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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Oct 20. 2023

4. 이튿날, 주원의 밤

  현관문을 여는 주원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문간에 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할아범을 생각하니, 주원은 당장이라도 뒤를 돌아 도망치고 싶은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갈 곳이 마뜩잖지 않다는 것은 늘 슬픈 일이었다. 주원은 늘 그래서 빨리 성인이 되고 싶었다. 성인이었다면 이 구렁텅이 같은 곳에 발을 들이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 

끼익-하고 현관문이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열렸다. 눈을 부라리며 서있을 줄 알았던 할아범은 문간에 없었다. 슬쩍 둘러보니 안방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그 틈으로 날카로운 쇳소리 같은 할아범의 코골이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주원은 아주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곤, 깨금발로 집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꿈에서 본 그 테이블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낮에 할아범이 거기서 간식이라고 잡수신 건지 부스러기가 이곳저곳에 흩어져있었다. 주원은 간밤의 꿈을 생각했다. 자신에게 죽으라고 타박하던 할아범을 생각했다. 할멈에게도 그렇게 타박했을까-, 주원은 할멈에게 익히 듣던 젊었을 적 할아범을 상상해 보았다. 할멈이 어쩐지 더 불쌍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주원은 거실 불을 켜지 않고, 꿈속에서와 똑같은 구도로 쇼파 앞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천천히 뜨며, 꿈에 나왔던 할아범을 생각했다. 할아범이 집어던진 꾸깃한 쪽지를 생각했다. 죽고 싶어요, 할아버지. 죽고 싶다는 생각은 주원에게 친숙한 감정이었지만, 주원은 그 생각을 단 한 번도 할아범에게 내비친 적은 없었다. 애초에 할아범이 주원의 뇌 속 깊숙이 자리한 생각들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저 동네 뽀글 머리 아줌마가 하는 반찬가게에서 집히는 대로 사온 반찬들로 대충 밥을 차려주다가 문득, "공부는 열심히 허냐-"하면, 주원은 그저 "넵." 하고 된밥을 입에 욱여넣는 것이 두 사람 하루치 대화의 끝이었다. 주원의 반이 어디고, 주원의 성적이 어떻고, 주원이 어떤 아이돌에 관심이 있으며 친구는 누구누구인지... 그런 소소한 것들도 알 의지가 없는 그 늙은이가, 어찌 주원의 깊숙한 우울감을 알아챌까. 


 

 주원 또한 찰나의 순간도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할아범이 찌그러진 얼굴로 어색하게 짝다리를 짚고 선 채 본인 얼굴만큼이나 주름진 바지 주머니에서 오만원권 지폐 몇 개를 꺼내 세고 있을 때면, 주원은 그 모습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않으려 애를 쓰곤 했다. 저 인간의 돈뭉치 몇 개에 기대 살아야 한다는 비참함, 삶을 고작 저 노란 종이로 연명해야 한다는 서글픔, 그래도 손녀라고 자신이 받는 먹이에 일부라도 떼주고 있는 노인에 대한 연민이 물밀듯이 밀려올 때면, 주원은 어떻게든 그 감정의 일부라도 내비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으레 받아야 할 것을 받는 사람처럼 할아범의 손에 채가듯 종이다발을 들고, 황급히 자신의 방으로 도망치곤 했다. 굳게 닫힌 문뒤에서 노란 종이다발을 버리듯이 침대 위에 던지곤, 할아범의 귀에는 자신의 울음소리가 한 톨이라도 들리지 않도록 늘 숨을 죽이고 울었다.  


 


 이미 열두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거실 벽에 걸려있는 낡은 시계의 초침이 쉬지 않고 내달리고 있었다. 아직 어린 주원이 상념에 오래 잠겨있기엔 너무도 늦은 시간이었다. 주원은 머리를 스륵 뒤로 넘겨 쇼파 끄트머리에 기대었다. 나비펜션을 갈 때 입고 갔던 검은 반팔티와 땀에 절은 청바지를 그대로 입은 상태로, 주원은 꼭 죽은 사람처럼 잠에 들었다. 




 "주원아." 


 


 주원은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주원은 그제야 자신이 거실에서 잠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벽시계를 보니 새벽 3시를 넘긴 시간, 주원은 끙-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마른세수를 했다. 


 


 눈앞에 서있는 사람은 할아범이었다. 화장실을 가려다 말고 주원이 거실에서 잠든 것을 보곤 주원을 깨운 것이었다. 주원은 눈을 한참 비비다가 '죄송해요, 들어갈게요.' 하고 중얼거리고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밤에 좁은 공간에서 내내 접혀있던 골반과 다리에서 쥐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주원은 일어서서 종아리를 주물거리기 시작했다. 솜털이 빼곡하게 자라난 주원의 맨다리가 기분 나쁘게 만져졌다. 어라- 분명 나는 긴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주원은 뒤통수에 뾰족한 화살이 박힌 것처럼 얼어붙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주원은 흰 반팔티에 흰 반바지 차림이었다.  


 


"주원아-" 


 


할아범은 주원 앞에 꼿꼿이 서서, 눈을 끔뻑거리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빛을 잃고 고장 난 가로등처럼 할아범은 온통 새까맸는데, 그 모습이 주원의 눈에는 꼭 저승사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할아범은 이내 한 발짝 주원에게 다가왔다. 


 


"간밤에 말이다- 이 할애비가 생각을 해봤는데..." 


 


할아범은 말끝을 흐리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일어서있는 주원에게 다시 앉으라는 손짓을 한번 하고는, 본인도 끙- 소리를 내면서 자리에 앉았다. 주원은 아직도 시간이 멈춘 듯이 얼어붙어 있는 상태였다. 할아범이 천천히 자리에 앉는 걸 눈으로 좇으며, 주원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상태로 손톱 거스러미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할아범은 테이블 위에 예의 그 쪽지를 다시 펼쳐보았다. 주원은 작게 탄식했다. 좀 더 또렷한 상태였다면 분명 꿈이라고 생각했을 상황이지만, 지금의 주원은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으로 혼란스러웠다. 손톱 거스러미들을 쥐어뜯다 보니 온 손톱에서 검붉은 피가 배어 나오는 기분이었다. 주원은 그제야 자리에 앉아 그 쪽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분명 글씨는 어릴 적 자신의 글씨가 맞다. 그리고 어제 나비펜션에서 꾼 꿈에서 본 쪽지와도 동일했다. 


 

"할아버지, 죽고 싶어요."   



이 쪽지를 본 간밤의 할아범은 헛소리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일축했었다. 그렇게 내질러 놓고는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던 것인지, 할아범은 전에 주원이 본 적 없는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할애비가 생각을 해봤는데..." 


 


했던 말을 반복하며 할아범은 혀끝으로 무너진 잇몸 사이사이를 쩝쩝- 대며 쑤셨다. 한참을 망설이는 듯 이 사이 이곳저곳을 쑤시더니, 할아범은 손에 쥔 호두알 모양의 마사지볼을 하염없이 굴리기 시작했다. 딱딱- 호두알들이 굴러가는 소리가 주원의 귀를 간지럽혔다. 


 


"네 어미한테, 연락을 좀 해봐야겄다. 야가 벌써 사춘기인가- 쯧." 


 


"아니- 안 돼요. 안 돼요, 할아버지. 엄마한텐 안 돼요, 연락하지 마세요."  


 


주원은 용수철이 튕겨나가듯 황급히 할아범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 애원하는 목소리로 빌었다. 씨발- 고작 손녀에게 한다는 소리가, 지 딸도 내팽개치고 도망간 어미한테 일러바친다는 협박이라니-, 죽고 싶다는 소리나 뇌까리는 사춘기 골칫덩이를 서로 떠넘기는 애미와 할아범이라니, 주원은 아직도 꿈과 현실이 헷갈렸다.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이어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주원은 이제 두 손바닥까지 모아 싹싹 비비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제발요. 엄마한텐 안 돼요." 


 


할아범은 승전보를 쥔 병사처럼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손바닥에 올려놓은 호두알 두 개를 더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주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그래야지. 이 할애비도 이제 살 날이 얼마 없는디, 손녀딸이라고 하나 있는 게 효는 몰라도 패륜은 허지 말어야지. 할애비는 잔다- 쓰잘데기 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드가 자라."  


 


할아범은 단호하게 주원을 혼내듯이 말끝을 맽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원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꿇고 있던 무릎을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원은 입속으로 '안녕히 주무세요-'하고, 불편한 다리로 어정쩡하게 걸어가는 할아범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이게 무슨 꿈인가- 이틀이나 이런 거지 같은 악몽을 꾸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주원은 생각했다. 내일 학교에 가면 당장 현우에게 따질 것이다. 네가 말한 파란 버튼은 코빼기도 보지 못하고, 인생에서 가장 혐오하는 인간과 이틀이나 독대하게 되었다고. 심지어 협박까지 받았다고 말이다.  


 


'툭' 


 


그때,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거실 바닥에 청아하게 울렸다. 할아범이 굳게 닫힌 안방 문고리를 열다가 손에 쥔 호두알을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었다. 그 호두알은 데굴데굴 굴러 거실 한가운데 오도카니 서있는 주원의 발 밑을 강하게 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했다. 주원이 무심코 내려본 그 호두알은, 이상하게도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할아범이 가지고 있는 호두알은 나무로 만든, 성게처럼 가시가 삐죽삐죽 솟아있는 호두알이었다. 주원이 어릴 적 할아범에게 애교를 부려보겠다고 파고들 때, 주원의 어깨를 떠밀던 할아범의 손아귀에 늘 쥐어져 있던 그것. 주원은 그것의 색과 모양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설프게 도금을 한 황금색 호두알.  


 


그런데 주원의 발 밑에서 빛나는 그것은 색도, 모양도 예의 그것이 아니었다. 동그란 호두알이라기 보단, 오백 원 동전 크기의 약 두 배쯤 되어 보이는 타원형의 납작한 딱지 같은 것이었다. 색도 언뜻 황금빛이 섞여있긴 했지만, 오히려 푸른빛에 가까웠다. 주원은 한참이나 그 딱지 같은 것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사이에 할아범은 성큼성큼 다가와 그 파란 것을 휙 낚아챘다. 할아범이 안방으로 들어가고 방문이 쾅 닫히자, 주원은 그제야 그 호두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드디어 그 버튼을 보게 된 것이다.  


  


주원은 소스라치듯 잠에서 깨었다. 오전 7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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