전, 똑같은 기계에서 뽑고 이건 또 요거트네? 하루에도 몇 번씩 기계를 바꾸는 게 말이 돼?"
말문이 막힌 그녀가 엄청나게 큰 눈을 굴리며 나를 쳐다보는데, 무서웠다. 매일 밤 가게로 데리러 오는 남편도 있다. (그때 남편은 아직 한국에 있었다) 게다가 나는 외국인이고 가게도 집주인 이름으로 하는 건데. 가재는 게 편이라고 주인아저씨가 얘 편들어주면 가게 홀라당 넘어가는 거 아니야? 얘가 신고하면 나 강제 출국당할지도 몰라! 무서운 상상이 꼬리를 물었다. 발리 사람들이 이렇게 무서웠나? 참, 얘는 다른 섬에서 왔다고 했지. 내가 아기 생일 선물도 사주고 그랬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분했지만 분한 것보다 무서웠다. 밤에 유리를 깨고 비싼 아이스크림 기계를 들고 도망가 팔아먹어 버리지 않을까, 그런 걱정까지 했다.그렇게 겁을 잔뜩 먹고 겨우 그 두 명을 해고했다.
그리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소개받아 새로운 직원들을 뽑았다. 그런데 내가 해고했던 직원 하나가 얼마 안가 바로 옆 가게에서 일을 시작하는 게 아닌가! 너네 정말 사람 무섭게 왜 그래! 새로운 직원들은 전부 가게 앞에 나가서 아이스크림을 외치지 못하는 순둥이들이었다. 딱 나처럼. 그래서 그랬는지, 경쟁 업체가 생겼기 때문인지 매상은 점점 떨어졌고 내 마음도 점점 쪼그라들었다. 역시,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나는 정말 그 아무나가 아니구나.
그때쯤 그가 한국을 정리하고 우붓으로 왔다. 그리고 때도 왔다. K에게 넘겨받은 계약 기간이 끝난 것이다. 계약을 연장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대로 포기하기는 아쉽고 남편도 왔으니 힘 모아 잘해보자고 덜컥 2년을 더 계약했다. 계약한 김에 코딱지만 한 아이스크림 가게를, 작지만 분위기 좋은 카페로 변경한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웠다. 각종 토스트와 커피, 음료를 메뉴에 추가했다. 페인트칠도 다시 하고 테이블과 의자도 멋지게 꾸몄다. 집에 있는 책도 가져다 놓았다. 나름 북카페였다. 의욕은 충만했지만 판단이 착오였다. 아이스크림만 팔 때보다 재료가 월등히 많아졌고 결국 제때 사용하지 못해 버리는 재료가 많아졌다. 원가는 늘고 매출은 줄었다. 망했다. 역시 장사는 안된다는 깨달음에 그도, 나도 점점 흥미를 잃었다.
가장 곤란했던 건 손님들이었다. 가게에 있다가도 누가 들어오면 얼른 가방을 챙겨 도망갔다. 나한테 뭐라고 할까 봐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커피는 왜 이렇게 맛이 없냐, 야채가 너무 시들었다, 버터는 안 먹는데 빵에 왜 버터를 발랐냐, 주스는 왜 백 퍼센트 과일이 아니냐, 등등 메뉴가 다양해지니 가능한 불만도 많아졌다. 이런 것도 못 하면서 어떻게 장사를 하느냐고 흉보지 않을까, 24인 도미토리 숙소로 돌아가 저 카페는 절대 가지 말라고 소문내지 않을까 사서 걱정만 했다. 대책은 없이. 그럴수록 가게에 발길이 뜸해졌고, 알아서 하겠거니, (사실 제발 나 좀 부르지 말고 알아서 해 달라는 마음으로) 몸도 마음도 멀어져 갔다. 그러면서 모든 카페와 식당의 사장님들이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 많은 메뉴를 개발하고 그 많은 재료를 공수하고 그 많은 직원을 다루는지, 그런 가게를 심지어 몇 개씩 굴리는지 경이로웠다. 물론 처음에는 고생했겠지, 어렵고 힘들었겠지, 그래도 열심히 했겠지. 나는 그만큼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투정 부린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였다. 그 대책 없던 장사 실험에서 좋았던 점 하나는 ‘우리 엄마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이야!’라는 아이의 자랑스러운 얼굴, 그거 하나였다.
결국 백기를 들었다. 막판에는 2년의 계약이 끝나는 날만 기다렸다. 그리고 후련하게 문을 닫았다! 사업가로 변신해 우붓에서 성공하리라! (한 마디로 돈을 벌리라!) 던 호쾌한 다짐은 산산이 부서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많은 외국인이 우붓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집을 지어 임대하고, 요리 실력을 발휘해 식당을 하고, 장사를 한다. 노트북 하나로 간편하게 먹고사는 디지털 노마드, 잘 관리한 몸으로 먹고사는 요기, 네 삶을 고쳐준다는 온갖 힐러나 코치 등 그 작은 동네에서 어떻게든 먹고살려고 저마다 애를 쓴다. 살고 싶은 곳에 살기 위해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다. "여기 여행 왔는데 너무 좋아서 살고 싶어 졌어. 이제부터 방법을 찾아보려고." 그렇게 말하고는 몇 달 후 그 방법을 찾아서 나타난다. 그렇지 못하면 몇 달씩이라도 머물다 간다. 나에게 보이지 않는 그 방법들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역시 세상은 넓고, 내가 모르는 돈 버는 방법은 많고, 그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니 아는 건 거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실패자가 되었다.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잘 맞지 않는 일은 그만두는 게 맞다. 실패가 아닌 경험이다. 그런 값진 경험에는 괜찮아, 인생 공부했지 뭐, 라고 서로 등도 두드려 주면서, 결혼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까탈스러운지 모르겠다. 왜 결혼의 중단은 경험이 아닌 실패만 되는가. 결혼이 뭐 그리 대수라고. 평생직장도 사라지는 마당에 평생 결혼이라고 사라지지 말란 법 없잖아.
아이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모두 버티기에 아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붓에서처럼, 이혼도, 재혼도, 싱글맘도, 싱글대디도, 동성 부모도 저마다 자유로운 곳에서는 아이들도 구김 없이 밝고 행복하게 자란다. 행복을 가로막는 것은 어른들의 시선일 뿐이다.
그러므로 더 많은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어른스럽게 이별하고 당당하게 홀로 선다면, 더 많은 사람이 결혼을 더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다면 아이들 문제는 너무 쉬워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해결될 것이다. 우붓의 아이들처럼, 아이들은 부모만 행복하다면 어떻게든 행복하다. 그러니 제발 결혼에 좀, 그렇게 큰 무게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스크림 가게는 너무 무게를 안 둬서 실패했지만,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