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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Sep 12. 2023

외로우면 대패질하라 ④딸의 반항에서 나를 보다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8가지 성장  프로그램(연재)


4. 딸의 반항에서 나를 보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철밥통 교사는 맞지만, 나는 그 말이 아주 싫었다. 나에게는 속물근성이 없다. 나는 예술혼은 뒤로하고 이상적 교육관부터 구현하려 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참교육을 구현하는 것이다. 전교조에 가입했다. 나는 전교조의 열혈 리더다. 부당한 교육정책을 강요하는 당국에 맞서 시위하는 날이면, 나는 단상에 올라가 발언하고 구호를 선창하는 사람이다. 이상적 예술가가 참교육의 투사가 된 것이다. 


  내가 구현하려는 이상적 교육관은 피 교육생의 인격과 감성 지도까지 하는, 이른바 전인교육이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나의 화두였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동료 교사들도 다 인정해 줬다. 교육감이 참석하는 공개수업에서는 후한 칭찬을 받기도 했다. 인정받는 일은 기쁘다. 그런데 하나의 인정 뒤에는 꼭 하나의 공허가 뒤따라왔다. “그래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P가 말했다. “너의 이상적 예술혼이나 이상적 교육관은 채워지지 않을 관념이라서.”     


  나의 별난 태도를 바꿀 첫 번째 기회는 딸이 줬다. 딸은 나 때문에 바이올린 전공자가 됐다. 그 옛날 사촌 언니의 바이올린 연주에 반해, 유년기부터 딸에게 바이올린 교습을 시켰다. 현악기는 일찍 시작할수록 절대음감을 찾는다. 딸의 레슨 선생님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은 연주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딸이 엄마의 예술적 끼를 타고난 것이라며 레슨 선생의 말을 철썩 믿었다. 믿고 싶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레슨 선생님들은 다 그렇게 말한다.


  딸은 ‘조금 더’ 노력해 주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동력이 생기면 노력할 것을 믿고 나는 딸을 강압했다. 엄마의 일방적 압력에 딸은 순종했고 대학입시를 앞에 둔 고등학생이 되자 정말 열심히 바이올린을 켰다. 그즈음에 딸이 한 말이다. “우리 집은 엄마만 마음을 비우면 행복할 수 있어.” 딸에게 바이올린 켜는 일을 행복한 일이 아니었다. 


  교사의 사명으로 무장한 나, 나의 강압에 못 이겨 바이올린 연주자가 제 길인 양 그 길을 가는 첫째 딸. 놀기만 좋아해서 나의 잔소리를 매일 들어야 하는 둘째 딸의 난동. 이 모든 것이 불만이면서도 나에게 맞춘 남편. 멀리서 보면 무난한 가정이지만, 보이지 않는 가족 갈등은 정말 많았다. 둘째는 몇 번의 가출을 했다. 남편은 가출도 사춘기 통과의례라고 크게 일탈 행위가 없는 한 너그럽게 봐줘야 아이도 출구를 찾는다고 했다. 우회적으로 내 교육 방법을 비난하는 것이다. 나에게 말도 안 되는 교육 방법이다. 나는 딸을 엄하게 교육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려 했다. 그러나 잘 안됐다.


  정말 아이러니했다. 가출한 나의 학생에게는 그렇게 대하지 않았고, 부모에게도 그런 식으로 하지 말라고 했다. 나의 이상적 교사상이 내 자식에게는 안된다. “나는 이상을 핑계로 욕심이나 내는 속물 여자가 아닌가?” 둘째는 내가 원하는 것과 반대의 행동으로 나에게 저항했다. 공부하지 않고, 화장하고 다니고, 교복 치마를 짧게 줄여 입고, 밤늦게 다니고, 어떤 때는 입에서 흡연 냄새도 났다. 첫째는 말로 나를 다그쳤다. “엄마가 마음을 비우면 돼.” 이 말이 나의 정곡을 찔렀지만, 나는 이 말을 수용할 수 없었다. 수용하는 순간 내가 추구해온 삶은 다 추한 욕망이 되고 만다. 내 별난 성격을 인정할 첫 번째 기회를 나는 놓쳤다. 


  딸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불일치한 것들은 자주 내 의식 위로 올라와 나를 괴롭혔다. 유년기에 논두렁 밭두렁에서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던 외로움이 불쑥 올라왔다. 가슴이 답답했다. 나의 이런 증상을 동료에게 이야기하면 다들 갱년기 증상이라 한다. 갱년기로 단정하기에는 내 안이 너무 복잡하다. P가 말해줬다. 


  “너의 딸은 너에게 반항하며, 너를 벗어나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 몸부림치고 있어. 지금 너는 너 자신에게 반항하며, 오랜 세월 쓴 가면을 벗어 너의 정체성을 찾으려 몸부림치는 거야. 낯선 감정을 이상히 여기지 마. 내가 받아내야 할 내 인생의 단면이라고 생각해.” 나의 정체성이라니! 말도 안 돼. 난 이미 교사로서 견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거든. 동료들이 다 인정하는 거야. P의 말에는 핵심이 있었으나, 나는 부정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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