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은 싫어요
아침에 일어나니 밖에서 빗소리가 들렸다. 뉘른베르크에서 날씨가 계속 우중충하긴 했지만 비가 오지는 않았는데 이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비가 왔다. 돌도 안 된 어린아이와 함께 여행할 때 가장 큰 적은 비다. 계속 힙시트에 태우고 다니자니 아빠 엄마와 수인이 모두 힘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도 힘드니 비야말로 우리 여행의 가장 큰 적. 그렇지만 금방 체념하고 아침을 준비했다. 오늘 아침은 내가 솜씨를 발휘한 샌드위치와 어제 사놓은 샐러드. 적절한 과일과 커피까지 곁들이니 그럴듯한 아침이 됐다. 호텔의 조식 뷔페가 그리울 때도 있다. 특히 독일의 웬만한 호텔들의 조식 뷔페는 우리 부부의 취향에 딱 맞아서 좋아하는데 우리의 아침은 그것보다 훨씬 소박하니까. 그래도 우리끼리 정감 있는 분위기라 마음은 편하다.
평소보다 더 여유롭게 아침을 먹은 후 정리까지 다 하고 나서 주변 검색을 시작했다. 비가 오니까 아무래도 실내를 돌아다녀야 하겠는데, 박물관같은 곳은 수인이 데리고 가기에 적합하지 않으니... 그래서 쇼핑을 하기로 했다. 찾아보니 <Mercado Nurnberg>라는 살짝 큰 규모의 쇼핑몰이 있었다. 그곳을 목적지로 해서 숙소를 나섰다. 비가 오고 바람까지 부니까 수인이가 추울까 봐 평소보다 더 꽁꽁 싸맸다. 아직 10월 중순인데 뭐 이렇게 추운지. 지난 신혼여행 때는 3월 중순인데 눈이 펑펑 오지를 않나. 날씨가 영 이상하다. 꽁꽁 싸맨 수인이는 곰돌이 같아서 더 귀엽다. 히히. (푼수)
유모차에 커버를 씌워 비를 뚫고 쇼핑몰에 갔건만 결국 우리 부부는 쇼핑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수인이가 도무지 비협조적이었다. 바깥 산책을 할 때는 그렇게 협조적인 아이가 쇼핑몰에서는 들어가서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더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최대한 시원하게 해주니 잠시 가만히 있었다가 금세 또 떼를 썼다. 기저귀 가는 곳에 가서 기저귀 갈려고 잠시 빼주니까 또 웃으며 좋아하다가, 유모차에 태워서 조금 돌아다니니 또 떼쓰기 시작. 아니 그러면 걷든지 이 녀석이.
독일에는 우리나라의 이마트처럼 큰 마트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내가 못 찾는 건가 해서 좀 더 찾아봤는데 실제로도 없었다. 그런데 이곳 쇼핑몰에는 <Real,- SB Warenhaus>라는 상당히 큰 마트가 있었다. 이마트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슈퍼마켓보다는 훨씬 더 크고 물건도 많은 그런 곳? 마트 구경을 좋아하는 우리는 어떻게든 그곳이라도 구경해보겠다며 수인이를 재밌게 해줘도 보고, 안아도 보고 하면서 시도해 봤지만 나중에는 쇼핑몰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별 수 있나. 우리 따님께서 "아빠 엄마, 실내는 갑갑해요. 쇼핑은 싫어요."라고 말하고 있으니 나올 수밖에.
"우리 딸은... 음.. 국토대장정형 아이 같아."
"응? 무슨 말이야?"
"국토대장정처럼 바깥에서 계속해서 걸어야지 좋아하고 만족하는 아이랄까."
"...... 정말 계속 걷기만 해야 하나."
우리 부부는 이런 대화를 하며 숙소로 일찍 돌아왔다. 그래도 Real에서 득템 한 것이 하나 있다. 우리가 도착하기 얼마 전에 끝난 옥토버페스트를 위해 만들었던 제품을 행사가 끝나고 싸게 파는 것이었는데, 파울라너 맥주 1리터짜리 캔과 1리터짜리 무척이나 튼튼한 전용잔을 합쳐서 5유로도 안 되는 가격에 샀다. 우리나라 돈으로 6~7천원 사이? 아니 맥주 1리터에, 엄청나게 튼튼하고 좋은 잔까지 했는데 그 가격이라니. 맥주 마니아인 나는 다시 한번 반해버렸다! (뒤에 안 것이지만 뉘른베르크의 real이 가장 저렴했다. 다른 곳은 그래도 8~9유로는 최소 나갔다)
숙소에 일찍 돌아온 덕분에 여유 있는 오후 및 저녁 시간. 수인이는 숙소에 돌아와서 언제 떼썼냐는 듯이 잘 놀았다. 숙소 여기저기를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뉘른베르크에서 꽂힌 '개구리가 폴짝' 책도 열심히 봤다. 책을 볼 때는 아빠 엄마가 반드시 호응을 해줘야 한다. 넘기는 걸 보면서 글을 읽어줘야 하고, 마지막 페이지에 개구리가 물에 뛰어드는 페이지에서는 한껏 오버하며 "풍덩~!"도 해줘야 한다. 물론 동작도 함께. 옆에서 보면 참 웃긴데 우리 부부는 뭐가 그렇게 좋다며 한참 동안이나 놀이를 했다. 딸바보 아빠 엄마라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러고 보면 국토대장정형 아이가 맞긴 한데, 다르게 보면 그냥 쇼핑을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집에서는 이렇게 잘 노는 걸 보면 말이지. 우리도 쇼핑을 그렇게 좋아하는 부부는 아니지만 수인이 덕분에 앞으로 독일에서의 남은 일정에서는 쇼핑을 할 일이 더 없을 것 같다.
오늘의 저녁은 고기를 넣은 굴라슈와 야채, 양배추 샐러드, 그리고 오후에 구입한 맥주. 1리터를 다 부었더니 혼자 먹기에도 엄청난 양의 맥주가 손에 들렸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 거 좀 취하면 어떠나 하고 마음껏 마셨다. 알딸딸하니 기분 좋았던 저녁. 비록 비가 오는 날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는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늘 무언가 할 일이 생기기 때문에 최소한 심심하지는 않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