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enau 공원

여행이라서 느낄 수 있는 것들

by 본격감성허세남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면 저절로 느긋해진다. 혼자이거나 아내와 함께였을 때는 아무리 늦어도 오전 9시~10시 사이에는 숙소에서 나가곤 했는데 아이와 함께 오니까 12시 정도까지 숙소에 있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다. 그 시간 동안 특별히 하는 건 없는데 그래도 참 여유롭고 좋은 건 여행이기 때문이고, 가족과 함께이기 때문인 것 같다. 아침을 만들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수인이와 잠깐 놀아주고, 짐을 챙겨서 여유롭게 나가는 이 별 볼 일 없는 행위들이 참 즐거웠다.


지도에 따르면 숙소에서 나가서 산책 삼아 15~20분 정도 걸어가면 뉘른베르크 구시가지가 나오는 걸로 되어 있었다. 일단 뉘른베르크에 처음 왔으니 구시가지 쪽으로 가보자 하고 걸어가다가 중간에 공원이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쉬어갈 겸 잠깐 들렀는데 그 공원이 Rosenau 공원이었다. 이후로 뉘른베르크에 머물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들렀던, 정말 좋아했던 공원이다. 규모는 크지 않은데 숲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고, 넓게 펼쳐진 잔디와 그 위에 내려앉은 가을 덕분에 그곳에 있는 내내 행복했다. 여행의 시작부터 날씨가 흐리고 쌀쌀해서 그다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Rosenau 공원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처음 갔을 때는 평일 오후였는데 놀이터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놀고 있었다. 자주 보던 평범한 놀이 모습인데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주변을 걸어 다니며 한참을 봤다. 아마도 뉘른베르크라는 장소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에, 평소에는 회사에 있을 시간인데 이렇게 여유롭게 보고 있다는 만족감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이랄까. 그래서 여행이 좋다. 수인이가 태어난 뒤로 다른 아이들 노는 것을 바라볼 때가 많아졌다. 우리 딸이 걷거나 그랬으면 함께 놀게 하고 그랬을 텐데 아직 기는 수준이라 함께 놀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에 수인이에게 넌지시 말이라도 걸어봤다.


"수인아, 저기 언니 오빠들이랑 함께 놀고 싶지? 아빠 안고 놀아볼까?"


당연히(?) 답은 없다. 뭐가 신기한지 주변을 돌아볼 뿐, 그리고 유모차에 회장님 자세로 편하게 앉아있을 뿐. 일부러 유모차에서 꺼내서 가족사진을 한 번 찍어보았다. 독일에서는 앞으로도 함께 있을 시간이 많은 만큼 가족사진도 많이 찍어야겠다. 나중에 기억도 못할 수인이에게 사진으로나마 보여주려면. 아마 기억도 못하는데 무슨 말이냐며 약 오르겠지?


우리 가족 사진. 앞으로 많이 남겨야지!

공원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성벽으로 둘러싸인 뉘른베르크 구시가지가 나온다. 사실 뉘른베르크는 다녀온 사람으로부터 좋다는 말만 들었을 뿐 정보가 전혀 없었기에 이런 성벽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더 신기하고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도시 안에 이런 오래된 성벽이 그대로 남아있고, 그 안에는 현대적인 세련됨과 오래된 느낌이 공존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이렇게 옛날 것과 오래된 것이 잘 조화를 이루기에 더 매력적이다. 듣기로는 그렇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많다고는 하는데 잠깐 스쳐갈 뿐인 한낱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좋아 보였다. 확실히 걷는 맛도 나고.


수인이가 잘 있어준 덕분에 산책이 쉽다. 유모차에서 잠에 들기도 했다가, 또 깨서 엄마 아빠와 놀기도 했다가 하면서 잘 따라와 줬는데 가끔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새로운 곳이라는 것을 수인이도 알까? 성벽을 따라 걷기도 하고, 좀 더 안으로 들어가서 교회에도 가보고, 차가워진 몸을 녹이고자 테이크아웃 커피도 한 잔 하면서 뉘른베르크 구시가지를 돌아봤다. 계획이 없기에 부담도 없고 평화로운 산책이다. 역시 산책은 이래야 제 맛. 한 교회 안에는 메시지도 남겨두었다. 수인이가 앞으로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 당장 독일 여행부터 잘 마쳐야 함은 물론이다.


사진을 찍는다니 메롱을 하는 수인이
한글로 썼지만 알아서 잘 들어주셨을 것이라 믿는다.

독일이 참 마음에 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식재료 및 생활필수품 물가가 매우 저렴하다는 점이었다. 수인이 기저귀나 각종 유아용품도 한국에 비해 월등히 쌌고, 우유/채소/고기도 거의 우리나라의 반값 정도로 굉장히 저렴했다. 맥주야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독일에 있는 내내 저녁은 거의 숙소에서 직접 해 먹었다. 어차피 수인이가 있으면 레스토랑에 가서 먹기에도 그리 쉽지 않았는데 식재료도 저렴해서 어찌나 좋았던지. 주방이 딸린 아파트형 숙소를 빌렸던 것이 빛났던 순간이었다.


스테이크용 고기를 사서 굽고, 파인애플과 오이를 곁들이고, 한국에서 조금 가지고 간 쌀로 밥을 하고, 거기에 맥주를 더해서 먹는 행복한 저녁. 아빠와 엄마가 저녁을 먹는 동안 수인이는 옆에서 기어 다니며 잘 놀았다. 이런 저녁은 혼자나 우리 부부만 왔다면 아마도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거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엔 포기하는 것도 많지만 이렇게 새로운 즐거움들도 많다.


그러고 보면 행복이라는 것이 참 별것 아니다. 엄청난 경치를 본 것도 아니고, 스릴 넘치는 액티비티를 한 것도 아니고, 매력적인 아이템 쇼핑을 한 것도 아니다. 그냥 걸었고, 소박하게 저녁을 해 먹었다. 여행을 갔지만 하루 중에 바깥에서 있는 시간은 많아야 5~6시간뿐이다. 그런데 이토록 행복하고, 걸어 다니며 "아.. 좋다."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수인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아직도 신기하고 새롭다.


맛집은 아니지만 만족도는 최고인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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