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인을 떠나 후쿠오카로
우리 부부 모두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수인이는 잘 자고 있었다.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는지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잤다. 다행이다. 서울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어서 5분만 더를 되뇌곤 하는데 유후인에서는 아침 일찍 자연스레 눈이 떠지다니, 역시 마음먹기 나름인가 보다. 수인이가 깨기 전에 번갈아가며 온천욕을 하고 오기로 했다. 내가 수인이 옆에 누워있는 사이에 먼저 다녀온 아내가 감탄을 했다.
"와, 정말 정말 좋다. 기분도 상쾌하고. 얼른 가봐. 꼭. 두 번 하고 와."
수인이 불침번 자리를 아내에게 맡기고 나도 온천욕을 하러 내려갔다. 남탕엔 아무도 없었다. 봄이지만 아침 일찍이라 살짝 서늘한 공기를 맡으며 노천탕에 들어가서 한참 동안 온천욕을 즐겼다. 원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여러 곳을 가봐야지 하고 마음먹었지만 노천탕에 들어간 순간 그 모든 생각이 다 사라졌다. 그냥 한없이 있고 싶은 느낌뿐. 얼굴 아래는 따뜻하고, 얼굴은 시원한 노천탕만의 느낌! 서울에서의 피로까지 모두 다 풀리는 느낌이었다. 10년 전 20대 초반에 왔을 때는 몰랐던 그런 느낌이다. 나도 점점 아저씨가 되어 가나보다. 이런 느낌을 즐길 줄 아는 것이 아저씨라면 얼마든지 아저씨가 되어 주겠지만. 혼자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차피 아무도 없고, 노천탕의 여탕 쪽에는 누군가가 있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이럴 땐 노래를 해야지.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소리가 비로소 실감이 갔다.
아침 온천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온몸이 보들보들해서 옷이 몸에 닿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방으로 돌아가니 수인이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아빠 엄마 여유롭게 즐기라고 오래 자다니 기특한 것. 짐을 싸고, 료칸에서 제공하는 깔끔한 아침을 배부르게 먹고 숙소를 나왔다. 료칸에서의 숙박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수인이가 좀 더 크면 한 번 더 와야겠다.
유후인을 떠나기가 아쉬워 기차 시간 전까지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중심 상가 쪽에서 살짝 벗어나서 걸어보고자 골목 쪽으로 발을 돌렸는데, 조금 걸어가니 엄청난 꽃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작은 개천 양옆으로 유채꽃이 만발하고, 그 위 둑에는 벚꽃이 만발한 감탄이 나오는 그런 풍경이었다. 그야말로 봄이다. 일본에서 느끼는 제대로 된 봄. 역시 봄에는 꽃이 피어야 한다. 태풍처럼 봄에도 눈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 봄의 한가운데 서있는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유모차에 앉아있는 수인이도 신기한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수인아, 저기 꽃 좀 봐. 예쁘지? 저게 유채꽃이야."
"아빠 엄마랑 사진 찍을까? 저기가 좋겠다."
수인이도 봄을 만끽할 수 있도록 일부러 안고 돌아다녔다. 떠나기 전에 이런 멋진 시간을 선물해주다니, 유후인은 정말 좋은 곳이었다. 특히 봄의 유후인은 설레고 풋풋한 예쁜 마을이었다.
유후인을 떠나 후쿠오카로 돌아왔다. 내리자마자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시골에 있다가 도시에 오니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지게 보인다. 같은 봄인데 유후인과 달리 후쿠오카는 봄이 살짝 빗겨 나 있는, 봄의 가장자리 같은 그런 느낌? 벚꽃이 만발한 후쿠오카 성터가 아닌 이상 그냥 도시였다. 사람과 차가 많고, 칙칙한 도시였다. 유후인에서는 사방이 모두 봄이었는데. 내일 서울로 떠나야 하기에 어쩔 수 없지만 유후인에 하루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숙소에서도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체크인을 하는데,
"흡연실밖에 없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아니 분명히 금연실을 예약했는데요. 다시 한번 확인해주세요.
"여기 보시면 금연실 요청은 없습니다."
확인해보니 정말이었다. 호텔 예약을 하나투어에서 했더니 그런 세세한 옵션까지는 신청이 되어 있지 않았다. 어차피 돈은 다 냈기에 다른 곳에 갈 수도 없는터라 다른 방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달라고 하면서 한참을 보내다가 결국엔 그냥 가기로 했다. 대신 예약한 것보다 조금 더 큰 방을 줬다. 다행히도 방에서 담배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고, 6인도 잘 수 있는 큰 방을 준 덕분에 수인이가 침대를 오가며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하던가. 휴, 다행이다.
그래도 후쿠오카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잘 마무리했다. 카날 시티 가서 저녁도 먹고, 수인이를 달래 가며 이것저것 쇼핑도 하고, 슈퍼마켓에 들러서 내일 아침 거리까지 샀다. 세계 어딜 가나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쇼핑 장소는 역시 슈퍼마켓이다. 쇼핑을 싫어하는 수인이도 슈퍼마켓에서만큼은 나름 잘 있는 편이다. 독일에서는 수인이 이유식을 따로 사고, 분유를 먹이고 그랬는데 이제는 아빠 엄마가 먹는 것을 같이 먹으니까 수월하기도 하고 비로소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딸 많이 컸네. 기특한 것.
숙소로 돌아가는데 비가 살짝 내렸다. 아마도 유후인에서였다면 봄비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도시에서는 그저 늘 같은 비다. 후쿠오카를 떠나기 전에는 마음껏 즐긴 벚꽃 덕분에 이곳이 참 좋았었는데, 다시 돌아온 후쿠오카는 그저 그렇다. 떠나기 전과 돌아온 후가 어떻게 이렇게 다른지. 같은 봄인데 유후인과 어떻게 이렇게 다른지. 역시 우리 가족은 도시보다는 자연 취향인가 보다. 수인이도 유후인이 좋았을까? 물어봐도 대답은 없는 우리 딸. 이곳에서도 그저 변함없이 잘 노는 수인이를 보니 어쨌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