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8가지 성장 프로그램(연재)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부모님은 나를 서울에 있는 작은 아버지 댁에 보냈다. 작은아버지는 농산물 유통업을 하시는데 꾀 부자셨다.
작은 집에는 바이올린 전공으로 음대를 준비 중인 고등학생 언니가 있었다. 그 당시 음대도 ‘그거 해서 뭐 하려고’였다. 부잣집 자식의 품위 있는 취미 생활 정도였다. 나는 언니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언니 역시 내 그림을 좋아해 줬다. 일주일 내내 나는 언니의 바이올린 연주에 1인 청중이 돼줬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나는 힘차게 박수쳤다. 언니는 그런 나를 좋아해 줬다. 언니는 거기에 보답이라도 하듯 나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하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그린 그림은 주로 언니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었다.
한번은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어쩜, 너의 그림에는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 시각에서 청각을! 내 그림이 언니의 마음을 읽어준 것이다.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구나.” 문학은 글로, 미술은 그림으로, 음악은 소리로, 어린 나에게도 깨달음이었다. 내가 언니의 바이올린 연주에 취한 것은, 바이올린의 얇고 높고 구성진 소리가 나의 외로움을 읽어줬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주는 그림.” 내 그림의 화두였다. 사춘기 속앓이를 하는 중학생 내내 나는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읽어주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씨름했다.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야 그림도 잘 그린다는 결론에 도달해 세계 명작소설을 읽었다. 그때는 그림보다는 명작소설이 나의 외로움을 위로해줬고, 여전히 반 친구들의 유치한 수다에 끼지 못하는 소외감도 달래줬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늦가을이었다. 나는 학교 대표로 군 사생대회에 나갔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나만의 강박적 방법이 있다. 가령 그리는 시간을 3시간 준다고 하면, 절반 정도는 생각하고 나머지 절반은 그림을 그린다. 그러니 시간에 쫓길 때가 많다. 그날도 나는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한가한 가을 공원 풍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교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여고생들이 조잘거리며 예쁜 낙엽을 줍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내 외로움도 달아날 것 같았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내 희망도, 미적 감각도 다 사라질 것이다. 내가 저기에 참여하는 방법은 그림이다. 강풍이 불었다. 여고생들의 치마가 위로 날렸다. 그녀들은 비명을 지르며 치마가 위로 올라가 속 옷이 보이는 줄도 모르고 낙엽을 쫓아 달렸다. 나도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바로 저거다.”
나는 낙엽이 아니라 낙엽을 날리는 바람과, 위로 올라간 여학생 치마가 아니라 속옷이 살짝 비추는 묘한 쾌감과, 낙엽 따라 달리는 여학생의 동심을 그리면 됐다. 사춘기 여학생의 마음을 읽어줘 설레게 하는 그림을 말이다. 일단 구상하면 나는 매우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린다. 나는 대상과 그것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완벽하게 표현했다고 자찬했다.
나는 그 그림으로 대상은 놓쳤지만, 금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의 심사평으로 나는 더 실망했다. 그림에 호흡과 감정이 실려 있지만, 중학생으로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했다는 것이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가 모호한 작품, 그게 나의 화풍이다. 그거는 중학생으로 예술적 감각이 없으면 못 하는 거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 모방이다. “촌 사생대회가 다 그렇지 뭐.” 훗날을 기약하며 나를 위로했다.
군청 로비에 한동안 수상 작품을 전시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사람들은 내 작품보다 달콤한 대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3년 후 대상을 받은 학생은 우리나라 최고의 미대에 진학했고, 나는 지방 미대에 진학했다. 절친 P가 한 말이다. “군 사생대회에서 그린 그림이나, 섬마을 학교 언덕에서 그린 그림이나 너의 결핍을 이상적 예술혼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의 이상적 예술혼을 심리적 결핍으로 해석한 것이 싫었으나, 냉정히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결핍이 없으면 예술을 못 한다. 배부른 상태로 그린 그림은 사람의 입에 넣어주는 몸에 해로운 사탕이다. 더 결핍하게 할 뿐, 결핍을 채워줄 수 없다. 한편 예술적 혼에 집착하면 관념의 날개만 커질 뿐,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나는 대중과 접촉하지 못하는 내 무능을 이상적 예술로 방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술 교사로 충분히 만족해야 할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