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에도 답은 없었다
그는 목소리가 좋았다. 노래를 잘했다. 사람들을 잘 웃겼다. 사랑은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했던가. 나는 처음부터 완전히 패한 게임을 시작했다. 처음엔 그랬다.
나는 대부분 우울하다 장마철에 해 나듯 반짝 웃었다. 늘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했고, 다른 이들에게도 높은 기준을 들이대 관계에 서툴렀다. 충전 주기가 짧아 자주 방전된다고 느꼈다. 한국에서는.
그런데 우붓에 와서 훨씬 여유로워졌다. 지금 이대로의 나도 괜찮고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 안의 찌꺼기가 걸러져 가벼워졌고 자연스러워졌고 편해졌다. 어떤 가면도 쓰지 않고 내 모습대로 살고 있다. 앞으로 더 나아지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순간순간 충전이 된다. 그렇게 우붓에서 실컷 더 자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립된 개인이 되는 것과 그에 걸맞게 관계를 꾸려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내가 변한 만큼 그도 변했다. 그는 떨어졌던 시간만큼 가족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그사이 내가 당당한 개인이 되었다면, 그는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가족의 품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어 했다. 이미 홀로 서버린 나에게 그가 원하는 알콩 달콩은 한여름의 겨울 외투처럼 버거웠다. 게다가 그는 아직도 같은 걸로만 웃겼다. 지겨웠다. 더 이상 노래도 부르지 않았다. 유튜브만 열면 언제든 좋은 목소리를 원하는 만큼 들을 수 있었다. 게임의 판도는 달라져 있었다. 완전히.
여성들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한번 완전히 궤도를 이탈하는 느낌을 겪기도 한다. 이런 방향 상실감은 새로운 감수성을 가지고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때 생긴다. 그 두 가지를 통합시킬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 그 방향 상실은 또, 여성 자신은 이제 강해진 자기 모습을 지키고자 하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이전의 모습 그대로 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생긴다. (…) 변화의 폭이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겪지 않고 돌아오는 여성은 없다. <결혼 안식년>
그는 저렴한 나시 짬뿌르 집에 가면 이렇게 말했다. ‘진짜 더럽네. 어떻게 먹어.’
그는 깔끔한 나시 짬뿌르 집에 가면 이렇게 말했다. ‘더럽게 비싸네. 맛도 없고.’
나는 옆에서 한숨만 쉬었다. 이상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분명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저 잠시 마음이 비뚤어지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무엇도 마음에 안 들고, 뭘 해도 불만인 그런 시절을 겪고 있는 것뿐일까. 청소년기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그럴 수 있으니까. 감기 오듯 그냥 그런 시절이 올 수도 있으니까. 분명 멋진 사람이었고 한때 내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가 우연히 우붓에서 그런 시절을 겪고 있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아이는 무럭무럭 영글었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생각만큼 빨리 자라지 않았다. 삐걱거리는 날들이 많아졌다. 한국만 떠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던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여행을 통해, 모험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건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인가. 한국에서 나는, 그가 가장의 무게가 힘들어서, 가진 것 없이 시작해 기반을 닦느라 힘들어서 삶을 즐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여유로운 곳이라면 그도 나처럼, 그토록 불안해하지 않고 모험을 통해 함께 성장하면서 삶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우붓의 그를 보며 깨달았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구나. 어떤 사람은 안정된 생활을 통해, 먹고사는 것에 대한 걱정이 해결된 다음에만 성장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혼은 결국 그렇게 다른 사람과도 함께 살기로 한 약속. 그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이 내가 우붓에서 배워야 할 마지막 인생 수업인 걸까. 아이는 잠들고 그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밤,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책을 읽었다.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 앞에 오직
하나의 인생만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아파치족 인디언들의 결혼 축시라고 했다. 빈땅 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책을 덮어버렸다. 하나의 인생만 있으라니! 지붕이 되어 주고 따뜻하게 해주는 것 다 좋다! 하지만 하나의 인생만 있으라니! 사람이 두 명인데!
평행을 달리던 두 사람의 인생이 결혼으로 하나가 될 수도 있다. 그래야 행복한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대로 평행이어야, 그 거리감이 있어야 행복한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 행복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결혼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평행선이기를 바랐다. 오랑캐를 무찌르자며 폴짝폴짝 뛰던 고무줄놀이도 나는 한 줄보다 두 줄이 쉬웠다. 다른 페이지를 폈다.
해답은 없다.
앞으로도 해답이 없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해답이 없었다.
이것이 인생의 유일한 해답이다.
- 거투르드 스타인
그래, 답은 없다. 나의 인생에도, 그의 인생에도, 함께 하는 우리 인생에도. 그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답은 없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찾는 것이 우리의 몫이겠지. 찾지 못해도 상관없다. 찾는 과정이 어쩌면 인생의 전부, 결혼의 전부일지도 모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