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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Oct 09. 2023

2. 세미의 꿈

 주원이 꿈에 할아버지가 나왔다며 울 때, 세미도 간밤에 꾼 꿈을 생각했다. 세미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밤 세미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도 한참을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몇 년은 안 빤듯한 찝찝한 이불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 벌레라도 기어 다니는 듯 지속적으로 방바닥을 스치는 소리는 세미의 신경을 한껏 곤두서게 했다. 잠에 곧 들 것 같다가도, 누군가 뒤에서 머리채를 훅 잡아채는 것처럼 놀란 듯이 깨기 일쑤였다. 평소에도 세미가 늘 겪는 증상이었다. 세미는 인터넷에 이런 증상들을 찾아보고 나서, 친구들에게 자신은 '불면증'인 것 같다고 말하고 다니곤 했다. 결국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에야 겨우 잠에 든 세미는, 꿈에서도 나비펜션을 찾아가고 있었다. 현실보다 더 어둡고, 미로같이 복잡한 곳이었다. 세미는 꿈에서도 주원의 손을 부여잡고, 불안감에 이까지 딱딱 부딪혀가며 조심스럽게 나비펜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슈." 


 카운터에서는 현실에서도 심드렁하게 앉아 주원에게 키를 건네주던 펜션주인이 앉아있었다. 현실과 닮은 얼굴이었지만, 꿈에서는 왜인지 모르게 수염이 더 덥수룩하고, 인상이 조금 더 험상궂어 보였다. 주원은 카운터 주인의 눈빛을 피하면서 세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세미는 불안한 눈빛으로 지영과 이서를 쳐다봤지만, 그들은 거의 등을 돌려 벽을 쳐다보고 있는 수준이었다. 세미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숙박, 하러 왔어요."  


펜션주인은 노골적으로 세미를 위아래로 훑었다. 세미의 앳된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이내 세미의 가슴께를 더 오래 응시하고 있었다. 세미는 이제 거의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뒤를 돌아봤지만, 지영, 주원, 이서는 아예 저만치 멀어져 자기네들끼리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세미는 몇 번이나 그들을 불렀지만, 그들에게까지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마지못해 다시 앞을 돌아보니, 펜션 주인은 여전히 세미의 가슴을 응시하며 돈을 내놓으라는 듯 손바닥을 위로해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세미는 바지주머니를 뒤졌다. 돈은 만져지지 않았다. 이제 펜션주인은 주머니를 뒤지는 세미의 가랑이 사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세미는 빨리 돈을 주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으나, 어쩐지 영영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펜션주인은 입맛을 한번 쩝- 다시더니, 이내 됐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중학생이지?" 


"아니요." 


"몇 살인데?


"대학생이요." 


"너네 넷 다?" 


"네." 


세미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나머지 세명은 세미의 시야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세미의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넓은 지도가 새겨진 지 오래였다. 펜션주인은 고개를 숙여 카운터 아래에서 뭘 덜그럭 거리더니, 406호라고 새겨진 키를 카운터 위에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여전히 세미의 이곳저곳을 응시하면서, 펜션주인은 턱으로 그 키를 가져가라고 세미에게 지시했다.  


"감사합니다."  


세미는 빠르게 키를 쥐고 뒤를 돌았다.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지영, 주원, 이서를 차례대로 불렀다. 아무리 크게 불러도 그 세명 중 어느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구, 이런. 친구들이 다 먼저 갔나 보구나." 


펜션주인이 음흉한 말투로 농담을 건네며 로비가 떠나갈 듯 웃어제끼기 시작했다. 동굴 속에서 맹수가 울부짖는 것처럼 기분 나쁜 저음의 웃음소리였다. 세미는 이마에 계속해서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닦아내며,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지, 406호로 가려면 어디에 가야 하는지 열심히 두리번거리며 찾기 시작했다. 카운터 오른편에 긴 복도가 보였지만,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왠지 그곳으로 가야 방이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친구들도 방을 찾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방을 찾아 들어가면, 주원이 말한 파란 버튼이 있는 것인가. 주원은 식은땀이 난 이마 위로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학생, 406호는 저쪽이야." 


펜션주인이 거대한 몸을 일으키자, 앉아있던 의자가 기지개를 켜듯 끼긱거리는 괴상한 소리를 냈다. 펜션주인은 능글맞게 웃더니 카운터 오른쪽 구석 뚫려있는 개구멍으로 몸을 숙여 얼굴을 들이밀었다. 세미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자, 펜션주인은 엉거주춤하게 네발로 기는 자세를 취한 채로 흥미롭다는 듯 세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왼쪽 검지손가락에는 또 다른 406호 키가 꽂혀 있는 상태였다. 


"학생이 무서워하는 것 같으니, 데려다줄게." 


"아뇨, 괜찮아요." 


세미는 이것이 호의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1년 전, 세미는 엄마를 3개월 넘게 졸라 한 달 정도 피아노 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다. 선생이라고는 키가 크고 빼빼 마른 중년의 남자 한 명과, 눈이 쭉 옆으로 찢어진 중년의 여성 원장뿐이었던 작은 공간이었다. 빼빼 마른 남자 선생은 세미가 독방에서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을 때면 으레 자신이 봐주겠다며 들어오곤 했는데, 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세미의 가슴이며 엉덩이를 슬쩍 만지곤 하는 것이었다. 그 행동이 너무도 전략적이고 교묘해서, 그 어떤 반항을 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세미는 딱 한 달을 채운 시점에 그곳을 그만두었다. 피아노에 막 재미를 붙이려던 시점이었다.  


 호의는 독이다. 그러나 펜션주인은 거침없이 카운터를 빠져나와 세미 옆에 섰다. 펜션주인이 세미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얹으려 하자, 세미는 소리를 지르며 몸을 돌려 그에게서 빠져나왔다. 세미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한 이명만이 세미의 귀에 맴돌 뿐이었다. 펜션주인은 험상궂은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에 끼워놨던 열쇠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당장이라도 세미에게 달려들어 맹수처럼 세미의 살점을 잡아 뜯을 것만 같았다. 세미는 406호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그 길고 어두운 복도로 빠르게 내달렸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독방에서 그 선생이 들어오면 세미는 피아노 치는 속도를 한껏 올리곤 했다. 그때 치던 피아노 소리가 꼭 귀에 둥둥 거리며 울리는 것 같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복도를 내달리는 세미의 뒤에 펜션주인의 헐떡이는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함께 울렸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합주곡이었다. 파란 버튼이고 뭐고, 그저 빨리 깨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했다. 


순간, 복도가 아래로 꺼지는 느낌이 들며 세미는 확 잠에서 깨었다. 주원의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온 아침 7시였다. 그 합주곡은 주원의 벨소리였다는 걸 깨닫자, 세미는 신경질을 내며 주원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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