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의 필요성을 따지며
비바람을 뚫고 온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한다. 분명 디카페인 콜드브루를 주문했는데, 가격을 보니 그냥 콜드브루다.
나는 소위 말하는 ‘쫄보’라서, 이런 일이 있어도 쉽사리 정정 요구를 하지 못한다.
본의 아니게 내 카페인 금식은 2주 만에 마무리하게 되었다. 아마도.
‘없이 사는 삶’에 관심을 갖고 나서부터, 내가 가진 물건 하나하나가 존재할 필요성을 고민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정확히는 내가 소유할 필요성이겠다).
당장 오늘도 필통 속에 펜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고르고 고른다고 딱 세 자루(샤프, 삼색 볼펜, 중성잉크펜)만 챙겨 넣느라 집 밖을 나오는데 시간을 지체했다.
이제부터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느라 머리가 지끈지끈하겠다.
특히 전자기기의 필요성을 더 따져보게 되었다. 이럴 때마다 타깃은 항상 어플이며 액세서리 등등에 돈깨나 투자한 아이패드가 된다.
종이공책의 대체재로서 큰 기대를 안고 70만이 넘는 거금을 들여 구입했건만, 결국 유튜브 재생기로 전락해 버린 이 애물단지를 나는 아직도 중고로 팔아버려야 할지 말지를 매번 고민 중이다.
맥북 프로를 보상판매할 때는 이렇게 오래 고민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나는 태블릿 PC가 가진 묘한 매력을 외면하지 못하고 애써 끌어안으려고 한다.
아마 적당한 사용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쭉 고민만 할 예정이다.
어쨌든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오늘은 날이 퍽 시원하다.
비는 오전에만 좀 퍼부을 뿐 지금은 가벼운 가랑비만 적당히 흩뿌리고, 바람은 우산이 좀 뒤집어질 뿐이지만 시원스럽게 분다.
8월에 26도라니, 아마 오늘이 8월 중 가장 시원한 날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결국 나는 종이와 펜이 몸이 맞는 듯하다.
언제나 노트와 펜이 가방 속에 있어야만 안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