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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Oct 06. 2022

나의 블루를 채운 솜구름 같은 이들에게

room 하늘.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내 스스로 구름을 그려서 벽에다 걸었다.

어느 순간 내 파란 방은 하늘이 되어 있었다.



        우울증에 걸렸다. 새벽이 오면, 작은 방 한 칸에 오도카니 있는 나에게 외로움이 가시처럼 꽂혀들어왔다. 눈을 감으면 불안감에 잠들지 못했고, 눈을 뜨면 펼쳐진 현실에 암담하기만 했다. 새로운 일상이 시작될 아침이 오는 게 막연히 싫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오랜 밤을 견뎌낼 재간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랬고, 사소한 자극에도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어쩌면 나 자신이 깊은 바다에 사는 개복치 같다고, 아니 오히려 개복치보다 더 불쌍한 인생이라고 여겼었다. 적어도 개복치가 사는 바다는 잔잔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데 그에 비해 내가 사는 이 세상은 너무나 번잡스러웠다. 세상은 너무 빽빽했고, 숨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갔으며, 나는 그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늘 끈적거리는 땀을 쏟아가며 달려 나가야 했다.





         늘 반복이었다. 일어나서 버티다가, 누우면 다시 침식되는 삶. 끝없이 가라앉고, 또 끝없이 끌어올리고. 해변가에 쌓여있는 플라스틱 쓰레기처럼 하염없이 휩쓸리다가, 또 하염없이 꾸역꾸역 육지로 울컥 올라오는 삶. 지겨웠다. 정말로 지겨웠다.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도 그뿐이었다. 약은 뇌와 신경의 화학적 작용에는 일말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내 전반적인 무드를 북돋아주는 데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졸음이 쏟아졌다. 회사에서는 일에 집중을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밤에는 또 눈이 말똥말똥해지는 최악의 부작용이 나를 덮쳤다.



    나는 무서워서 회사에서도 울었다. 그러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섣불리 말을 하지 못했다. 사소한 원인으로 시작된 우울증이었기에 모두가 나를 나약한 사람으로 볼까 봐 두려웠다. '대체 그게 왜?'라는 게 엄마와 정신과 의사의 대체적인 반응이었기에, 나는 더욱더 입을 다물었다. 꼭 함구증에 걸렸던 초등학교 시절 때처럼, 볼드모트란 단어를 꺼내면 안 되는 호그와트 학생들처럼, 우울하다는 말을 입에 차마 담지 못했다.



           그렇게 마음속에 파란 방을 가두고 살았다. 나아지겠지, 방치하다 보니 그 방에는 더 짙은 푸른빛이 감돌았다. 벽에는 푸른색 곰팡이가 피고, 퀴퀴한 악취마저 나기 시작했다. 가끔 -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한 10분 정도는- 그냥 오늘 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죽기 위해 취해야 하는 행동과 그때 느낄 감정이 무서워서 죽지 못할 뿐, 죽음 그 자체는 오히려 편안한 그 어떤 것이 아닐까 골똘히 고민했다. 근데 그러면서도 나는 퍽 살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20대 한복판에 죽어버리기엔 내 삶이 아직 아까웠었나 보다.




어느 날,


"정신과 병원을 다니고 있어."



         동갑인 회사 동료에게 그런 말을 했다. 나에게 우울증을 유발한 사건도 함께 겪은 친구였고, 늘 나를 살뜰히 챙겨주면서도 사려 깊고 입이 무거운 친구였다. 그래서일까, 그냥 어느 날 문득 털어놓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저 털어놓으면 내 속이 조금이라도 더 시원해지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 상황을 다 듣고, 한참을 고심했다. 신중하게 말을 고르려는 모습이 나에게 와닿을 정도였다.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그녀는 지인이 심리상담사를 하고 있다며, 조심스레 연락처를 건넸다. 사실 누군가에게 나의 내면을 다 털어놓는 게 어렵기도 했고,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심리상담을 받는 건 꺼려했던 나였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걱정했고, 나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내가 내 돈을 내고 병을 치료하러 왔는데도 심드렁하던 정신과 의사의 얼굴이 그녀의 얼굴과 대조되어 떠올랐다. 그녀의 그 예쁜 마음이 내 마음에 넘칠 정도로 와닿았다. 그날 처음으로, 내가 그렇게 외로운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파랗기만 한 방에, 구름 한 점이 불쑥 피어올랐다.





       그날 이후로는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조금 가벼워졌다. 더 이상 볼드모트처럼 무서운 존재로 느껴지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그 존재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또 다른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정신병 있어. 그게 왜?"



     그는 놀란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볍게 넘기지도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남들과 다른 독특한 생각을 '병'이라고 생각했다며, 빠른 말투로 줄줄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사람들은 다 어느 정도 특이한 생각을 해- 누구나 다 정신병은 있어-라고 시크하게 말하는 그가 웃겼다. 그게 뭐야,라고 하면서 오래간만에 조금 웃었던 것 같다.



    그는 몇 번이고 거듭 말했다.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 나도 이상해!'

색다른 위로가 되었다.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던 이 세상에 나처럼 돌연변이가 또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친하구나- 묘하게 우스우면서도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또, 개성 있는 모양의 구름이 둥실 내걸렸다.




  또 어떤 동료는 그저 내 말을 묵묵히 들었다. 어떻게 위로를 건네야 할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었지만 함께 여행을 간 타지에서 내내 나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여행지였던 오사카에서의 밤이 조금 더 찬란해졌다.

찬란한 구름이 또 한 점, 해사하게 방을 밝혔다. 그녀의 웃음처럼 동그란 구름이었다.




 우울을 말하면 말할수록 누군가는 다가와서 구름이 되어주었다. 물론 때로는 번개를 내려치고, 폭우를 뿌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다시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러 솜구름을 찾아갔다. 그 사람들에게 또 한동안 조잘거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이 한층 더 좋아져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내 스스로 구름을 그려서 벽에다 걸었다. 내가 내 우울을 말할수록, 글로 쓸수록 그 말과 글들이 또 새로운 구름이 되었다. 사람들이 그 글을 보고 위로를 받고, 공감을 건네주었다.


어느 순간 내 파란 방은 하늘이 되어 있었다.

나를 위해 기꺼이 솜구름이 되어준 당신들 덕분에. 그리고 그 시간을 이겨낸 나 자신 덕분에.



그리고 오늘, 그 구름을 또 한 점 내건다. 그 구름이 누군가의 블루에 걸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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