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미움의 발전소
불교 경전인 법구경에는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서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로우니,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가지지 말라는 말이 있다. 무욕으로 집착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이르는 불교의 정신을 말해준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고, 미워하는 사람은 멀리하고 싶다. 그래서 괴롭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알지만, 우리는 욕망의 한계를 넘기에는 너무 많은 장치를 가지고 있다.
행복은 무슨 특별한 것을 내 손에 넣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함으로 얻는 선물이다. 불행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부정하고 외부에서 찾으면서 얻는 부산물이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할 때에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투사된 자기의 일부를 사랑하는 것이다. 또한 누구를 미워할 때에도 그 사람 자체가 아닌, 그 사람에게 투사된 자기의 일부를 미워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다 가지지 않는 것은 수도승에게는 가능하겠지만 일반인에게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다 내 안의 사랑과 미움이 투사된 것이라는 인식을 한다면, 사람 때문에 괴로울 일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한 때, 나는 감정표현이 없는 무감각한 사람을 이기적이라 하여 미워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모임에서, 어떤 여성이 나를 바늘로 찔러도 피가 나지 않을 사람 같다고 했다. 나는 내가 늘 무르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말을 들은 것이다. 몹시 당황했고 기분도 나빴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니!”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해 봤다. 그랬더니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오래된 일까지 다 떠오르면서, 내 안에는 내가 미워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그때까지 그런 나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 놓고 그를 미워했던 것이다. 이런 성찰이 오자, 이제는 나와 타인에 대하여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맑아 오는 것이었다. 나를 지적해준 분에게 감사했다.
나는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어린 시절부터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며 살아서인지 나는 늘 진지했다. 유머는 복잡하고 곤란한 상황을 단번에 풀어버리는 매우 성숙한 개인의 능력이다.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그런 사람을 부러워만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중년 이후가 되자 나도 모를 유머가 서서히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동안 내 안에 있었으나 내가 억압해 놓은 좋은 것을 타자에게 투사해 놓고 그를 좋아했던 것이다. 단단한 방어기제를 내려놓기 시작하자, 유머를 사용할 순서가 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다 내 안에 있었다. 아직 그것이 발현할 준비가 안 됐을 뿐이다. 이런 변화는 나의 다른 열등감들도 보상해 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더 괜찮은 사람이다.
위 법구경 잠언을 심리학적으로 재해석해 보겠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은 네 안에 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을 밖에서 찾느라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네 안에서 불러들일 수 있다. 네가 미워하는 사람도 네 안에 있다. 그는 너의 일부이다. 그러니 그를 미워하며 괴로워할 이유가 하등에 없다. 너는 사랑과 미움의 조합이다.”
세상은 거대한 원을 이루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배우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나에게 배운다. 40년 만에 만난 중학교 동창에게 들은 말이다. “그때 나는 너의 맑고 순수한 모습을 보고 사람이 저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단다.” 나는 놀랐다. 그때 내가 얼마나 고뇌하고 있었는데!
탈무드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것을 배운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선을 배우고,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겸손을 배운다. 자기의식이 확장되면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을 따로 나눌 필요가 없어진다. 그 둘 다 나이고, 나는 사랑의 대상도 되고 믿음의 대상도 되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 보자.
마음순례 박성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