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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빛 Feb 01. 2019

커피를 끊었다

나는 이제 온전한 '나'가 아니다

매일 아침 커피를 끓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커피를 마시면 아침잠이 가시며 머리가 맑아지고, 몸에게 지금부터 일을 시작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다. 커피잔에 코를 대고 그윽한 커피향을 맡고 있노라면 마음이 그리 평화로울 수가 없다.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커피향을 코 끝으로 머금고 씁쓸한 커피를 입 안으로 흘려 보내며 서서히 일에 빠져든다. 회사 다닐 때부터 졸음 방지용으로 마시기 시작한 커피가 이제는 마음에 위안을 주고 집중을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가 됐다. 부작용이 있다면 커피를 못 마시는 날에는 반드시 두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커피는 이별을 고할 수 없게 그렇게 내 몸에 들러붙었다. 노곤노곤 졸음이 찾아오는 오후가 되면 나는 다시 커피물을 올린다.


"축하드립니다. 임신 5주네요."

결혼한지 정확히 4년 만이었다. 의사 선생님께 가장 먼저 축하인사를 받았다. 화면에 떠오른 초음파 영상에 동그란 점이 보이는데, 이 점이 바로 아기집이라고 했다. 임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블로그에 올리던 초음파 사진이 비로소 마음에 와닿았다. 이날도 아마 아침에 커피를 한 잔 하고 병원으로 발을 내딛었을 것이다. 임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늘 임신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며 살던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하루 한 잔씩 커피를 빼놓지 않았다. 커피는 십여년 전 회사 동기 C와 매일같이 마시던, 오래된 습관 같은 것이었다. 아침마다 사무실에 출근해서는 부리나케 근처 커피집으로 달려가 따끈한 커피를 손에 쥐고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늘 가깝게 지내던 C가 결혼했고, 뱃속에 아이가 생겼다. 그래도 우리는 매일 빠짐없이 커피를 사들고 왔다. 친구이자 동기였던 C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알려주셨는데 임신해도 하루 커피 한 잔 정도는 괜찮대."


임신이 어떤 건지도 잘 알지 못했던 시절. 지금 돌이켜보면 철없는 소리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꺼낸 적이 있다. "만약 내가 임신을 한다면, 다른 것보다도 커피를 마음껏 마시지 못하는 게 제일 괴로울 것 같아." 그런 내게 임신을 해도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이야기는 눈이 번쩍 뜨이는 희소식이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당장 결혼할 생각도 없었으면서 C의 말을 머릿속에 반짝반짝 새기고 다짐했다. 임신하면 나도 매일 한 잔씩 커피를 마실거야.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가는 일인데도 C의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지난 주에 들은 것처럼 C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듯했다. 그래서 임신을 기다리면서도 늘 하루에 한 잔씩은 커피를 마셨다. 매일 아침, 추운 날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더운 날에는 차가운 아메리카노.


좋은 소식이 있으면 알려달라던 친구 L이 문득 생각났다. 웬만해서는 상대방이 묻지 않은 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편이지만, 임신 소식 만큼은 알리지 않으면 친구가 섭섭해할 것 같았다. 가까이 자주 보는 사람들끼리는 일부러 소식을 알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안부를 알게 되지만, 멀리 사는 사람들과는 문자로라도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서로 안부도 모른 채 지내다 나중에 만나게 되더라도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기 쉽다. 임신했다는 소식에 L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걱정섞인 투로 안부를 물었다. "입덧은 아직 안해?" 문득 떠올랐다. L은 임신 기간 내내 입덧으로 고생했다. 당시 그런 L에게 입덧이 어떤 느낌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L은 임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적절하게 표현해 줄 단어를 고르는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말했다. "수박을 먹으면 달고 시원한 맛이 나야 하잖아. 근데 물컹하고 씁쓸한 맛이 나는 거야. 입맛이 바뀌어서 제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되더라고." 입덧은 그저 구역질을 올려내거나 토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L의 이야기는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임신 소식을 알고난 후 너댓 주가 지났다. 나는 전날과 똑같이 커피를 끓여 책상 앞에 앉았다. 한 손으로 커피잔을 들고 다른 손으로 마우스를 잡았다.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오늘의 뉴스를 훑으며 커피잔을 코끝에 갖다댈 차례였다. 커피는 쓰고 진할수록 맛있다던 나였지만 그날따라 코를 건드리는 커피향이 쓰게 느껴졌다.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별 의심없이 뜨거운 커피를 살짝 입에 머금었다. 그 순간 혀 가장자리부터 안쪽 깊은 곳까지 쓴맛이 파고들었다. 가까스로 커피를 삼키긴 했지만 다시 이 쓰디쓴 물을 목 뒤로 넘기기가 싫었다. 그랬다가는 내려갔던 커피가 도로 올라올 것 같았다. 그제서야 알았다. 뱃속에 있는 아기는 커피를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한 가지 더. 임신은 그렇게 내 취향마저 바꿔놓는다는 걸. 빵은 달아서 별로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던 내가 빵 먹고 싶다는 생각을 되새겼다. 그런가하면 그렇게 좋아하던 소위 ‘불맛’ 나는 음식이 싫어 고깃집 근처를 지날 때면 슬며시 코끝을 잡고 잰 걸음을 걸었다. 나의 취향이란 것이 사라지고 누군가 다른 사람의 취향이 내 몸 안에 들어선 것 같았다. 


날을 손으로 세어가며 기다리던 임신 소식이었기에 기쁜 마음이 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온전히 내 것이었던 삶은 이제 나만의 것이 아니다. 새 생명체와 내 삶을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내 몸 소유권을 박탈당하는 기분이랄까. 단순히 좋거나 나쁘거나 그런 기분이 아니었다. 다만 내 행동과 말, 생각,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까지 모두 이전과는 달리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했다. 어렸을 때 여러 가지를 두루 경험해 보며 탐색하던 것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확고해진 취향을 다듬어가는 이때 내 취향이란 것을 흔들어놓는 긴 여행이 시작됐다. 한창 어릴 때야 이런 것 저런 것 시도해 보면서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그 과정을 즐겼지만, 해가 갈수록 새로운 것에 모험할 용기도 기력도 줄어들자 실패할 것 같은 일에는 감히 손도 대지 않았는데.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심지어 만나는 친구의 성향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내 취향과 맞지 않으면 시도하지 않던 참이었는데. 그렇게 굳어진 취향을 바꿔놓는 것이 임신이었다. 아니, 단순히 취향을 넘어서 습관이나 신념까지 바꿔야하기도 하니 내가 나 같지가 않았다. 그러니 임신은 어쩌면 아홉 달 동안 나와 다른 사람인 내 아기를 조금씩 받아들이며 준비하는 기간일 터. 그리 새로움을 받아들이며 내 몸은 한 생명체가 편안하게 성장할 수 있는 작은 집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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