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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Sep 08. 2023

외로우면 대패질하라
①오늘도 내 그림은 습작이 됐다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8가지 성장  프로그램

나는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려는 이상적 예술혼을 가진 미술 교사이다.     


1. 오늘도 내 그림은 습작이 되고 말았다

  오늘도 나는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 복잡한 도시에서 이곳 전원주택으로 이사 온 이후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는 강한 책임 의식이 생겼다. 지금 내 앞에는 드넓은 호수, 그리고 호수 끝에는 야산이 펼쳐져 있다. 나는 완벽에 가깝게 저 대상을 그려야 한다. 그 완벽함에는 사람들이 놓친 보이지 않는 예술혼 같은 것도 그려 넣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도 내 그림은 습작이 되고 말았다. 


  호수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모여들었고, 다들 내 그림에 찬사를 보냈다. 그들은 그림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나는 다수가 좋아하는 달콤한 그림이나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화가가 되려고 미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가정 형편상 직업부터 가져야 했기에 미대 재학 중 교육학 과목을 이수했다. 지금은 고등학교 미술 교사이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현실과 타협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현실을 뛰어넘으려는 나도 의식할 수 없는 어떤 욕망이 있었다. 그 욕망이 나의 그림이 됐다. 나는 교사로서 첫 발령지를 오지 섬의 학교로 자원했다. 육지와는 한 시간 뱃길 섬, 어린 시절을 온통 농촌에서 보낸 나는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학교가 신비하기만 했다. 그곳은 꿈의 동산이고 세상과 동떨어진 곳이다. 내가 그리려 하는 세상과 동떨어진 그림을 여기서는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학교에 부임한 첫 주말,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일이 생생하다. 나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학교 운동장 난간에 이젤을 세워놓고 아무 생각 없이 눈 앞에 펼쳐진 수평선, 파도, 물거품, 등대 등을 화폭에 담았다. 


  그날, 나는 가장 편하게 그야말로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 화풍을 맞출 심사위원도 없었고, 미대 교수의 피드백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미대 동료들의 자칭 전문가적 이러쿵저러쿵하는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림을 다 그리자, 나도 내 그림에 놀랐다. 대상과 그림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또한 내가 추구해온 이상적 예술혼도 표현됐다. 파도 소리, 물거품과 모래사장이 만나 퍼져나가는 공기의 흐름, 지평선의 그리움, 등대의 외로움, 이런 감정이 다 표현됐다. 오랜 이상이 현실이 된 순간, 그때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오지 학교라 내 시간이 많을 거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교장은 나에게 너무 오지라 발령을 포기한 음악 교사 대신에 음악 과목을 가르치라 했다. 업무분장 때는 도덕 과목도 맡았다. 수업시수가 적어 그밖에 행정 업무도 도맡아 했다. 섬에는 미술학원도 없었고, 미술을 전공하려는 학생도 없었다. 비 입시 과목을 가르친다고 나만의 재량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수업은 정해진 교과과정이 있었다. “이 한가한 섬에서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자.” 첫 주말에 그림을 그리면서 다짐한 나와의 약속은 백사장에 부딪혀 사라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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