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마지막 도시
늘 보던 서울 같은 프랑크푸르트에 있기엔 아쉬워서 마지막으로 하이델베르크에 다녀왔다. 순전히 아빠 엄마의 욕심이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그냥 떠나기엔 아쉬웠고, '예쁜 도시에 가서 걸으면 수인이도 즐거울 거야'라고 최면을 걸며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다녀왔다. 사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날들이 그랬던 것 같다. 밤베르크, 슈반가우, 드레스덴 등 모두. 다만 이번엔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에 조금 더 무리해서 다녀왔을 뿐. 잘 따라와 준 수인이에게 용돈이라도 줘야겠다.
뮌헨 이후로 계속 좋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졌다. 기온도 뚝 떨어져서 가만히 있으면 추워서 부르르 떨릴 정도의 추운 날씨다. 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온다던 옛날 노래처럼 날씨가 우리의 일정을 맞춰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창한 날씨와 마지막은 왠지 어울리지 않으니까. 덕분에(?) 살짝 가라앉은 채로 하이델베르크를 돌아다녔다.
하이델베르크에선 처음으로 채식 뷔페에 도전해봤다. <red>라는 이름의 집이었는데 의외로 굉장히 맛있었다. 예전에는 여행 가면 항상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들에 도전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맛있는 음식에 손이 더 간다. 굳이 토속 음식이나 특산품이 아니더라도 내가 만족도가 높은 음식이 최고다. 채식이고 간도 그리 강하지 않아서 수인이에게 조금 먹여보기에도 부담이 없다. 아직 이유식과 분유를 먹는 수인이지만 만약에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고 말까지 하게 되면 얼마나 재밌을까? 수인이와의 여행은 앞으로도 많이 있을 테고, 지금보다 나중이 더 기대가 된다.
하이델베르크는 예뻤다. 날씨가 흐리니 더욱 신비스러워 보이면서도 아름다웠다. 걷는 맛이 좋은 도시라 우리처럼 산책이 여행의 전부인 사람에게 매우 적합했다. 평일이라 사람이 그리 붐비지도 않았다. 하이델베르크 성에 올라가는 산악열차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탔을 정도였다. 그래서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더 좋았던 것 같다. 예쁜 도시를 여유롭게 걸으며 우리의 길었던 독일 여행을 차분하게 마무리했다.
그러고 보면 대학 시절에 혼자 여행을 왔을 때도 마지막 도시가 하이델베르크였다. 이 곳에 들렀다가 프랑크푸르트에 간 후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었다. 그때는 혼자였는데, 지금보다 더 길게 한 달가량 여행을 했기에 살짝 외로웠는데, 지금은 그래도 옆에 사랑하는 아내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수인이가 있으니 마음이 참 따뜻해진다. 예쁜 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기분, 지금까지 몇 주 동안 해왔던 일상적인 행동인데 이날따라 참 특별하게 느껴졌다. 언제나와 다름없이 같은 하루인데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더해지니 사람이 감상적으로 변한다.
쾰른에 대성당이 있다면 하이델베르크에는 하이델베르크 성이 있다. 이 성은 특별하다. 유럽에는 남아있는 성들이 많지만 하이델베르크 성은 돋보이게 멋있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오히려 폐허처럼 방치된 느낌에 더 가깝다. 그렇지만 그 점이 이곳을 더욱 인상적으로 남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약간 쓸쓸하면서 외로운 느낌이랄까. 가을에 딱 어울리고 흐린 날씨에 딱 어울리는 그런 성이다. 생각해보면 하이델베르크 같은 예쁜 곳에 위압적이고 거대한 성이 있는 것도 이상할 것 같다. 도시와 잘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운 성, 그런 느낌이었다. 수인이는 이런 느낌을 물론 알리가 없다. 이곳에서는 그저 아빠 엄마만 별 말없이 즐겼다. 오늘은 아빠 엄마 욕심 내는 날.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하이델베르크 시내의 모습은 안개로 둘러싸여 신비롭고 평화로웠다. 강 건너에서 바라본 하이델베르크 성과 그 주변의 모습은 아늑했다. 우리는 강을 따라 다음 기차역까지 쭉 걸어갔다.
"의도한 건 아닌데 마지막이랑 참 잘 어울린다. 그치?"
"그러게. 날씨 안 좋아서 좀 아쉬웠는데 오히려 날씨가 좋았으면 이상했을 것 같아."
흐린 날씨도 어울리는 조용했던 하이델베르크. 오후 늦게 되니 기온이 더 떨어져 추웠지만 덕분에 아내의 손을 더 꼭 잡게 되었고 마음은 더 따뜻해졌던 것 같다.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왔다. 남은 재료로 마지막으로 저녁을 준비하고, 맥주도 곁들이고, 수인이를 재운 후 사진을 정리한 후 금방 잠에 들었다. 마지막 밤이라고 특별할 것은 없었다. 아쉬움은 하이델베르크에서 충분히 날려 보냈으니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맞게 될 일상을 준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