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도시를 걸을 수 있는 행운
뉘른베르크에서 지역 열차를 타고 1시간 정도를 가면 밤베르크라는 작고 예쁜 도시가 나온다. 근교로 한번 나가볼까 하고 찾다가 알게 된 곳인데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했다. 독일에 온 것만 벌써 네 번째인데 왜 지금까지는 몰랐을까. 뉘른베르크를 그냥 떠나기가 아쉬워 밤베르크를 다녀왔다.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기에 독일이 참 좋은 점은 기차 때문이다. 기차 시스템이 정말 잘 되어있고, 모든 일정은 DB Bahn 앱으로 편리하게 체크 가능하고, 기계에서 일정 프린트도 바로 가능하다. 게다가 열차마다 자전거와 유모차를 위한 시설들이 여러 곳씩 다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다니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독일에 와서 참 고맙고 감탄했던 점이 바로 이 기차 시스템이다. 초고속열차인 ICE 뿐만 아니라 지역 열차에도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으니 어찌 반하지 않을 것인가. 유모차를 들고 타면 주변 사람들이 알아서 들어주기도 한다. 참 고마운 사람들. 한국에서 유모차를 가지고 지하철을 타거나 할 때 계단 때문에 끙끙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도움을 받은 적은 거의 없다. 독일에서 돌아온 뒤 가장 아쉬웠던 점이다.
평소보다 훨씬 일찍 기차를 탔지만 수인이는 오늘도 별 칭얼거림 없이 잘 따라와 줬다. 기차에서는 창밖을 보게 해줬더니 뭐가 그렇게 오랫동안 창밖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0살 아이에게서 저런 지적인 표정이 나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정말 궁금했지만 말을 하지 못하니 알 수 없는 노릇. 이럴 때 참 답답하지만 그저 아빠 미소를 하고 쳐다볼 수밖에.
밤베르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기분 좋은 곳이었다. 운하가 흐르는 주변의 집들은 예쁘고 평화로웠고, 밤베르크 돔과 그 주변의 궁전들은 우아하고 웅장했다. '작은 베네치아'라는 말도 있던데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좋은 도시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를 피한 곳이라 그런지 최소 수백 년 된 거리나 집들이 뉘른베르크보다도 훨씬 더 고풍스럽고 아름다웠다. 어떻게 이런 곳이 한국에는 잘 안 알려질 수 있는지.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행 가이드북에 보면 거의 나오지 않는 곳이 밤베르크인데, 내가 본 밤베르크는 독일에서 가본 그 어떤 곳보다도 멋졌다. 밤베르크 돔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삼각대 및 이런저런 세팅을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영어로 "사진 찍어드릴까요?" 하고 물어왔다.
"아니요. 괜찮아요. 삼각대가 있어서요."
"어이쿠 깜짝이야. 한국인이세요?"
"네. 왜 놀라세요?"
"아, 한국인은 거의 못 봐서요. 아이 데리고 여행 오셨나 봐요. 아이가 많이 어린데 대단하시네요."
"여행 왔습니다. 그쪽도 아이가 어리신데요 뭐. 대단하세요!"
"저희는 이 근처에서 살고 있어요. 잠깐 놀러 왔어요."
오죽하면 한국인이라면 깜짝 놀라는 이런 대화가 오갈 정도로 밤베르크는 잘 알려지지는 않은 곳이다. 독일을 다녀보면 다른 나라 못지않게 예쁜 곳들도 많고, 흔히 '유럽' 하면 떠오르는 그런 아기자기한 집들도 많은데 프랑스/스위스 등보다 여행지로 잘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다. 혹시 어린아이까지 함께 한다면 여행지로 독일은 강추!
비록 날씨가 여전히 흐려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경쾌한 기분으로 마음껏 산책을 즐겼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올 수 있고, 여유롭게 산책도 즐길 수 있다는 건 엄청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수인이와 함께 올 수 있다니 더더욱 행운이다. 중간에 틈틈이 "수인아 정말 예쁘지? 저거 봐봐." 같은 말을 열심히 해줬는데 덕분에 수인이의 기억에도 흐릿하게나마 조금 더 잘 남았기를 바란다.
독일에 와서 몇일밖에 안 지났지만 수인이는 더 성장한 느낌이다. 어디서든 잘 놀고, 특히 책도 더 잘 본다. 전에도 말한 <개구리가 폴짝> 책은 밤베르크에서도 굉장히 잘 봤다. 아빠와 엄마는 커피를 마시고, 수인이는 책을 본다. 에구 이런 효녀. 어린아이는 정말 하루하루가 다른 느낌이라 신기하다. 아마도 베를린쯤 가면 더 큰 아이가 되어있겠지? 하는 기대도 든다.
뉘른베르크로 돌아가는 길이 이날따라 특히 아쉬웠다. 밤베르크를 마지막으로 이제 뮌헨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좋은 곳이었지. 뉘른베르크와 밤베르크 모두. 첫 시작을 생각보다 잘 했으니 앞으로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