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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Sep 06. 2022

'그만 우울했으면 좋겠다'

room 파랑.

 나의 우울은, 그저 힘없이 파랗고 아름다운 심해를 유영하는 인어가 아니었다.

오히려 끈적거리는 파란색 페인트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주변이 온통 파란 점액질로 가득한 늪과 같은 공간에서 살기 위해 어떻게든 몸부림치는 벌레에 가까웠다.


나는 INFJ이다. INFJ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우울'과 친숙하다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에 걸맞게 나의 삶 역시 전반적으로 채도가 낮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감정 기복은 늘 심했고, 사소한 일에도 지하 저 끝까지 생각을 몰고 가라앉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익숙했고, 솔직히 말하면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우울한 일이 있어도 금세 잊어먹고 다시 발랄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정말 약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을 정도의 '병적인 수준'의 우울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던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

평소에 흔히 가지고 있던 '우울감'과는 천지차이였다.





누군가에게는 꽃처럼 화사한 24살의 겨울, 명문대 졸업 직후 번듯한 공기업에 취직,  인생은 누군가가 보기엔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고, 실제로 입사 후 6개월 동안은 정말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난 회사를 입사하자마자 '동기'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여럿 생겼다. 대학 시절에도 내성적인 성격 탓에 아웃사이더를 자처했던 나지만, 첫 사회생활의 긴장감과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기들은 여러모로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되기에 충분했다. 꼭 가족처럼 서로를 도와주고, 함께 회사 욕을 하고 함께 웃고 함께 여가시간을 보냈다. 늘 주변인으로 맴돌던 내 인생에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속에서 든든한 전우애와 안정감까지 느꼈었다.

 


그러나, 그 견고해 보일 것만 같던 동기들의 끈끈한 우정은, 구성원 한 명의 작은 몸부림으로 쉽게 금이 갔다. 동기 중 한 명이 회사 내에 소문이 퍼진다면 큰 파장으로 번질 수 있을만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자세한 언급은 넘어가도록 하겠다.) 그 잘못은 그저 한 개인에게는 일탈에 불과했지만, 구성원 중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로 작용했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눈감고 넘어가 줄 만한 실수에 그쳤으며, 누군가에게는 짜증 나는 해프닝에 그쳤다. 나는 그 한 명의 잘못이 그런 식의 여러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데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잘못은 잘못인데, 아무도 '그 사람이 잘못이다.'라고 명확히 정의 내리지 않는 것도 지겨웠다. 이 와중에 또 어떤 사람들은 우리들의 사이에 금을 긋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며 자신과 반대편에 속한 사람들을 비난했다. 결국 내가 속한 그 집단 서서히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눠지기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즈음에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 사람의 잘못이 당신에게 영향이 있었나요?"



아니. 처음에는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의 잘못에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 잘못으로 인해 상처받은 다른 동기들에게는 위로와 공감을 건네주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나는 그 사람에게 등을 돌려야 했다. 아무렇지 않게 그 사람을 웃으며 대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그 사람을 피했다. 그런데 그 등에 칼이 들어왔다. 당시 연애 중이었던 전 남자 친구를 비롯한 누군가는 나를 이렇게 비난했다. '네가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사과도 안 받아줬다며?'



그 칼은 결국 상처를 입혔다. 그의 잘못은 회사 차원에서 빠르게 정리되었지만, 박힌 칼날을 쉽게 빼낼 수가 없었다.






시작은 소소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잠에 들려고 하면, 갑자기 심장이 조여 오고 꼭 절벽으로 안전 줄 없이 추락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번쩍, 벼락같이 정신이 든 이후에는 또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단 한숨도 잠들지 못하는 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러고 나면 잠 못 드는 새벽언제 찾아올지 겁이 곤 했. 처음에는 그저 조금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리라 생각하 억지로 참아 넘겨보기도 했었지만, 우울증이 그리 쉽게 넘길 수 있는 감정이라면 정신과 병원을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았을 것이란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외로움이 아픔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그 당시에 처음 알게 되었다. 매일 밤마다 말 그대로 사무치는 외로움에 지나치게 괴로워했고, 잠을 한숨도 못 자고 출근을 하는 날도 숱하게 많아졌다. 사무실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솟아서, 화장실로 뛰쳐나가 수습하는 날도 여러 날이었다. 신입사원일 시절이라 중요한 일을 맡은 건 아니었지만, 자그마한 업무도 제대로 마무리를 하지 못했고, 그 어떤 일에도 늘 자신이 없었다. 연애에서도 모든 것이 불안하고 힘겨웠다. 매일 감정이 올라왔다 내려왔다 널뛰기를 했고, 우울감이 찾아올 때마다 남자 친구에게 전화해서 우는 소리를 했다. 그러다가 그가 받아주지 않는 기색이면 죽을 듯이 싸웠고, 핸드폰을 집어던지는 날도 있었다. 어느 날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허벅지를 내 스스로 마구 때린 날도 있었다.



결국 남자 친구도 나를 떠났다. 내가 내 자신을 해칠까 봐, 걷잡을 수 없이 밑바닥으로 추락할까 봐 겁이 난다고 했다. 겁이 난다고 하자마자 그 사람은 줄행랑을 쳤다. 나의 아픈 외로움은 더 배가 되었다.


그 당시에 나의 머릿속은 심오하고 예술적인 생각들로 꽉 차있지 않았다. 그저, 한 가지 생각만 계속 머릿속에 되뇌고 있었다.

'그만 우울했으면 좋겠다.'


결국 나는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처방받았고, 그 이후로 아직까지도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며  불면증을 달고 살아가고 있다.





사실 우울증을 겪는 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한건, 주변 사람들의 말 한마디였다.


" 너 정신과 병원 다니니?"


내가 약을 먹는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 엄마의 짜증 섞인 그 한마디는, '내 딸이 그럴 리 없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었다. 혹은 더 날 것으로 치환하면, '네가 우울증 걸릴 일이 뭐가 있니. 네가 나약해서 그런 거다.'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응, 맞아, 맞다고. 엄마 딸 정신과 다녀. 하루에 1분도 잠을 못 자. 그렇게 말해도 한없이 부정당할 것 같은 말투. '네가 무슨 우울증이니?'하고 날 선 대답이 돌아올 것 같은 짜증 섞인 한숨. 엄마를 실망시켰다는 사실도 괴로웠지만, 딸의 우울을 조금도 공감해줄 수 없는 사람이 내 엄마인 것에 더 마음이 가라앉는 순간이었다.


그에 더해, 당시 다니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반응도 날 더 외롭게 만들었다. 이러이러한 원인으로 우울하다-라고 하자마자 '그게 왜?'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의문문으로 늘어뜨리는 그의 말투. 내 우울증이 당신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그럴듯한 원인'과 '그럴듯한 상황'을 꾸역꾸역 가져와야만 인정된다는 것이 기가 찼고, 그것이 날 더 힘들게 만들었다. 그 의사라는 사람은, 어쩌면 내가 누군가의 관심을 받기 위해 '우울한 척'한다고 지레짐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변에서 접하는 매체에서는 종종 우울증을 '깊은 바다에 가라앉는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파랗다 못해 검은, 깊은 바닷속으로 하염없이 몸이 가라앉는 기분. 누군가 누워있는 나를 위에서 꾸욱- 눌러 한없이 바닥 밑으로 꺼지게 만드는 듯한 기분. 온몸이 무겁고, 기력이라고는 한 개도 없는 기분이라고들 했다.



글쎄- 내가 느낀 느낌은 그 12자로 쉽게 뱉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나의 우울은, 그저 힘없이 파랗고 아름다운 심해를 유영하는 인어가 아니었다. 오히려 끈적거리는 파란색 페인트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주변이 온통 파란 점액질로 가득한 늪과 같은 공간에서 살기 위해 어떻게든 몸부림치는 벌레에 가까웠다. (나는 내가 우울증을 겪는 그 모든 순간에, 단 한 번도 내 자신이 인어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또, 무기력하게 가만히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살아나가야만 했다. 어떻게든 일어나서 근을 해서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있어야 했고, 업무시간이 끝나면 녹초처럼 일어나서 꾸역꾸역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와야만 했다. 그저, 함부로,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그 어떤 '인어'같은 존재만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없는 이유다.



혹시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주변 사람에게서 '나 우울증인 것 같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랫말과 같은 반응은 절대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엥? 네가 우울증이라고?'


무심코라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솔직히 말하면 '제발 좀 닥쳐'라고 하고 싶다. 환자인 본인이 우울증이라고 하면 우울증이 맞는 것이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은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무기로 사용하기도 할 테지만, 미안하지만 지금 당신 곁에 있는 그 사람이 말하는 '우울'은 정말 우울증이 맞다. 그 사람이 지금 당장 밝아 보인다고 해서, 앞으로의 미래를 계획하고 모든 일을 성실히 해내고 있다고 해서, 당장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그 누구보다 화목해 보이는 장면을 연출한다고 해서, 당신이 그 사람에게 '우울증이 아닐 것 같다'라고 함부로 판단 내릴 권리는 없다.



우울증 환자는 인어가 아니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니, 모든 우울증을 겪는 이들이, 적어도 오늘만은 '그만 우울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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