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인에서의 휴일

산책과 온천

by 본격감성허세남

이번 여행의 또 다른 목적인 온천을 위해 유후인으로 가는 날. 유후인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후쿠오카에서 유후인까지 가는 열차는 크게 2종류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관광용으로 특화된 열차라 유독 예약이 어렵다. 우리는 사전에 열리자마자 예약을 했기에 타고 갔는데 타기 전에는 뭘 그렇게 일부러 타려고 하나 싶었지만 타고나니 금방 이해가 됐다. 어차피 걸리는 시간도 똑같고, 요금도 똑같지만 그래도 기분이라는 게 있지 않나. 확실히 '유후인노모리'라는 이름이 붙은 관광열차는 쾌적하고 시야도 탁 트여서 좋았다. 수인이에게는 큰 차이가 없지만. 최소한 아빠 엄마는 좋으니까 그걸로 만족한다.


유후인에 처음 왔던 건 2006년 여름이었다. 그때는 우리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나까지 이렇게 넷이서 왔었다. 마을도 정말 예쁘고, 저녁에 나오니 실제로 호수 근처에 반딧불이 돌아다니는 환상적인 곳이라 언젠가 꼭 다시 가야겠다 싶었는데 그게 벌써 10년이 지났을 줄이야. 이번에는 대신 내 사랑하는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다. 좋은 기억이 있는 곳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물론 수인이와 함께 하는 기차여행은 낭만적이지 않다. 더욱 의지가 생긴 우리 딸은 아직 걷지도 못하면서 뭐 그렇게 호기심이 많은지 여기저기 둘러보고, 아빠 엄마의 핸드폰을 탐내기도 하고, 돌아다니자고 칭얼거리기도 했다. 기차는 돌아다닐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안고 돌아다니며 전 칸을 다 둘러보고,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바깥 보면서 "수인아 저기 강이 흐르고 있네."처럼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혼잣말을 하고, 그러다가 중반이 조금 지나서 간신히 잠이 들었다. 기차는 최소한으로 타야 할 교통수단일 뿐이다.


2시간을 조금 넘게 달려서 유후인 역에 도착했다. 그 모습이 독특한 유후인 역은 10년 만에 다시 와도 여전했다. 달라진 점은 그때보다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점? 조금은 한적했던 유후인은 이제 완전히 붐비는 곳이 되어 있었다.



숙소 체크인이 늦은 시각이라 일단 역에 있는 짐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유후인을 돌아다녔다. 10년 전과 달라진 또 다른 점은 더 트렌디한 음식들, 트렌디한 소품들을 많이 파는 곳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작은 마을에 이런저런 것들이 다 몰려있기 때문에 굉장히 쇼핑하기가 좋은 곳이었다. 큰 쇼핑센터가 아니라 대부분의 것들이 밖에 있기에 우리에게도 꽤 괜찮은 환경이었다. 적어도 수인이가 쇼핑몰 안에서만큼 칭얼대지는 않으니까 우리도 걸어가다가 맛있는 것도 먹고, 쿠마몬 같은 캐릭터 상품도 살 수 있었다. 긴린코 호수로 걸어가다가 수인이에게 어울릴 기가 막힌 아이템을 발견했다. 누가 봐도 일본스럽고 분홍분홍 한 아이용 옷. 보자마자 우리 둘 다 외쳤다.


"수인이가 저거 입으면 엄청 예쁠 것 같지 않아?"

"사자. 저건 사야 해."


그리고 자연스레 결제를 했다. 우리 둘의 것은 전혀 보지 않으면서 언제나 수인이의 물건은 계속 사게 된다. '베이비' 붙은 상품들이 비싸도 잘 팔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유후인 여기저기에도 봄이 내려서 예뻤다. 다채로운 녹색, 곳곳에 피어있는 벚꽃들이 10년 전 여름에 봤던 유후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압권은 역시 긴린코 호수였다. 그리 크지도 않은 호수가 어떻게 이렇게 예쁘고 느낌이 좋은지. 이곳만큼은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이렇게 똑같이 있어줘서. 여전히 예쁜 마을이긴 하지만 너무 상업화된 것 같아서 조금 아쉽기도 했는데 긴린코 호수가 그 아쉬움을 완전히 달래주었다.


호수는 그저 걷기만 해도 좋았다. 산책의 맛이 제대로 나는 그런 멋진 곳이었다. 갑자기 바람이 많이 불긴 했지만 수인이도 좋은지 이때만큼은 가만히 앉아서 산책을 즐기는 느낌이었다. 너도 좋은 건 아는구나. 아, 좋다. 긴린코 호수 하나만 해도 유후인은 와볼 만한 곳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게는 시시한 곳이겠지만, 우리처럼 산책이 주 목적인 여행자들에게는 최고의 곳이다.


긴린코 호수에서 산책을 즐긴 우리 가족


오후 늦게 료칸으로 이동했다. 중심가에도 료칸은 많지만 그래도 번잡한 게 싫어서 약간 산으로 올라가면 있는 료칸을 예약했는데 그것 때문에 숙소에 전화를 해서 차를 요청해야 하는 것 빼고는 결과적으로 대만족이었다. 조용하고 고즈넉해서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수인이와 즐겁게 지내기에 딱 좋은 그런 곳. 창밖으론 여기저기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여기가 온천 마을인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료칸은 참 쾌적하다. 적당히 서늘하고, 적당히 넓어서 짐을 놔도 부담도 없다. 아주 비싼 료칸은 아니기에 저녁에 나오는 음식이 굉장히 호화롭거나 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깔끔하고 맛있었다. 화룡점정은 역시 온천! 노천탕이 여러 개가 있어서 골라서 들어갈 수 있었다. 가족탕도 갖춰져 있기에 비어있으면 가족끼리 들어가서 문 잠그고 그냥 이용하면 됐다. 덕분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우리 가족끼리 편안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었다. 하늘엔 별이 떠있고, 몸은 따뜻하고, 수인이는 첨벙첨벙하고 있고. 물이 아이에게는 조금 뜨거울 수 있어서 찬물 틀어놓고 그 근처에서 많이 못 나오도록 하는 것이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여유롭게 온천을 즐길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숙소와 온천과 전통 음식이 조화된 료칸 여행이야말로 가족여행에 딱 맞는 것 같다.


유후인에서 산 일본 전통 옷은 수인이가 입으니 역시나 예뻤다. 우리는 '온천 요정'이라고 불렀다. 우리 온천 요정은 료칸에 오니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다니고 즐거워한다. 수인이가 이렇게 잘 놀 때 가장 뿌듯하다.


우리가 묵었던 료칸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온천으로 노곤해진 몸을 달래준 안주와 맥주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기에 역시나 포기하는 것은 생기게 마련이다. 좀 더 다양한 노천탕을 즐기고 싶지만 수인이의 컨디션을 중시해야 하니 우리 마음대로 즐기기는 어렵다. 밥을 먹으면서도 수인이가 뛰어다니거나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기에 아무래도 여유롭게 맛을 음미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료칸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니 "아, 행복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유후인에서의 휴일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수인이는 평소보다 금방 잠이 들었다. 온천으로 노곤노곤해진 몸은 맥주로 달래주었다. 기분 좋은 밤. 일본식 다다미방에서 자는 잠은 또 새로운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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