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8가지 성장 프로그램(연재)
나는 가난한 농가에서 6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바로 위 언니와는 나이 차이가 무려 7살이다. 아버지의 취중 발언에 의하면 나는 오발탄이었고, 죄책감으로 더 애지중지 키우려 했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바로 위 세 명의 언니와 오빠는 시내에 나가 자취를 했고 두 명의 큰언니는 도회지에 나가 돈을 벌어 동생들 교육비와 가사에 보탰다. 부모님은 새벽부터 농기구를 들고 나가셔서 해 질 무렵이면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런 부모가 안쓰러워 초등학생인 내가 밥상을 차려놓고 부모님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한마디로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나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라고 해야 만화책 주인공을 연습장에 그리는 정도였다. 그 시간이 행복했고 시간도 잘 갔다. 그림을 그리는 한 나는 외로움을 몰랐다. 의무교육이 초등학교인 시절에 그림 좀 잘 그린다고 어른의 주목을 받기는 힘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사생대회에서 학년 대상을 받아 전교생 앞에서 교장 선생님이 주는 상장을 받았어도, 부모님은 그게 뭐냐고 할 정도였다. 설마 그림으로 밥 먹고 살려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셨다. 설마 미대 간다고 할까 봐, 이젠 그림은 그만 그리라고 말하고 싶으셨다고 한다.
수업이 끝난 후 집에 가면 아무도 없다. 나는 부모님이 일하시는 논밭으로 놀러 갔다. 부모님은 나에게 일을 시키지는 않았다. 너무 일찍 몸 쓰는 일을 하면 커서도 몸 쓰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무료함을 달래려고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나의 최초 그림은 흙이 캔버스요 나뭇가지가 붓이었다. 나는 부모님이 일하시는 모습, 잡초, 나무, 구름, 산 등 눈에 보이는 것은 닥치는 땅바닥에 그렸다. 부모님은 내 그림 솜씨를 칭찬하셨다.
혼자 노는 내가 외로워 보이고 부모로서 함께 놀아주지 못해 미안해 칭찬한 것을, 나는 그림을 잘 그려 칭찬받는 줄 알았고 더 열심히 그렸다. 엄마는 논두렁 밭두렁에서 허리를 숙이고 노는 내게 미안했던지 아버지에게 말했다. “쟤, 읍내에 하나 있는 미술학원 보낼까?”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림이나 그려 뭐 하려고. 쓸데없는 돈 낭비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읍내에 있는 미술학원에 나를 보내줬다. 30분마다 한 대씩 오는 버스를 타고 읍내 학원에 갔다 오면 날이 어둑해진다. 엄마는 잘 돌보지 못하는 모성의 미안함을 달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오발탄이라 더 애지중지 키운다는 말에 책임지려고 엄마 의견에 따랐다. 그래도 그 당시 농촌 부모로서는 아들도 아닌 딸에게 최선을 다하신 것이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그거 해서 뭐 하려는’ 미술학원에 다니는 1호 여자아이였다. 그때부터 나의 미술 잠재력은 급격히 살아났다. 각종 사생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부모님은 딸이 그림이나 그리는 것을 당신들도 더는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다. 종종 내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쓰셨다. “그림은 취미로 하고 공부를 잘해야지,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어.”
나는 미술을 해서 뭐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 나는 외로운 아이였다. 또래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유치했다. 줄 넘기, 고무줄놀이, 공기, 잡담, 이런 것들이 즐거울까. 아무튼, 그들은 그런 놀이로 희희낙락했으나 나는 거기에 끼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연습장을 펴놓고 무엇을 그리며 외로운 나를 달랬다. 나는 외로워서 그림을 더 열심히 그렸고, 그림은 내 외로움을 달래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