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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아무 데서나 하는 거 아닙니다

발리에서 운전하기 어려운 이유

by 아리




우붓은 작은 시골 마을이라 길이 좁다. 발리 공항이 있는 덴파사나 꾸따 쪽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길은 확연히 좁아진다. 2차선이 넘는 도로는 없는데 그 2차선이라는 것이 한국의 1차선보다 조금 넓은 도로에 중앙선이 그어져 있는 꼴이다. 중앙차선을 놓고 마주 달리는 차들의 사이드미러 거리는 1밀리미터. 그래서 우붓의 운전사들은 운전의 달인들이다.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스쳐 지나가는 그 기술이라니! 물론 우붓에서도 중심가는 길이 약간 넓지만, 중심가답게 여기저기 끼어드는 오토바이와 거대한 관광버스, 몰려드는 차들로 운전이 쉽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에서도 앞차가 게으름을 피우면 당당하게 추월한다. 진행 차선을 살짝 바꾸는 게 아니라 중앙선을 넘어서! 주행 차선에서 역시 나를 추월하려는 오토바이를 견제한 다음, 반대편 차선에서 차가 오고 있는지, 오토바이는 몇 대나 달려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내가 순간 높일 수 있는 속도를 가늠해 부딪히기 전에 다시 원래 차선으로 재빨리 돌어가야 한다.


한적한 마을 깊숙이 들어가면 그야말로 차 한 대 지나가기 적절한 폭의 도로에 당당하게 중앙선이 그어져 있기도 했다. 반대편에서 차가 마주 오면 옆의 논두렁에 빠지지 않게 최대한 바짝 웅크렸다가 차례로 지나가야 한다. 게다가 골목 여기저기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오토바이, 발도 닿지 않는 어른 자전거에 올라 태연히 찻길을 달리는 동네 아이들도 조심해야 하고, 밤중에는 도로 한가운데서 곤히 자고 있는 개들도 깨워 지나가야 하며, 조금 더 한적한 동네로 들어가면 엄마 닭을 필두로 뒤를 졸졸 따르는 병아리들에게까지 넓은 마음을 베풀어야 한다.


길 좁은 거야 오토바이만 타고 다닐 때는 남의 일이라 상관없었지만, 그가 오고 나서는 우리도 차를 장만했다. 그런데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게다가 2년 만에 잡아야 하는 운전대라니. 물론 그가 있으니 겁난다며 잡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건 또 도전해 봐야 제맛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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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한국에서 동생들과 조카들이 놀러 와 있었다. 식구들을 우르르 태우고 발리 버드파크 Bali Bird Park 나들이에 나섰다. 그것이 나의 첫 운전이었다. 이미 몇 년 살며 길은 익혀 문제없었고 주행 방향이 반대인 것도 오토바이로 익숙해졌으니 좁은 차도에만 익숙해지면 무리 없이 할 수 있으리라. 복병은 와이퍼와 깜빡이였다. 우회전하겠다고 깜빡이를 켜면 와이퍼가 비도 안 오는데 나 불렀소? 하고 마른하늘에 인사를 했다. 웁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은 차 안에서도 나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오른쪽 사이드미러를 보호하려다가는 왼쪽 도랑에 바퀴가 빠지거나 왼쪽 사이드미러가 전봇대에 와그작 꺾일 것 같았다. 그렇다고 도랑이나 전봇대와의 거리를 확보하면 오른쪽 사이드미러가 불안했다. 게다가 오토바이들은 성질도 급하지. 암, 이해하지. 느림보 차 뒤에 엉금엉금 따라갈 필요는 없지. 당연히 추월해 가야지. 나도 그랬으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래도 깜빡이는 좀 켜고 추월하면 좋겠다. 뒤따라오던 차들도 속도를 내 중앙선을 넘어 앞질러 갔다. 가거나 말거나 나는 양쪽 사이드미러를 사수하기 위해 최대한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런데 가도 가도 버드파크가 안 나온다. 이렇게 멀지 않았는데? 이러다 남쪽으로 계속 달려 꾸따까지? 어디선가 입구를 놓쳤다. 분명 이렇게 남쪽은 아니었다. 길도 모르고, 버드파크 위치도 모르고, 오늘이 언니의 첫 운전이라는 사실만 아는 동생들은 조용했다. 차를 돌려야겠다. 어디서? 그러고도 돌릴 곳을 찾아서 한참 더 내려갔다. 겨우 공터를 찾아 우선 도로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차를 돌려 반대편 차선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끼어들 엄두가 안 난다. 이 사람들! 착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양보심이 없다니! 저 멀리 건물에 앉아 있던 경비 아저씨가 느릿느릿 다가와 달려드는 차들을 향해 빨간 봉을 휘둘러 주고서야 겨우 반대편 차선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그제야 버드파크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무사히 도착! 양쪽 사이드미러를 당당히 사수하며 결국 집까지 안전하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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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자신이 붙으니 움직일 때마다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용기도 생겼다.


“오늘 차 가지고 마트 갈 건데 같이 가실 분?”


“오, 직접 운전하게요? 같이 가요!”


동생들과 달리 동네 주민들은 쏠쏠한 도움이 된다.


“아리! 옆으로 좀 붙어요!”


“지금 뒤에 오토바이 추월하니까 천천히 가요.”


“어, 아리! 왼쪽에 전봇대!”


이크, 에고, 어머나! 온갖 추임새를 넣어가며 괜히 다 데리고 왔나 후회할 즈음, 멀지도 않은 마트에 도착했다.


“와! 잘했어요! 아리, 운전 잘하네요!”


이 사람들, 여기 오래 살더니 발리 사람들처럼 칭찬이 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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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력이 생긴 그는 일을 시작했다. 나는 그가 조금 더 쉬면서 휴식의 리듬을 몸에 익히길 바랐지만, 그는 한국에서 우붓까지 가져온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덜컥 일을 시작했다. 말리고 싶었으나 말려질 것 같지 않았다. 그는 거의 매일, 서너 시간의 일을 위해, 우붓에서 덴파사까지 운전하며 왕복했다. (빨리 달리면 30, 40분 정도, 내가 간다면 넉넉잡고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그렇게 좁은 도로에서 발리 사람들은 밤만 되면 라이트를 정면으로 쏘며 달렸다. 길이 좁아 그런지 분명 반대편 차선인데도 바로 앞에서 쏘아대는 것 같은 쨍한 빛이 눈을 피곤하게 했다. 날마다 밤 운전을 해야 했던 그는, 날마다 피로를 호소했다.


그 : 우리 덴파사로 이사 가자. 운전이 너무 힘들고 피곤해.


그녀 : 난 우붓이 좋은데. 아이 학교도 마음에 들고.


그 : 날마다 일하러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래.


그녀 : 그래, 이해해. 그래도 이렇게 불쑥 가기는 좀 그렇고. 이번 학년만 끝나면 갈까? 아니다. 중학교 가면 어차피 이사 가야 하잖아. 조금만 더 있다가 초등학교 졸업하고 가자. 조금만 더 힘내 봐.



대화는 며칠에 한 번씩 그대로 재현되었다. 이번에는 그가 나를 보챘다. 하지만 나는 아직 우붓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우붓과 그의 우붓이 그렇게 달랐다. 내가 꿈꾸고 춤추고 나를 찾고 성장해 온 우붓이, 그에게는 지루하고 답답하고 일하기도 힘든, 어서 떠나고 싶은 촌구석일 뿐이었다. 안타까웠다.


우붓의 운전대는 좁은 길에서도 위험했지만, 그에게도, 나에게도 위험했다.

그가 우붓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내가 우붓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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