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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Mar 24. 2022

"살은 언제 빼?"

room 노랑.

그는 늘 나를 다그쳤다. '저기 노란색 불이 보이지 않니?' 나를 걱정하는 듯 말했다.

정작 노랗게 변해가는 건 내 낯빛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에 흔한, 그러면서도 흔하지 않은 INFJ 여성이다. 최근 들어 MBTI 대유행의 바람이 불었는데, 유행이 되기 전에 이미 심화검사까지 마친 나는 내가 내향성(I)이 100%이며 꽤나 감정형(F)의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을 검사해도 매번 결과는 같았다. 전 세계에 약 1% 미만이라는 INFJ 유형. 생각 많고, 소심하고, 만나는 사람에 따라 늘 가면을 다르게 쓴다는 독특한 유형.


INFJ의 특징 중 하나는 '도어 슬램'이다.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이 자신만의 기준선을 넘어서는 행동(대부분은 무례)을 하면 그 앞에서 문을 꽝 닫아버리듯 인간관계를 '손절'해버리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손절의 과정은 너무나 조용히, 예고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상대방은 심지어 자기가 손절당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은 점점 자신이 INFJ에게 투명인간 내지는 NPC 취급을 당하는 걸 알게 되고, 그제야 '손절'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당연히 '도어 슬램'을 수도 없이 했다. 특히 그 특징은 연애에서 두드졌다. 20대 초반부터 운이 좋게도 꾸준히 진행되어온 연애는, 늘 반년을 채 지속되지 못하고 번번이 끊어졌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반해 열정적인 사랑을 하는 것 같다가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늘 상대방의 단점이 드러났다. 특히,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인 나를 답답해했는데, 그러다 보니 나를 만만하게 여기거나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상대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꼭 100일을 기점으로 본인의 본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특히, 장 최근에  했던 연애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가스 라이팅'의 표본, 대환장파티였다.


그는 가스라이팅의 귀재였다. 불이 꺼진 전등을 보고도 불이 켜져있는 것이 보이지 않냐며 부인을 가스라이팅한 영화 '가스등'의 남편처럼, 그는 늘 나를 다그쳤다. '저기 노란색 불이 보이지 않니?' 나를 걱정하는 듯 말했다.

이번에는 그와 있었던 일 중 하나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나 이번 주에 두 번이나 회식 잡혔어. 하루는 팀 회식이고, 하루는 선배님이 잡아주신 회식."


".... 살은 언제 빼?"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회사 휴게실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마구 '개 XX!!!'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질 못했다. 대체 저게 무슨 소리지, 무슨 의도인 걸까. 내가 모르는 숨은 의도가 있을 거야. 아니면 화났나, 내가 회식 있다는 걸 미리 말을 안 해서 화난 걸까. 몇 번이나 고쳐 생각해도 그 사람의 의미는 정말 그것이었다. '살 좀 빼'라는 의미.


  당시의 나는 훌륭하게 늘씬한 몸매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건강에 위급할 정도로 살이 쪄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바디 검사를 하면 BMI, 체지방률 모든 것이 정상범위였고, 비록 운동을 싫어해서 몸을 움직이지 않긴 했지만 그렇다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찰 정도의 저질체력은 아니었다. 근데, 그런 내가 '살은 언제 빼냐'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부모님도 하지 않고, 나를 매일매일 보는 직장동료, 선배님들에게서조차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말을 만난 지 고작 3개월 조금 넘는 '남자친구'라는 작자가 한 것이다.


지금 기억을 돌이켜보건대, 당시에는 내가 회사에 있기도 했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영부영 전화를 끊고 말았었다. 상대방도 뭔가 기분이 잔뜩 상한 듯 목소리를 깔아가며 '끊어.'하고 끊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날 저녁, 찝찝한 마음을 가득 안고 가장 친한 직장동료와 간단히 샐러드를 먹게 되었다. 당시에는 메뉴 선정도 나름 그 전화의 영향을 받았었나 보다. 싱함을 잃어 노랗게 뜬 양상추 이파리가 꼭 나와 닮아있었다.



"남자친구가 나보고 살을 빼래. 이게 무슨 의미일까?"



'정말 건강을 중요시해서 그런 얘기를 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너는 절대 찌지 않았고 너무 보기 좋다. 그 사람이 왜 그런 얘기를 해봤는지는 그 사람한테 물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동료는 당시 그런 말들을 내게 건네주었다. 그런 말들을 샐러드 볼에 있는 풀떼기들과 함께 곱씹어 넘기며, 천천히 음미하고 있던 내 눈앞에 노란 별이 반짝이듯 무엇인가가 떠올랐다. 바로 지금까지 그가 나에게 했던 소소한 '말'들이었다.


(내가 펑퍼짐한 편한 옷을 입고 데이트에 나왔을 때) " 나 너 옷 입은 거 멀리서 보고 그냥 돌아갈 뻔했잖아. 그 바지 안 어울려" 

(내가 보내준 셀카 사진들을 보며)"이 사진이 좋아, 이 사진이 말라 보이게 나왔어."

(친밀감이 부족한 것 같다는 그의 고민에,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묻자) "그럼, 살을 조금 빼줄 수 있어?"


이외에도, 전 여친이 몸매가 아주 좋았다고 말하거나 나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오늘의 운동 여부를 체크하는 등 수없이 많았다. 그 말들은 아무리 다르게 해석해봐도, 그냥 '너 살쪘어.' 혹은 '나는 네 몸매보다 더 마른 사람을 원하니까 네가 그것에 맞춰.'였다. 다 나를 조금이라도 '마른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의 의도였던 것이며, '네가 더 살을 빼지 않는 이상 난 너와 더 만날 수 없다'는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그날, 그 샐러드 가게에서 그의 말들을 다시 복기해보기 전까진, 멍청하게도 나는 그 의도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니, 맘 속 깊이는 알고 있었어도 모른 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운동을 좀 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나를 사랑해서, 내가 건강하길 원해서 하는 얘기일 거라 생각했고, 내가 펑퍼짐한 옷을 입어 화를 낸 건 내가 데이트 날 뭔가 다른 잘못을 저질러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나를 합리화했다.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살을 뺐으면 좋겠다'는 말은 하도 조심스럽게 얘기해서, 그 다정한 말투에 속아 정말 나를 위한 것이라고 착각해버리고 말았다. 래, 전등이 노랗네. 노란 불이 들어와있네. 그렇게 나를 스스로 다독이고 있었던 것이다.




정작 노랗게 변해가는 건 내 낯빛이었다. 데이트할 때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도 늘 압박스타킹에 딱 붙는 원피스를 입었고,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무리하게 운동을 하다가 한동안 근육통으로 앓아 눕기까지 했었다. 같이 밥을 먹을 때면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시키지 못했고, 데이트 시간은 늘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하기만 했다. 같이 걸어갈 때마다 그가 내 몸과 옷 상태를 눈으로 스캔하는 것이 불편하고 불쾌했음에도, 나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현타가 왔다, 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난 그날 정말로 현타가 왔다. 눈 앞에 전등이 픽 하고 꺼져버렸다. 아니, 이미 꺼져있던 걸 그제서야 알아챘다.


나는 눈을 끔뻑거리고 한참을 말없이 생각하다, 동료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 헤어져야 할 것 같아."




그날 나는 그와 이별했다. 그를 '도어 슬램'했다. 내가 INFJ로 살아오면서 인생 가장 잘한 도어 슬램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그와 이별하고 나서 작은 자취방에서 혼자 3시간 동안 펑펑 눈물을 쏟아냈지만, 마냥 슬프다기보단 왜인지 모르게 후련한 기분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던 날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불편한 원피스와 스타킹을 입지 않아도 되었고,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는 사람도 없었다. 회식 자리에도 맘 편히 참석하여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으며, 체중계 위에 뜬 숫자 하나하나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별하여 슬픈 마음은 잠깐이고, 더없는 편안함을 다시 누리게 된 것이다.


그와 헤어진 후 약 2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만나게 된 지금의 남자친구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살'이라는 단어조차 언급한 적이 없다. 이 세상에 많은 여자친구들이 그러하듯, "오빠, 나 살찐 것 같지, 빼야겠지?"라는 말을 시전하면, "아니? 하나도 안 쪘어! 그리고 더 쪄야 더 귀엽지~"라는 오글거리는 대답을 기계처럼 잘도 한다. 비록 거울 속에 나는 뱃살이 투둠실하고 두 허벅지가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왠지 남자친구의 그런 말을 들으면 푸욱 안심이 되어 먹고 싶었던 메뉴를 마음껏 고르곤 한다. 데이트에 나갈 때도 옷이나 화장으로 한 번도 머리 싸매고 고민한 적이 없고, "이렇게 입고 나가도 예뻐해 주겠지?" 하는 흐뭇한 확신이 만면에 가득 찬다. 그리고 실제로, 어떤 옷을 입던, 쌩얼로 나가던 남자친구는 늘 나를 예뻐해 준다.


그러니, 그날의 도어 슬램이 어쩌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다른 길로 향하는 문을 벌컥 열어준 것이 아닐까.

INFJ의 도어 슬램이 나쁘지만은 않은 이유다.


그리고, 만약 이 글을 보고 찔리는(?) 아무개가 있다면, 반성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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