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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Oct 20. 2023

5. 사흗날 아침(1)

주원은 땀에 절은 채였다. 핸드폰에서는 예의 그 알람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주원은 할아버지가 깰세라, 황급히 액정을 손가락으로 휘갈겨 알람을 종료시켰다. 7시라는 시간은 한창 사춘기를 겪는 소녀에게는 꾸준히 잔인한 시간이었다. 본인이 어떤 상황이든, 어떤 감정이든 당장 몸을 일으켜 등교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백팩처럼 주원의 등살을 물고 쫓아왔기 때문이다. 할멈이 떠난 후 첫 등교날, 길바닥에 주저앉을 것 같이 휘청거리는 주원의 어깨를 숨 가쁘게 치며 등교하던 학생들의 분주한 발소리가 아직도 주원의 귀에 선하다. 주원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늘 그래왔던 루틴대로 등교준비를 시작했다.


 


세수를 하고, 양칫물을 뱉는다. 거울을 잠시 쳐다본 뒤, 머리를 감는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꼼꼼하게 둘러멘 뒤, 금요일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져놓았던 교복을 다시 주워 입는다. 그 와중에서도 발끝에 굴러왔던 파란 버튼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 버튼을 눌렀다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닭살같이 일어난 팔뚝을 양손으로 쓸어 넘기며, 주원은 머리를 말리려 드라이기를 집어 들었다. 드라이기의 찬 바람을 나오게 하는 버튼이 파란빛을 내며 번쩍거리고 있다. 주원은 또다시 멈칫한다. 늘 덥다고 짜증을 내며 찬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던 주원이었지만, 오늘은 그 버튼을 보지 못한 척 가장 뜨거운 바람으로 머리를 말린다.


 


주원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비펜션에서 꾸지 못한 파란 버튼이, 왜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보이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왜 할아버지 손아귀에 다시 쥐어졌는가? 버튼이 굴러왔던 그 짧은 순간에 냉큼 눌렀어야 했던 것인가. 도둑고양이가 먹이를 잡아채듯 날래게 손을 뻗었어야 했나. 주원은 어쩐지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관짝에 들어간 사람인 마냥 손을 포개고 바르게 누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첫 기대와는 달리, 잽싸게 몸을 날려 버튼을 누를 수 있어야 죽을 수 있다니. 촌스러운 콩트를 보는 기분이었다.  


 


이 얘길 듣고 현우는 뭐라 할까. 손바닥을 눈앞에 합장 자세로 모으고 등을 뒤로 기대어 한껏 고심하는 척을 할 것이 뻔했다. '음, 그러니까-. 그다음 날에 버튼을 봤다는 말이지.' 하고는 다리도 한껏 들어 올려 고상한 자세로 꼬아댈 테다. '시간차-라는 건가?' 하며 어딘지 수상한 웃음을 목 뒤로 꿀떡꿀떡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주원은 아직 다 마르지 않아 미역처럼 풀이 죽어있는 머리카락을 대충 탈탈 털은채, '다녀오겠습니다' 하고는 쏜살같이 현관문 밖을 나섰다.  


 


 


***


 


 


"주원아!"


 


막 교실에 들어선 주원을 울먹거리며 부른 것은 세미였다. 세미는 금방이라도 찌그러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껏 내려간 눈썹과 가뜩이나 작은데 더 작아진 눈은 이제 아예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세미는 발까지 동동 구르며 주원의 팔을 잡으며, 주원의 겨드랑이 뒤로 머리를 욱여넣으며 안아달라는 시늉을 했다.  


 


"왜."


주원은 당황스러운 듯 팔을 빼며 뒤로 물렀다. 그도 그럴 것이, 반 친구들의 절반은 전부 다 세미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칠판을 멍하게 응시하며 앉아있는 아이, 턱을 책상에 붙이고 엎드려 바닥을 쳐다보는 아이, 맨 뒤편 사물함에 기대어 다른 아이와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아이. 모두가 다 한결같이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공기가 희한하게도 탁하게만 느껴졌다. 누군가 머리 위로 까만 물감을 뒤덮은 듯 천장과 바닥이 온통 까만색으로 물든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뭔데."


주원은 코웃음을 치며 세미를 마주 보았다. 세미는 말을 차마 뱉지 못하겠다는 듯, 입술 안쪽에서 한참을 굴리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리며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어느샌가 지영이 세미옆에 다가와 세미의 어깨를 온몸으로 감싸 안았다. 주원의 엄마가 주원을 버리고 간 날 할멈이 그랬던 것처럼. 세미의 어깨는 지영이 손을 대자마자 책상이 흔들릴 정도로 들썩거리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지영은 조용히 세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주원의 어깨너머를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현우가, 죽었대. 어제."


 


주원의 가슴께에 까만 물감이 뿌려진 것 같은 먹먹함이 솟았다. 거짓말, 장난치는 것 같다, 왜 갑자기?, 놀랍다, 내 게임머니는?, 아니, 이런 생각은 하면 안 되지. 파란 버튼은?, 선생님은 어딨지?, 슬프다, 답답하다, 심장이 조여 오는 것 같다, 여러 가지 낱말이 주원의 뇌 속에서 쓰레기처럼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 딱딱한 낱말들을 누군가 주걱으로 끊임없이 뒤섞는 기분이었다. 주원의 뇌 이곳저곳이 찔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지영은 흐느낌이 멎은 세미의 어깨에서 손을 떼곤, 주원을 똑바로 쳐다봤다. 지영의 표정은 평온했다. 뒤죽박죽이 된 주원의 얼굴을 보며 비웃기라도 하듯 지영은 한결 더 차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주원은 지영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장 지영의 턱 밑에 손을 넣고 뭔가를 벗겨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술렁거림이 잦아들 줄 모르던 교실은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자 일순 고요해졌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땀범벅이 된 젊은 남자선생은 허겁지겁 콧잔등에 걸쳐놓은 검은색 뿔테안경을 연신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한참이나 할 말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는 불쌍한 선생을 수십 개의 눈이 일제히 쳐다보고 있었다.  


 


새벽에 킥보드를 몰고 나갔다가, 화물차에 받았다고 한다. 선생이 만류해도 아이들은 몰래몰래 책상 밑에서 뉴스기사를 검색했다. 현우에 대한 기사는 실시간으로 쏟아졌다. 화물차 밑에 깔린 10대 남학생, 킥보드와 같이 빨려 들어가 온몸의 뼈가 골절, 그 자리에서 즉사... 주원은 옆자리 아이들의 얘기를 엿들으며, 괜스레 책상 밑에서 두 손을 불끈 쥐어보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주원."


 


오늘 하루는 수업을 전부 하지 않을 테니, 조속히 장례식장에 갈 채비를 하라는 말을 짤막히 남기고 담임은 다시 바삐 사라졌다. 주원은 자신의 어깨를 톡 치는 조심스러운 손길에 무심한 듯 뒤를 돌아보았다. 앞머리가 떡이져 두 갈래로 갈라진 채로, 다리를 베베 꼬고 있는 이서가 서있었다. 쌍꺼풀 테이프를 붙여 위아래가 볼썽사납게 달라붙어 있는 눈꺼풀을 힘주어 크게 뜨며, 이서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갈 거야?"


 


"가야지."


 


"안 가면 안 돼?"


나비펜션에서 주원에게 '네가 책임지라'며 길길이 날뛰던 이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서는 한 손으로는 자신의 머리를 뱅뱅 돌리며 꼬고 있었고, 한 손으로는 주원의 손가락 끝을 조심스럽게 잡고 있었다. 주원은 이서의 손을 뿌리치며 다시 한번 '가야지'하고 힘주어 말했다.  


 


"무섭단 말야."


이서의 볼멘소리가 주원은 말문이 막혔다. 주원은 아니꼽다는 듯 이서의 눈을 올려다보았다가, 이 순간에 이런 표정을 짓는 자신이 혐오스럽게 느껴져 곧 표정을 거두었다. 이서는 주원이 별 대꾸가 없자 핸드폰을 켜 정신없이 손가락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 톡을 보내는 것이겠지. 나 너무 무섭다고, 여기 너무 싫다고, 나 좀 꺼내달라고.  


 


이서의 리드미컬한 손가락을 쳐다보며, 주원은 이서에게 되묻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이게 무서우면 넌 어떻게 죽게?' 무얼 얼마나 고상하게 죽을 것이기에 친구의 죽음을 무섭다고 하나. 주원은 이서의 가방을 뒤져 이서가 애착인형처럼 가지고 다니는 약통을 꺼내 교실바닥에 쏟고 싶은 충동도 함께 억눌러야 했다. 이서가 백사장에서 모래를 움켜쥐는 것처럼 늘 한 움큼씩 집어 들던 노란 약, 주원은 그것이 항우울제라던지 수면제라던지, 그딴 정신병과는 아주 거리가 먼 영양제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어느샌가부터 건강에 관심이 생긴 할멈이 동네 할멈들이 하는 말에 혹해 잔뜩 쟁여놓고 먹던 약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할멈도 그 약을 모래더미처럼 입에 털어 넣었다. 할멈은 더 살고 싶어서, 건강해지고 싶어서 그 약을 털어 넣었다. 이서는 죽고 싶어서 그 약을 털어먹는다고 했다. 주원은 이서가 죽고 싶었던 게 맞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너도, 우리 할멈처럼, 그저 살고 싶은 게 아니니.


 


그 질문은 순간 방향을 180도 돌려 주원에게 돌아왔다. 주원은 움찔거리며, 죽고 싶어 한 자신이 죽고 싶은 게 맞는지 몇 번이나 곱씹었다. 현우에게 쉬는 시간이 올 때마다 빚 독촉을 하는 사람처럼 달려가 어떤 정보든지 캐내려고 한 자신이 주원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주원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파란 버튼이 뭐냐고 묻자, 현우는 이죽거리며 말했었다.


 


"뭔데, 너도 죽고 싶냐?"


 


"..."


 


"야, 우리 반 죽고 싶어 하는 애들 천지다, 배이서도 그렇고. 박주원, 또 누구? 김세미? 야, 쟤는 목숨 여분으로 다섯 개 남아있다고 해도 무서워서 못 죽을걸. 엄마- 나 무서워. 엉엉"


 


두 손가락을 꼿꼿이 펴 그걸로 얼굴을 덮으며 우는 시늉을 하던 현우. 여드름이 벅벅 나 벌게진 얼굴의 현우는 주원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연이어 말했었다.


 


"야, 나는 모른다. 알려는 주는데, 그다음은 나도 몰라."


현우는 짐짓 목소리를 낮게 깔며, 주원의 어깨에 본인의 얼굴을 가져다 대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대. 그냥 실종, 교통사고, 약 먹고 죽은 사람, 떨어져 죽은 사람. 죽은 사유는 다양한데, 누가 버튼을 누른 건지 모른다는 게 문제지."


 


현우는 장난스럽게 주원의 귀를 손가락으로 간지럽혔고, 주원은 비명을 지르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었다. 현우는 버튼을 누른 걸까. 주원은 또다시 파란 호두알을 떠올렸다. 그 호두알 밑에 들이 받힌 현우를 생각했다. 주원은 눈을 질끈 감고 생각을 떨쳐내듯 머리를 가로저었다.  


 


"얘들아, 가자."


 


교실 앞문을 열고 들려온 소리에 아이들이 일제히 명령어라도 입력된 로봇처럼 숙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원도 자리에 일어나, 주름져있던 치마를 괜스레 손으로 두어 번 툭툭 쳐 단정하게 만들었다. 이서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세미와 팔짱을 꼭 낀 채로 끌려 나오는 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문으로 향했다. 주원은 자신의 눈앞으로 지나가는 이서를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주원이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이서의 어깨는 굽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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