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만 여행

여섯 번째지만 새로운 기분의 타이페이

by 본격감성허세남

모두가 기대하는 2017년의 첫 번째 황금연휴인 5월 첫째 주. 우리 가족 역시 "집에 있는 건 죄악이야!"라는 생각으로 국내외 어디든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했었다. 그런데 세상 일이 늘 그렇게 계획대로만은 되지 않듯이 그때 과연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미지수인 상황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예정보다 조금 이른 3월 중순에 갑작스레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일이 생겼다고 해서 여행을 포기하기보다는 더 일찍 가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변함없는 내 방식이다. 이렇게 충동인 사람인데도 아내가 잘 동조해줘서 참 다행이다.


예정된 출발일이 불과 2주 정도 남은 상황.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대만의 타이페이에 가기로 결정했다. 3월 중순이면 타이페이는 봄이 한창일 때니 꽃도 즐길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익숙한 곳이기에 준비도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2011년에 부모님을 모시고 대만에 처음 간 이후로 이번이 벌써 여섯 번째다. 이제는 웬만한 국내 도시보다 더 잘 아는 곳이 타이페이가 되어 버릴 정도다. 그래도 또 대만으로 결정할 정도로 참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물가도 우리나라보다 저렴하고,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기에 수인이 데리고 다니기도 편하고, 무엇보다도 음식이 맛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어떤 도시를 한두 번 가본다고 다 알 수 있으랴. 갈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즐거웠던 곳이기에 이번에도 걱정은 없었다.


출발일 아침 일찍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타이페이는 인천공항보다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것이 훨씬 좋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면 마치 우리나라의 인천공항 같은 타오위안 국제공항으로 향하기 때문에 도심까지 이동하기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반면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면 도심과 매우 가까운 송산 공항에 내리기 때문에 도심까지 지하철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저가항공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어차피 비행시간이 2시간 조금 넘는 정도로 길지 않으니 수인이 데리고 얼마든지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인이가 엄청난 효도를 했다. 공항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며 놀더니 비행기 타서 얼마 되지 않고 곧 잠에 든 것. 일찍 일어나서 공항까지 지하철 타고 오느라 피곤했는지 이륙 후 금방 잠에 든 덕분에 우리 부부는 엄청 편하게 대만까지 이동했다.


"수인이가 왜 이렇게 효도를 할까?"

"그러게. 오늘 정말 이쁜 짓 하네."


정말 어려서 걷지도 못했던 시절에 다녀온 독일 이후로 후쿠오카, 오키나와, 하와이 등 여러 곳을 갔지만 갈수록 수인이와의 비행은 어려워졌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편하게 오다니, 고맙다 우리 딸. 이런 비행이라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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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7. 3. 18. 오전 10 47 20.jpg 이륙 후 얼마 되지 않아 예쁘게 잠을 잔 우리 딸


마지막으로 대만에 왔던 2013년 이후 3년 동안에 이곳도 참 많이 변했다. 유명 관광지들은 변함이 없었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 가지가 변했기에 시간이 흐르긴 흘렀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 대만에 오면 늘 가장 먼저 가서 대만에 온 느낌을 냈던 <하오지 단짜이멘>은 폐업했고, 타이페이 101 빌딩에는 바로 연결되는 지하철 노선이 생겼다. 이전보다 한국인들도 훨씬 많이 오기에 곳곳에 한국어 안내도 더 많아졌다. 하긴 나도 그동안에 이렇게 큰 딸이 생겼으니. 이전에는 아내와 나 이렇게 둘이서만 왔던 곳을 수인이와 함께 셋이 되어 다시 오니 왠지 모르게 감회가 새로웠다. 수인이는 이곳에서도 여전히 잘 뛰어다닌다. 날씨가 덥건 말건 어디서나 잘 뛰어다니는 우리 딸. 점점 여행 체질이 되어가는 것 같다.


점심은 먹어야겠고, 늘 가던 <하오지 단짜이멘>은 더 이상 없으니 <딘타이펑>에나 가자 하고 용캉제에 있는 본점으로 향했는데 정말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족히 1시간은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상황이었다. 과감하게 포기하고 그 근처의 <가오지>로 향해서 요리를 이것저것 엄청 시켰다. 예전의 좋았던 기억은 여전했다. 둘이서 4개의 메뉴를 배가 터지도록 엄청 먹었는데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했다. 역시 이래서 대만을 좋아한다. 밥이랑 수프는 수인이도 잘 먹었다. 아이와 함께 아시아권에 가면 좋은 점이 바로 식당이다. 어딜 가나 밥이 있기에 수인이 먹이기에도 참 편하다. 여행용 김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타이완 맥주를 곁들여서 배가 부르게 점심을 먹고 나니 비로소 대만에 다시 왔다는 기분 좋은 만족감이 들었다. 앞으로 4박 5일, 다이어트는 과감하게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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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도 시킬 겸 근처의 '다안 공원'으로 향했다. 수인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가장 최우선은 언제나처럼 공원이다.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히 큰 공원이었는데 이전에는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심지어 이전에 혼자 왔을 때 묵었던 호스텔이 다안역 근처였던 적도 있는데 그때도 지도에서 보기만 하고 가지는 않았던 곳이다. 그런데 도착해서 두 가지로 깜짝 놀랐다. 일단 토요일 오후를 즐기는 현지인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공원이 기대보다도 훨씬 좋았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무성한 나무들이 많았고, 중간에 있는 생태연못에는 새들도 많이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봄답게 곳곳에 이제 막 피어나는 연둣빛 새싹들과 꽃들도 많았다. 이런 곳을 이제야 오다니! 굳이 근교의 양명산에 안 가도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 것을 수인이 덕분에 발견하게 됐다.


수인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나중에는 지쳐서 유모차에 스스로 앉을 정도였다. 유모차에 타자고 하면 자주 격렬하게 반항하고 하던 수인이가 직접 앉을 정도면 얼마나 뛰어다닌 건지. 말도 못 하는 녀석이 뭐 그렇게 할 말은 많은지 "어, 어"하고 소리를 지르며 다녔다. 꽃을 발견하면 가리키며 소리 지르고, 새를 보고 또 소리 지르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흐뭇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했다.' 행복이 참 별거 아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과 아무 걱정 없이 여유로운 오후를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늘 보던 것과 다른 모습의 공원에서 보낼 수 있다는 것. 여행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다.


공원이 좋은 도시는 기분이 좋다. 심지어 우리 부부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런던도 공원 때문에 가끔 생각이 날 정도다. 이제 공원이 좋은 도시 목록에 타이페이도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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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7. 3. 18. 오후 3 48 41.jpg "엄마, 초록색 이건 뭔가요? 만져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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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슈퍼에서 장을 봤다. 숙소 바로 앞에 나름 큰 중규모의 슈퍼마켓이 있어서 편리했다. 대만이 특히 마음에 드는 점 중에 하나가 저렴한 물가다. 괜찮은 품질의 다양한 제품들이 한국 슈퍼마켓보다 훨씬 저렴하니 장 보는 맛이 났다. 물도 담고, 맥주도 담고, 수인이가 먹을 바나나와 과자, 우유와 치즈, 선물로 가져갈 라면, 간식으로 먹을 밤(맛밤 비슷한데 양이 몇 배는 더 많은), 이렇게 여러 개를 담았는데도 2만 원 조금 넘는다. 언제부턴가 서울의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데 대만의 물가는 처음 왔을 때보다 크게 오르지 않았다. 서울의 물가는 대체 왜 그렇게 오르는지 모르겠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는 매우 깔끔하고 만족스럽다. 침대 대신에 매트리스만 있어서 예약했는데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에어컨도 잘 된다. 수인이는 워낙 돌아다니며 자기에 침대는 늘 불안하다. 그래서 일반적인 호텔보다 이런 특이한 숙소를 선호하는 편인데 마침 넓은 방에 매트리스만 2개 있는 숙소를 운 좋게 발견해서 다행이다. 혹시 자다가 떨어져도 더 이상 걱정이 없으니까. 기분이 좋은지 기저귀만 차고 우리 딸은 매트리스 위에서 신나게 뛰었다. 뛰고, 또 뛰어도 지치지 않는 거니. 갈수록 에너자이저가 되어가니 아빠 엄마는 흐뭇하면서도 걱정이 커져만 간다.


사진 2017. 3. 18. 오후 9 03 06.jpg 이렇게 해서 2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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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벌써 여섯 번째로 오는 타이페이지만 수인이와 함께 오니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여행이 펼쳐졌다. 낮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공원에 가고, 밤에는 야시장이나 관광 명소보다 놀이터로 향했다. 특히 미끄럼틀 성애자인 우리 딸 덕분에 남들은 다 카페나 맛집에 가는 용캉제에서도 우리는 놀이터에 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수인이는 끝없이 미끄럼틀을 탔다. 손으로 센 것만 20번이 넘는데 그렇게 타고도 가자고 하니 가기 싫다며 떼를 쓰면 대체 아빠 엄마는 어쩌란 거니.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수인이는 곳곳의 미끄럼틀을 섭렵하고 목마를 이용 했다. 덕분에 타이페이가 새롭고 신선했다. 그동안 동네 곳곳의 이런 미끄럼틀을 주의 깊게 봐본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생각보다 타이페이 곳곳엔 괜찮은 상태의 놀이터들이 많아서 수인이가 놀기에 좋았다. 그럴수록 우리 부부는 피곤해졌다. 그래도 건강하게 잘 노는 걸 보면 마음은 참 흐뭇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이렇게 익숙한 곳도 새롭게 만든다. 대만 여행도 무사히 잘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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