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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Oct 20. 2023

5-1. 사흗날 아침(2)

현우의 장례식장은 고장난 티비화면을 보는 것처럼 색조를 잃은채 놓여져있었다. 무거운 침묵을 실은 버스가 도착하자, 아이들은 일제히 두 손을 앞에 그러모으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차례대로 내렸다. 주원과 이서, 세미, 지영은 가장 마지막에 내려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세미는 이서를 거의 부축하다시피 이서의 겨드랑이를 단단히 팔로 껴안은채로 서있었고, 주원은 혼자 팔짱을 낀 채 조금 떨어져 서있었다. 지영은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주원과 세미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뒤, 아이들의 줄 꼬리를 따라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는 끊임없는 절규섞인 울음이 들려왔다. '현우야.... 현우야...'하는 소리가 숨을 헐떡이는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에 섞여 한글이 아닌 것처럼 들려왔다. 현우를 위해 마련된 작디 작은 네모칸 중앙에는, 혼자 맑은 색조를 띤채 방긋 웃고있는 현우가 보였다. 웃고 있는 현우 근처로 하얀 눈밭같은 국화가 즐비하고, 그 옆으로는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얀 손수건을 눈과 코에 대고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현우와 같은 반 친구들이 우르르 도착하는 걸 보자, 현우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은 더욱 더 크게 울부짖었다. '아이고-, 우리 현우...'  


반 아이들은 선생의 지시에 따라 모두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두고, 차례차례 현우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절을 해야할지도 몰라 우왕좌왕했고, 그럴 때마다 선생이 아이들 옆에서 조그만 소리로 '두 번', 하고 속삭여주곤 했다. '쌤, 저는 기독교인데요...', '그럼 그냥 묵념만 하렴.' 하는 날 것 같은 소리가 그 방 안에 왕왕 울렸다. 현우와 친했던 남자아이들은 내내 훌쩍거리며 연신 교복 소매로 쏟아지는 콧물을 닦아내고 있었고, 그 아이들이 훌쩍거리는 소리에 동요된 몇몇 친구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은 누군가 강제로 위에서 누르고 있는 것처럼 허겁지겁 절을 했다. 상주는 황망한 표정으로 차례차례 올라오는 개미떼같은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주원과 지영 차례였다. 이서는 이제 아예 세미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는, 못 볼 꼴을 본 사람처럼 단 한순간도 현우의 사진을 바라보지 않았다. 주원은 그런 이서의 눈 앞에 현우의 사진을 가져다놓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 선생의 부름에 조용히 신발을 벗고 방안에 들어갔다. 지영도 함께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며, 이서와 세미도 들어오라는 듯 팔을 조심히 잡아끌었다.  


 


주원은 자신도 모르게 압도되는 듯한 기분에 움찔, 뒤로 물러섰다. 아직도 울부짖고 있는 현우의 어머니, 그 사람의 어깨를 연신 두들기며 함께 울고 있는 현우의 아버지. 지옥에서 몇년이나 고립되어 있다 돌아온 것처럼 지쳐있는 현우의 가족들. 주원은 잠시 할멈이 갔던 때는 어땠는지 떠올려보았다. 몇년만에 얼굴을 비친 작은 아버지는 분주하게 손님들을 맞았지만, 단 한순간도 눈물을 보인적은 없었다. 지금 현우처럼 작디 작은 방에 놓인 할멈의 사진은 그 누구보다도 평온해보였고, 주원은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모든 사람들이 다 차분했다. 그들은 마치 정해진 일과를 처리하듯이 차분하게 들어와 차분하게 인사를 하고, 차분하게 밥을 먹고 차분하게 사라졌다. 심지어는 식당에서 이따금씩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식장에 딸려있는 작은방에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누워있는 주원의 귀에는 그 소리가 유난히 거슬렸다. 주원은 할멈의 장례식에서는 단 한번도 울지 않았다. 할멈의 죽음은 모두에게 당연하게 느껴져서, 우는 자신이 꼭 이방인처럼 느껴질 것 같아서였다.  


 


주원이 잠시 현우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지영은 조용히 국화꽃을 들어 현우의 머리맡에 두었다. 흰 꽃이 놓인 현우의 얼굴은 한 층 더 밝아보였다. 지영은 시종일관 차분한 미소를 띤 채로, 주원과 세미, 이서를 살짝 돌아본 뒤 현우의 사진에 절을 두 번 했다. 그리고 묵념, 지영은 나머지 세 명이 서로 눈치를 보며 눈을 떴다 감았다를 다섯 번 반복할 동안이나 길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정말 현우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영은 고개를 들고서도 한참을 현우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주원은 괜히 발끝에 쥐가 나는 것 같아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보았다.  


 


지영은 상주와도 가볍게 인사를 한 뒤, 홀가분해보이는 표정으로 나머지 세명을 데리고 그 방을 나섰다. 그 모습이 어쩐지 노련해보이기까지 했다.  


 


"지영아." 


선생은 지친 표정으로 지영을 불렀다.  


"네." 


 


"애들 챙겨서 가서 밥 좀 먹고 있어. 선생님은 여기 조금 더 있다가 갈게." 


 


"네." 


 


"먹기 싫은 애들 있으면 먼저 버스 타있게 하고." 


선생은 그렇게 말하면서 지영의 어깨를 한참이나 다독거렸다. 꼭 손끝으로 모스부호라도 전달하는 듯, 선생은 하염없이 지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영은 '알겠습니다.' 하고 한참이나 고개를 끄덕거린 뒤, 조용히 반 아이들을 식당으로 모이게 했다.  


 


"주원아." 


주원을 불러세운 것은 세미였다. 세미는 옆에 거의 쓰러질듯이 간신히 서있는 이서는 보이지도 않는 듯, 주원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응." 


 


"밥 먹을거야?" 


세미는 연이어 '우리는 안 먹어.'하고는, 주원에게도 '아니, 안먹어' 라고 말해달라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주원은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세미의 눈에 반짝- 기쁜 빛이 서렸다. 


 


"우리 버스로 가자." 


주원은 세미의 뒤를 따라나섰다. 이서는 배터리가 다 된 풍선인형처럼 흐물거리며 세미에게 매달려갔다.  


 


 


***

 


 


버스에 들어오자마자 이서는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드러누웠다. 이마 위에 손등을 얹은 채로, 훌쩍거리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끙-' 소리를 주기적으로 내고 있었다. 주원과 세미는 맨 앞에 나란히 앉아 세미 가방에 들어있었던 소시지를 나눠 먹고 있었다.  


 


"주원아, 나, 지영이가 너무 무서워." 


세미가 소시지를 우물거리며, 눈썹을 한껏 아래로 늘어뜨리며 말했다. 혹시나 지영이 올까 창문을 주시한 채였다. 


 


"무슨 소리야." 


주원도 소시지를 우물거리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이제는 무서울 게 없어 반 친구마저 무섭니, 라고 대꾸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주원은 현우의 장례식장에서 세미가 기절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늘 겁이 많은 세미가 오히려 이서를 챙기다니, 하늘이 두쪽날 일이라고 주원은 생각했다.  


 


"지영이 말야. 계속 웃고 있었잖아." 


 


주원은 지영의 표정을 잠시 떠올렸다. 늘 짓던 지영의 그 차분한 미소.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 가로로 쭉 찢어지는 그 기분나쁜 미소. 하지만 주원은 세미의 편을 들고 싶지는 않았다. 


 


"웃다니, 차분한 거였겠지."  


 


"그러니까, 차분한 게 말이 되냐구." 


 


"평정심을 잃고 싶지 않았나보지, 누구처럼." 


주원은 그러면서 맨 뒤에 누워있는 이서를 흘끗 쳐다봤다. 모든 반 아이들이 이서처럼 굴었다면 장례식장은 난장판이 됐을 거였다. 선생이 지영에게 아이들 인솔을 맡긴 것도 그 이유일 것이리라. 주원은 아직도 끙-거리고 있는 이서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튼, 난 지영이가 좀...그래. 좀 쎄하달까? 걘 늘 그러잖아. 전부 다 알고 있는 척, 달관한 척. 연기하고 있는 것 같아." 


 


"좀 그렇긴 하지." 


 


"나비펜션 때도 그렇고, 꼭 혼자 다른 세상에 사는 애같아. 고상한 척 하는 거 같기도 하고. 무튼, 기분 나빠." 


 


주원은 세미의 말을 한귀로 흘리면서, 머릿속으로는 지영의 표정을 떠올렸다. 나비펜션에 같이 가자고 주원이 제안했을 때도, 그 다음날 아침 주원이 꿈에서 할아범을 봤다고 말했을 때도, 이서가 주원에게 시비를 걸었을 때도 지영은 한 번도 크게 동요한 적이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처럼 평온한 미소를 띠고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친구인 것은 맞다. 하지만 주원은 세미 말에 동조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야, 배이서보단 낫지. 적어도 김지영은 앞과 뒤가 다르진 않아." 


 


주원의 말을 들은 세미의 눈이 왕방울만해졌다. 


 


"이서가 왜?" 


 


주원은 이서의 약통을 잠시 떠올렸다가,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실언을 한 것 같았다.  


 


"아냐." 


 


"이서가 왜, 뭐가 다른데?" 


세미는 혹여나 이서가 들을까봐 무서웠는지 조금 더 목소리를 낮췄다. 주원은 그런 세미를 벌레 보듯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냥, 죽고 싶다는 애가 무섭다고 저러고 있잖아. 그게 그냥 싫어서." 


 


세미의 눈에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세미는 뭔가 말을 이어가려는 듯 한참 주원의 팔을 붙잡고 있다가, 버스 창문으로 지영과 아이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이자 이내 샐쭉한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주원도 눈을 감고 아이들이 분주하게 올라오는 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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