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몸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쓰는 사람들에게 매료되었다. 뒤풀이 자리에서, 클럽에서, 무대에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탈춤이든, 율동이든, 현대 무용이든, 재즈 발레든 상관없었다. 몸과 음악이 섞여 만드는 춤, 힘찬 도약과 사뿐한 착지, 아름다운 회전과 날렵한 멈춤, 그 모든 움직임에 빨려 들었다.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춤을 추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우붓에 와 놓고도 춤을 추고 싶다던 꿈은 어느덧 일상에 밀려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 무렵, 살사 수업이 새로 생긴다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그래, 춤! 드디어 때가 온 건가!
첫 수업의 긴장이 아직도 생생하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종일 안절부절못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는, 게다가 오랫동안 나는 못한다고 생각했던 일일 경우에는 더더욱 긴장이 된다. 이미 괜한 핑계로 한 번 미룬 후였다. 그냥 한번 해 보는 거야, 잘할 수 있어, 종일 다양한 주문을 외우고 또 외웠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오랜 고민이 무색하게 너무 별 게 아니었다. 처음 원투쓰리 스텝을 밟으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렵지 않은 스텝에 발이 익숙해질 무렵에는 종일 왜 그렇게 긴장했나 싶을 만큼 마음이 편해져 있었다. 비 온 후라 교실이 습해 조금만 움직여도 평소 같지 않게 땀이 줄줄 흘렀다. 종일 쌓인 긴장이 모조리 땀으로 새어 나오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시작하면 되는 거였다. 그냥 가서 원투쓰리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긴장을 했을까. 춤은 못 추는 사람이라는 자기규정에서 벗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뭐든 처음은 어렵지만 오래 고민했던 일일수록 더 어렵다. 대충 시작했다가 금방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이고, 가볍게 해 보고 말 일이 아니라 오랜 꿈 하나를 실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 발 내딛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걸음 내딛기 전에 자신과의 싸움에서 먼저 이겨야 하니까.
중국 영화의 조폭 조무래기 하나로 화면 구석에서 각 잡고 있을 것 같은 건장한 체격의 까까머리 남자가 있었고, 비닐봉지에서 과자를 꺼내 우적우적 씹으며 표정 없이 창밖을 내다보던 금발의 남자도 있었다. 생긴 건 동양인이나 서양의 문화가 몸에 밴 깔끔한 남자가 늦게 들어왔다. 옆구리가 훤히 드러나는 헐렁한 티에 딱 달라붙는 목걸이를 했고 짧은 앞머리는 왁스의 힘으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붓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겉모습이지만 몸놀림은 예사롭지 않은 살사 선생님 아궁. 그 남자들 넷과 그보다 두 배나 많은 여자들 틈에 끼어 살사의 기본 스텝을 배웠다. 원투쓰리, 파이브식스세븐. 원투쓰리, 파이브식스세븐.
아궁은 첫 시간부터 기본 스텝과 각종 턴으로 손발이 따로 놀게 했고, 짝을 지어 어색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음악에 맞춰 허둥대게 만들었다. 조폭 같던 남자는 생긴 것답게 배우는데 서툴렀고 그에게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잠시 수업이 지체될 정도였다. 하지만 땀을 뚝뚝 흘려가며 배우려는 표정에 순수함이 어려 있었다. 과자를 먹던 청년은 손잡고 마주 서 보니 캥거루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역시 시간이 갈수록 무표정에 미소를 탑재하며 왕따 같던 분위기에서 벗어났다. 옆구리를 드러낸 남자는 손을 잡고 원투쓰리만 해봐도 초보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쉬는 시간에 음악을 틀어달라더니 함께 온 애인과 흉내 내기도 힘든 스텝을 마구 밟았다. 천장에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다들 땀을 뚝뚝 흘렸고 아궁의 흰 티셔츠는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춤추고 싶다던 막연했던 꿈에 초고속으로 살이 붙었다. 언젠가 쿠바에 가서 시가를 피우는 백발의 할아버지와 해변에서 살사를 춰야지. 후훗, 생각만 해도 신난다.
그녀 : 같이 춤출래?
그 : 아니. 난 춤은 별로.
그녀 : 같이 하자!
겨우 한 번 수업에 데리고 갔지만 그뿐이었다. 제 몸을 어쩔 줄 몰라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딱딱 맞으면 이상하지. 우리는 무대에서 공연하며 만났지만, 결혼과 동시에 숨겨왔던 자아를 드러내면서 서로의 다름에 놀라고 거부했다가 또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여전히 겪고 있었다. 비슷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입맛도, 쉬는 방법도, 노는 방법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방법도 전부 달랐다. 그러니 그와 춤을 추면서 멋진 노후를 보내는 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다. 쿠바에서 시가를 피우는 할아버지가 그는 아닐 것이다. 옆에서 구경이라도 한다면 다행이겠지.
어느 정도 춤이 몸에 익고 나자 일주일에 한 번 재즈카페로 갔다. 각종 라이브 공연으로 우붓의 밤을 책임졌던 재즈카페였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비건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재즈카페에는 수요일 밤마다 라틴음악이 출렁였다. 예쁘게 차려입은 여인들의 치맛자락이 펄럭였고 엉덩이가 춤을 추었다. 남자들이 현란한 손놀림으로 아리따운 여인들을 돌리고 또 돌렸다. 라이브 밴드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푹신한 소파에는 나이 많은 노부부들이 젊음이 아쉽다는 듯 앞에 놓인 술잔도 잊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무대 근처에서는 춤추다가 잠깐 엉덩이를 붙인 이들이 숨을 골랐고, 한 무리의 싱싱한 여행자들은 춤이야 추든 말든 자기들끼리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한밤의 재즈카페는 그렇게 춤추는 사람들, 취해가는 사람들, 하루 치의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 부지런한 술잔들로 어지러웠다. 음악은 그치지 않았고 밤도 지치지 않았다. 여행자도 거주자도 한데 모여 신나게 춤을 추는 그 밤이 내게는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신데렐라의 파티였다. 왕자님 손을 잡고 한 바퀴 돌면 다른 세상이었다. 엄마, 아내, 어른, 며느리, 딸, 언니, 모든 타이틀을 벗어던진 내 영혼의 정수가 빠져나와 자유롭게 한숨 돌리는 시간. 돌면 돌수록 심장에 자유가 차올랐다. 눈을 쓰리게 만드는 짜디짠 땀을 닦으며 춤을 췄고 자꾸 웃으며 춤을 췄다. 스텝이 꼬여도 웃었고 미끄러질 뻔해도 웃었고 춤추다 옆 사람 발에 차여도, 구두로 옆 사람 발을 밟아도 웃었다. 한 번 웃을 때마다 나는 빵빵하게 충전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삶의 배터리를 충전했다. 배터리가 충전되면 자려고 누워도 입꼬리가 바짝 올라가 있었다.
그 : 바차타? 바차타는 추지 마.
그녀 : 왜 싫은데?
그 : 그건 야한 춤이잖아!
그녀 : 원래 야한 춤은 없어. 춤은 그냥 춤일 뿐이야.
그 : 그래도 싫어. 다른 남자들하고 그렇게 춤추는 거. 남편이 싫어하는 것 좀 안 하면 안 돼?
그녀 : 다른 사람이 싫어한다고 내가 좋아하는 걸 포기해야 해?
그 : 내가 다른 사람이야? 가족이고 남편이잖아! 난 네가 싫어하는 거 안 할 거야. 결혼하면 그렇게 포기하고 사는 거 아니야?
그녀 : 결혼했다고 왜 포기해야 하는데? 가족이 뭔데? 결혼했어도 나는 나고 당신은 당신이야. 왜 내가 좋아한다는 사실보다 당신이 싫어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해? 아빠가 싫어하는 것 못하면서 자란 아이가 또 남편이 싫어하는 것 못하며 사는 아내가 되라고? 왜 여자들 삶은 꼭 그래야 하는데?
나의 지치지 않는 열정과 그의 굳건한 편견, 누구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나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제거해야 결혼이 행복해진다고? 그렇다면 그 결혼 안의 나는 과연 무엇인가? 왜 나를 버려야 관계가 행복해지고 나를 고집하면 관계가 틀어져야 하는가? 왜 우리의 결혼은 고작, 한 페이지짜리 책인가? 왜 평범하지 않은 다른 장면, 다른 주인공, 다른 이야기들은 결혼이라는 책에 등장할 수 없는가? 다시 만난 우리는 또 그렇게 엇갈리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춤에 대해 서로 대화하지 않음으로 상황을 그저 덮어버렸다.
함께 춤을 추는 친구들은 말했다.
"You are so Beautiful!"
"함께 춤을 춰 줘서 정말 고마워. 너와의 춤은 정말 멋졌어."
나는 그렇게 활짝 피어가고 있었다. 친구들은 또 말했다.
"네 남편이 네가 춤추는 모습을 봐야 해. 정말 안타깝다."
그는 그렇게 내 삶의 절정을 외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