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을 향해 간다
독일에서의 마지막 토요일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대체 출국하는 날은 언제 오나 매일 생각할 정도로 시간이 늦게 갔었는데, 여행을 와서는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간다. 다음 주면 한국으로 돌아간다니. 아쉬움은 잊고 마지막 토요일을 마음껏 즐기라는 뜻인지 날씨는 매우 맑고 화창했다.
토요일에 무엇을 할지 이날따라 많은 고민이 됐다. 마침 FC 쾰른의 분데스리가 경기가 있는 날. 축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를 잘 아는 아내는 혼자라도 보고 오라고 했다. 수인이와는 잘 놀고 있겠다고. 그 말을 듣고 꽤 많이 고민을 했지만 결국엔 축구 경기를 포기했다. 마지막 주말을 혼자서 축구 경기를 보며 즐기기보다는 아내와 수인이와 함께 보내는 것이 나중에 훨씬 더 깊게 남을 것 같았다. 이제 포기는 익숙하다. 게다가 축구는 서울에 가서 내가 사랑하는 FC 서울의 경기를 봐도 되지만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테니.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좋은 결정이었다.
축구 대신 선택한 곳은 역시나 공원이다. 지금까지 갔던 독일의 여러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쾰른에도 공원이 많았다. 특히 가까이에 <라인 공원>이 있기에 오늘의 목표는 그곳으로 정했다. 지하철로 한 정거장 가서 내린 후 라인강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넓은 잔디밭이 나왔다. 본격적인 공원의 시작이다. 수인이는 여전히 겁이 많다. 아빠 품에 안겨서는 기분 좋게 웃더니 잔디밭에 내려주니 잔디를 만져보고 이게 뭔가 싶었는지 금방 울음을 터뜨렸다. 이것 참 잔디밭이 무섭다니. 아빠 엄마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것이 우리 딸이다. 일단 안아서 조금 더 걸어서 다시 새로운 잔디밭에 내려놓으니 이제는 적응이 됐는지 활짝 웃는다. 덕분에 돌잔치에 쓸만한 사진을 한 장 더 얻을 수 있었다. 날씨도 좋고, 수인이도 활짝 웃고, 그 순간만큼은 한없이 행복했다.
라인 공원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었다. 워낙 넓은 곳이라 꽤 오래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경험한 곳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할 정도였다. 공원 한 곳에는 케이블카 같은 것도 있고 그랬지만 수인이와 함께라 욕심부리지 않고 포기. 그래도 전혀 아쉽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좋았다. 특히나 넓게 펼쳐져 있는 잔디밭이 인상적이었다. 한쪽에서는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다른 한쪽에서는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강가로는 자유롭게 걸으며 주말을 보내는 남녀들. 그 속에 우리 가족도 있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도심 근처에 이렇게 넓은 공원이, 게다가 산책로뿐 아니라 잔디밭까지 갖춘 공원이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물론 우리 수인이는 아직 뛰어놀지 못해 유모차로 다니거나 잠깐 잔디밭에 내려온 정도였지만 만약 수인이가 더 컸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니 그것 만으로도 흐뭇했다.
"쾰른 떠나기 아쉽다."
"응. 원래는 성당 하나 보고 왔는데 굉장히 여유롭고 좋다."
"한 2~3일만 더 있으면서 근처에 다른 곳들도 가보고 했으면 좋겠어."
"다음에 수인이 크면 다시 오자!"
이런 대화를 나누며 언젠가 다시 오자는 다짐을 했다. 라인 공원에서 한 가지 더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라인강이었다. 강둑이 콘크리트로 덮여있는 한강 공원과 달리 이곳은 마치 바다에 접근하듯이 강에 바로 접근할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이날도 몇몇 사람들이 강가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도시 가운데로 강이 흐르는 것은 같은데 강이 사람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와 있는 느낌이랄까. 좀 더 자연에 가깝기도 하고. 이런 모습까지 인상적이고 부러운 것을 보면 쾰른이 참 좋긴 좋았나 보다.
찾아보니 쾰른은 독일 제4의 도시(베를린 > 함부르크 > 뮌헨 > 쾰른)인데 인구가 100만 정도다. 독일 전체 인구가 8천만으로 우리나라보다 많은데 100만 넘는 도시가 저렇게 4개 정도밖에 안 된다니 얼마나 신기한지. 오로지 서울만 바라보며 서울 근처에서라도 살아야 하는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참 부러웠다. 언젠가 지역 균형발전이 되기는 할까? 쾰른과 도르트문트를 중심으로 하는 라인-루르 지방이 흔히 말하는 '라인강의 기적'의 중심지라고 했다. 처음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도심지에서 파는 쾰른의 1945년 모습을 보니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실감이 났다. 엽서 속 쾰른은 대성당만 빼고 온통 다 부서져 있었다. 강에 있는 다리까지 모두. 그런데 현재는 완전히 다르다. 그동안 이곳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을지 생각하니 살짝 숙연해졌다.
어쨌든 우리는 현재의 발전된 쾰른을 마지막까지 여유롭게 즐겼다. 저녁에는 쾰른에서 즐겨 갔던 슈퍼마켓에 가서 마지막 만찬을 준비했다. 볶음밥도 만들고, 돈까스 비슷한 것도 사서 굽고, 너겟과 버섯볶음까지 그 어느 때보다 과하게 준비해서 즐겼다. 쾰른 지방 고유 맥주까지 곁들였음은 물론이다. 슈퍼마켓에 갔는데 맥주가 참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어서 또 사진 찍어 보았다. 맥주 성애자인 내가 지나칠 수는 없지. 독일 어디를 가도 맥주가 저렴하고 맛있어서 참 마음에 든다.
3박 정도로 짧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좋았던 쾰른은 그렇게 안녕이다. 우리의 막연한 대화처럼 언젠가 다시 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는 좀 더 큰 수인이도 함께 와서 라인 공원을 마음껏 뛰어다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