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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Oct 20. 2023

6. 사흗날 밤

지영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저녁도 먹지 않은채 한참을 잠에 들었다. 이따끔씩 지영이 걱정되었던 엄마 아빠가 번갈아 지영 방을 드나들었지만, 지영은 그 소리를 듣지도 못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진 상태였다. 한동안 죽은 듯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지영이 눈을 뜬건 새벽 3시였다. 지영은 본인이 교복을 입은 채로 침대위에서 잠들었다는 것에 놀라 깊은 한숨을 쉰 뒤, 참을 수 없는 요의를 느끼며 잰걸음으로 화장실로 뛰쳐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방으로 가는 길에 부엌 식탁에 정갈하게 놓여진 일인분의 밥상을 흘긋 쳐다보았다. 지영을 위해 엄마가 따로 차려놓은 것일게다. 지영은 다시 한 번 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몇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저 징그러운 헌신에 지영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지영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뛰어들 듯 침대에 몸을 뉘였다. 너무 오래 잔 탓인지 다시 잠은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현우에 대한 생각만 한참을 맴돌았다. 곧 바스러질 듯 울던 현우의 가족들이 떠올랐다. 꼭 4년 전 지영의 가족들의 모습과 꼭 닮아있는 모습이었다.  


 


지영은 순간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 날 지영은 꿈을 꾸었다. 


 


꿈에서도 지영은 현우의 장례식장에 있었다. 선생은 지영의 어깨를 끊임없이 두들기며 아이들을 챙기라고 나지막히 지시했다. 지영아, 지영아, 지영아- 하는 소리가 지영의 귀에 메아리 치듯 웅웅 울렸다. 지영은 지시라도 받은 로봇처럼 분주히 아이들을 챙기고, 아이들에게 절을 시키고, 아이들을 식당에 앉혀 밥을 먹이느라 엉덩이 한번 붙이지 못하고 종종거리며 장례식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뛰어다니는 지영의 뒤통수에 대고 끊임없이 지영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영아, 지영아-. 


 


"지영아- 이리와봐라." 


 


지영이 뒤를 돌자, 검은 한복을 입은 엄마가 지영에게 이리 오라는 듯 손짓을 하고 있었다. 지영은 엄마가 왜 이곳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방금 막 들어온 손님들을 또 다시 정신없이 맞이했다. 끊임없이 꾸벅거리면서, 입에서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말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쏟아져나왔다.  


 


지영은 땀을 목끝까지 흘리며, 방금 온 손님들을 따라 방 안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그 방 정중앙에는 현우가 아닌, 지영과 꼭 닮은 여자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현우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마치 자신이 여기 놓일 것을 몰랐다는 듯, 그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 막 들어온 손님들이 그 사진에 대고 절을 하자, 이번에는 지영의 엄마와 아빠가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현우의 장례식장에서 들은 것과 똑같은 음정과 똑같은 템포로 그들은 꺼이꺼이 울었다. 지영은 뒤로 물러서서 한동안 입술만 잘근거리며 씹어댔다. 방금 절을 한 사람들은 지영의 앞에 서서, '너가 지은이 동생이구나.'하는 소리를 하며 지영의 어깨를 한 두번 토닥거렸다. 지영은 전기라도 닿은 듯 몸을 떨며 그들에게서 한두발짝 떨어졌다. 그들은 멋쩍은 듯 지영의 어깨를 한번 더 쓰다듬은 뒤, 귀신이라도 붙은 것마냥 황급하게 신발을 신고 떠나버렸다.  


 


 


지영아- 지영아- 또 지영을 찾는 소리가 여기저기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당장이라도 귀를 틀어막고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지영은 태엽이 끝까지 감긴 인형처럼 장례식장을 하염없이 돌고 또 돌았다. 음식을 나르고, 손님을 맞이하고, '너가 지은이 동생이구나-'를 열댓번은 더 듣고, 또 음식을 나르고, 손님을 배웅하고, 사람들의 동정하는 눈빛을 몇번이나 외면하면서 지영은 꿈속에서도 우는 소리 한번 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일을 했다.  


 


 


지영은 땀에 흥건하게 젖어 눈을 떴다. 얼마나 땀을 흘린건지 이불과 시트까지 다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지영은 이마에 식어있는 땀을 손으로 닦아내며, 벽에 걸린 시계를 흘긋 쳐다보았다. 아침 7시였다. 지영은 더 잘 수 없다는 사실에 짜증이 난 듯 얼굴을 베개에 다시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언니나 나올 것이지-" 


 


아침을 먹고 있던 지영의 엄마와 아빠는 지영이 방 밖으로 나오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영을 빤히 보고 있었다. 지영은 '다시 잤어요.' 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지영의 뒤통수에 '배는 안고파?', '아침 안 먹니?'하는 걱정어린 잔소리가 쏟아졌다. 지영은 '늦었어요!'하고 소리를 지르며 화장실 문을 쾅 소리나게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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