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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짓 거 한 번 바짝 엎드려 봅니다

춤추며 배운 인생의 비밀

by 아리



살사가 화려한 손동작과 현란한 턴으로 추는 춤이라면, 바차타는 엉덩이로 추는 춤 같았고, 키좀바는 길고 날씬한 다리로 추는 춤 같았다. 탱고와 비슷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와 더 자유로워진 춤. 어떤 춤이든 상대와의 호흡이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민감하게 상대를 느껴야 하고 또 따라야 하는 춤. 바로 키좀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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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어깨가 왜 이렇게 솟았어! 힘을 빼고 내려. 그래, 그렇게. 발끝은 안쪽이 아니라 바깥으로 포인 하라고. 그래야 선이 더 길어지고 예쁘단 말이야."



"자, 이 오른손 힘이 너무 세잖아. 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나하고 같은 힘만 주라고 했지? 그래야 파트너가 자연스럽게 리드할 수 있어. 나한테 기대면서 버티지 말고 네 코어와 다리로, 스스로 중심을 잡아. 그래야 내가 다음 동작으로 쉽게 넘어간단 말이야. 어, 다음 동작 넘어가니까 또 손에 힘 들어갔잖아. 손은 거들뿐! 발가락에 힘을 주고 바닥을 움켜쥐란 말이야! 그래, 그렇게!"



"같은 동작도 리더의 힘에 따라 크게 할 수도, 작게 할 수도 있고, 부드럽게 혹은 절도 있게 할 수도 있어. 전부 리드에 달려 있어. 오오, 나보다 더 많이 갔잖아. 내가 보폭을 줄이면 너도 같이 줄여야지."



"손이 괜찮아지니까 이제 다리가 문제지? 한 번에 하나만 신경 쓰면 안 돼. 손, 다리, 발끝, 어깨, 엉덩이, 한꺼번에 다 집중! 네 몸 구석구석에 뇌가 하나씩 달려 있다고 생각해봐."



"혼자 음악 듣고 너무 신나지 말 것! 물론 음악도 들어야 하지만 팔로워는 음악보다 리드가 더 중요해. 리드에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팔로워들이 가장 리드하기 힘들어. 내 호흡, 내가 전달하는 에너지에만 집중해. 가장 중요한 건 따르는 거야. 다음 신호를 예측하지 말고 한 박자 늦게 따라간다고 생각하고 느껴봐. 키좀바에서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 몸이 음악에 반응한다고?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음악보다 리딩이야. 네 식대로 음악을 해석하지 말고 리더가 음악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을 따라야 해. 항복! 완전히 항복해야 한다고!”



“아, 정말, 팔로워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구나. 내가 살면서 무엇에든 그렇게 항복해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이렇게 어려운가 봐!”



“하하, 그럴 수도 있지. 가끔은 나를 온전히 맡길 때도 있어야 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가끔은 더 아름답지. 인생도 춤도 똑같아. 팔로워가 완전히 항복할 때 두 사람이 마치 한 사람처럼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출 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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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물러남의 미학을 조금이나마 깨달았지만 내 삶은 내 뜻대로 끌고 가려는 노력의 연속이었다. 이기고 싶었고 앞장서고 싶었다. 장애물이 생기면 돌파하고 길이 아닌 곳은 길로 만들면서. 그렇게 삶을 이겨 먹고 싶었다. 그런데 지란다. 항복하란다. 무조건 받아들이고 따르란다. 그래야 더 아름다운 춤이 된다고. 오직 파트너의 신호에 따라 그가 원하는 동작을 해내야 춤이 더 아름다워지는 것처럼, 삶도 그럴 때 더 아름다워지는 것일까. 삶이 던져주는 문제를 척척 받아 하나씩 해결하면서 그렇게 성장하는 것일까.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결혼도 육아도 내 뜻대로 끌고 가려고 할 때, 나 혼자 앞장서서 가려고 할 때는 여기저기서 문제가 툭툭 터졌다. 가끔은 앞장서지만 또 가끔은 물러나 지켜보기만 해야, 몇 발짝은 상대의 흐름을 따라가기도 해야 부드럽게 풀렸다. 남편과의 관계도, 아이와의 관계도.


그래, 받아들임. 에잇, 그놈의 받아들임. 뭘 그렇게 받아들이라고, 참. 하지만 춤은 그렇게 툴툴대면서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까짓 거, 한 번 바짝 엎드려 보지 뭐, 라고.



“그래, 내가 너무 내 고집만 피우고 살아서 이제 항복 좀 하라고 지금 여기서 춤을 배우고 있나 보다! 잘 안 해봐서 어렵지만, 그래 그 항복, 어디 한번 해 보자!”



“좋았어. 바로 그거야. 네가 이제야 인생을 좀 아네. 자, 다시 해 보자.”



다시 눈을 감았다. 세포 하나하나를 깨웠다. 손에서, 가슴에서, 다리에서 오는 그의 신호에 바짝 엎드려 집중했다. 오직 따르기 위해. 그렇게 무조건 따르다 보면, 잔소리를 아무리 들어도 안 되던 동작을 마침내 근육이 받아들인다. 늘 턱턱 걸리던 동작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그런 순간을 즐겼다. 춤이라는 건 사실 그런 순간에의 중독인지도 모른다.


춤추는 시간은 나를 새로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어떤 동작을 할 수 있고 없는지 발견하는 것, 안 되는 동작의 이유를 파악하는 것, 새로운 동작을 시도해 익히는 것, 결국 움직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 내게는 그것이 새로운 세상이었다. ‘나’라는 새로운 세상. 늘 솟아 있던 어깨를 녹여 내리고, 출렁이던 배에 힘을 줘 당기고, 상체와 하체를 따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다 신기하고 새로웠다. 음악은 익숙해도 몸은 늘 새롭게 움직였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잘 섞인 계란 흰자와 노른자처럼 고운 색을 만들어낼 때 나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가, 거기 있었다.


내가 탐험하고 싶은 세상은 늘 나 자신이었다. 넓은 세상을 탐하면서도 늘 궁금했던 건 바로 나였다. 세상과 더불어 살라 한다. 맞다. 관계에서 얻는 충만함이 바로 행복이라 한다.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가장 궁금했다. 다음번에 또 같은 음악이 흘러나올 때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나는 또 어떤 모습일지가, 답답하고 애처롭지만 나는 제일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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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춤은 함께 추는 것, 나만 궁금해해서는 아름다운 춤을 출 수 없다. 상대 역시 궁금해하면서 동시에 무조건 따라야 했다. 나의 의견은 접어두고 오직 그의 신호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야 둘이 함께 아름다워졌다. 항복해야 아름다워졌다. 춤도, 그리고 결혼도. 결혼해서도 나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남편과 내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내가 사랑하는 우붓을 그는 싫어한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했다. 내가 그리고 있는 결혼과 그가 그리고 있는 결혼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결혼이 꿈틀꿈틀 움직이며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앞에 펼쳐지려 하는 삶에 바짝 엎드려 항복하고, 우선 그를 따라 우붓을 떠나기로 했다.


떠나기 전까지 매일 밤 춤을 추었다. 예민한 손끝에, 힐을 신은 발끝에, 곧게 편 등과 음악에 달궈지는 심장에 우붓을 새겨 가려고. 그렇게 매일 밤 춤을 추며 삶에 항복해 바짝 엎드리는 연습을 했다. 어느 날 밤, 살사 선생님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아궁이 말했다.


"아리는 결국 다시 우붓에 와서 살게 될 거야."


"하하, 당연하지!"


그저 웃으며 맞장구쳤지만, 아궁의 그 말이 내 마음을 둥실 띄워주었다. 지금은 이렇게 떠나지만, 사랑하는 우붓에 다시 돌아올 운명이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오게 될지는 오직 발리의 신들만 아시겠지.


나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우붓에 두고 간다. 아직 최선을 다해보지 않은 이 결혼에, 이제 최선을 다해보러 간다. 이혼은, 독립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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