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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Oct 20. 2023

1-1. 주원의 꿈(2)

그래서 주원은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을 수 있다면 그 죽음으로 가는 길엔 할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차라리 엄마가 나왔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았다. 어릴 때 자신을 버리고 집나간 엄마를 그리워하는 자식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스토리니까. 그런데 할아범이라니. 지금도 징그럽게 증오하는 할아범이 꿈에 나오다니.  

나비펜션의 방은 아침에도 유난히 습했다. 주원은 멍한 얼굴로 내내 손 부채질을 하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 아이들을 주욱 훑어보았다. 세미는 눈썹을 살짝 팔자로 내린 채 자신을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세미는 늘 걱정이 많은 친구였다. 주원이 장난으로라도 "할아범이 죽어버렸음 좋겠어."하고 말하면, 먹이를 한 달간 먹지못한 고양이같은 눈으로 "그런 말 하지마."하고 주원을 토닥거리곤 하던 친구였다. 주원은 걱정스런 표정의 세미 눈을 응시하며,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며 괜스레 홀가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주원은 그날 밤 꿈에서 자신의 집, 거실 한복판에 앉아있었다. 쇼파가 있지만 쇼파위에 앉은 것이 아닌, 바닥에 앉아 쇼파에 등을 기댄 채였다. 주원이 단 한번도 편안하다고 느껴본 적 없는 거실이였지만, 그 꿈 속에서 주원은 현실보다 곱절은 더 불편한 기분을 느꼈다. 내장 저 깊숙한 곳 안에서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주원의 온 몸을 휘감았다.  


 


 처음에 주원은 이 곳에 혼자 있다고 생각했다. 눈을 꼭 감고 있긴 했지만, 주위가 쥐 죽은 듯 고요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눈을 뜨면 눈 앞에 무엇이 있을지, 주원은 겁이 나기 시작했다. 실 같은 구멍만 볼 수 있도록 눈을 살며시 뜬 순간, 주원은 자신이 이 곳에 혼자 있는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가늘게 뜬 눈꺼풀 사이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피사체가 일렁거렸다. 주원은 꿈 속에서 꼭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불이 꺼진 거실에 어렴풋이 보이는 피사체를 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할아범이였다.  


 


할아범은 금방이라도 세상을 하직할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모로 세운 채 주원을 응시하고 있었다. 주원은 순식간에 등에서 식은땀이 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현실에서 할아범은 늘 안방 침대에 있었고, 꿉꿉한 냄새가 진동하는 안방에만 가지 않으면 할아범을 이렇게 정면으로 볼 일은 거의 없었다. 꿈에서나마 마주한 할아범의 혈혈한 낯은 단 1분도 그대로 보고 있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피부에 올록볼록 튀어나온 사마귀들은 할아범이 가진 또 다른 눈 같았다. 그 모든 눈들이 일제히 주원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와 반대로 할아범의 원래 눈은 여기저기가 너무 시뻘겋게 충혈되어서 꼭 등뒤에 칼이 꽂혀 죽어가는 사람의 눈 같았다. 온 몸에 혈색이 없이 푸르딩딩한 모습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목에는 빳빳하게 핏줄이 서있었다. 주원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고쳤다.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연스럽게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할아버지."  


 


"상년아." 


꿈속에서도 입을 열자마자 상욕이라니, 주원은 맥이 탁 풀렸다. 주원은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흰 방에 파란버튼이 정중앙에 놓여있을 것을 상상했던 주원은 점점 가슴이 갑갑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건 주원이 꾸고 싶은 꿈이 아니었다. 당장 깨고 싶은 꿈일 뿐이었다.  


 


"죽고 싶다했냐?" 


할아범은 낡은 손톱으로 이 사이를 쑤시며 짭-짭-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주원을 집요하게 응시하며 이를 쑤시던 할아범은, 주원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독촉하려는 듯 둘 사이에 있는 커피 테이블을 손톱으로 톡톡- 두들기기 시작했다.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소리만이 방안에 울려펴졌다. 주원은 꼭 수술대에 누워 전신마취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온 몸이 옥죄어오는 기분이었다.  


 


 주원은 곁눈질로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어두컴컴한 그 곳은 현실 속 주원의 집 거실과 모든 것이 똑같았다. 낡은 테레비 옆 장식장에 놓인 주원의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 그 옆에 나란히 놓인 주원 엄마의 젊었을 적 사진. 할멈은 종종 그 사진을 멍하니 쳐다보는 주원의 뒷통수를 가만히 쓸어넘기며, 느그 엄마가 그래도 너 보고싶다고 한다고 넌지시 주원에게 귓속말을 해주곤 했다. 주원은 그 말이 거짓말임을 10살이 넘어가던 때부터 알 수 있었는데, 단 한번도 주원의 엄마가 그 집을 찾아온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찾아도 현우가 말한 '파란 버튼'은 도통 보이지를 않았다.  


 


 역시, 흔하디 흔한 학교괴담, 인터넷에서 떠도는 헛소문이었을까. 아직도 할아범은 주원의 맞은편에서 손톱을 일정하게 두들기고 있었다. 꼭 벽에 걸린 벽시계에서 울리는 초침소리같기도 했다. 주원은 이 꿈에서 깨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할아범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쾅-하고 내려쳤다. 할아범의 목에 돋은 핏줄이 다시금 선명해졌다. 


 


"죽는 게 장난인 줄 알아? 호강에 겨워 심간이 편하니 아주, 늙은이 앞에서 별 난리를 다 치는구나."  


할아범은 다시 손톱으로 이 사이를 쑤시고 있었다. 주원은 계속 고개를 젔다가, 이내 검지손가락으로 양쪽 귀를 거칠게 쑤셔막았다. 귓속 살로 손톱이 깊숙이 찔러들어오는 느낌이 느껴지자, 주원은 갑자기 이것이 혹시 꿈이 아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할아범은 다시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더니, 그 손을 짚고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별것도 아닌 모양이구만. 죽고싶다느니 헛소리 하지말고, 공부나 똑바로 해라." 


 


 할아범은 이내 안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츄리닝 바지 안쪽 주머니를 뒤져 꼬깃꼬깃한 하얀 종이를 주원 앞으로 툭 집어던졌다. 주원은 그 종이를 들어 펼쳐보지 않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주원이 7살 무렵, 유치원에서 어버이날이라며 손바닥만한 쪽지에 부모님에게 드리는 편지를 써오는 숙제가 있던 날이었다. 주원은 거실 테이블에 종이를 펼쳐놓고, 무엇을 쓸까 한참 고민하다가 엄마, 보고싶어요. 라고 짤막하게 쓰기 시작했다. 주원은 삐뚤빼뚤한 글씨를 한두번 덧써 더 진하게 그리고는, 화장실을 갔다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던 할아범의 눈 앞에 뛰어들어 종이를 펼쳐보였다. 할아범은 자랑스레 두 팔을 뻗고 있는 손녀딸을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순식간에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둘러 주원의 팔을 밀쳐냈다. 주원은 놀라 뒤로 자빠지며 엉덩방아를 찢었고, 그 기세에 손에 들려있던 종이는 주원의 엉덩이 밑에 깔리며 힘없이 구겨져버리고 말았다. 할멈이 달려오며 주원을 품에 안았지만, 주원의 울음은 하루종일 쉽게 그치지 않았다.  


 


 그 날의 그 종이였다. 주원은 그날부터 지금까지도 할아범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미가 급하고 화가 많으며, 손녀딸을 그렇게 예뻐하지 않는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 행동까지 이해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주원에게는 없었다. 주원은 종이를 손바닥에 놓고 한번 크게 구겨보았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아직 한쪽이 막혀있는 주원에 귀에 거슬리게 크게 들려왔다.  


 


 할아범이 지팡이를 바닥에 탁, 내려놓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안방문이 요란하게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닫혔다. 주원은 순식간에 맥이 풀려 고개를 바닥에 파묻었다. 최근 몇 년간 꿨던 꿈 중에 가장 추악하고, 가장 재미없는 꿈이라고 주원은 생각했다. 하루 빨리 날이 밝길 고대하며, 주원은 손바닥에 들러붙어있는 종이를 펴 삐뚤어진 글자를 읽어보았다. 


 


 


 


"할아버지, 죽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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