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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했던 리티디안 비치

물놀이 삼매경

by 본격감성허세남

괌 여행 둘째 날 오전에 처음으로 북쪽의 리티디안 비치로 향했다. 호텔 조식으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입수 여부를 확인한 후, 자동차로 약 35분가량을 이동했다. 괌에 오기 전부터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동시에 길이 여기저기 움푹 파여서 자동차로 가기에 조심해야 된다는 말도 많이 들었던 곳이다. 실제로 중간에 비포장 도로가 몇 킬로미터 나오기도 하고, 도로의 포장 상태도 매우 불량해서 여기저기 널려있는 구덩이를 피해 곡예 운전을 해야만 하기도 했다. 차가 별로 없어서 다행이지. 그래도 크게 무리가 갈 정도의 길은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여기를 안 갔으면 어쩔 뻔했나. 괌이 특별히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된 것의 50% 이상은 바로 리티디안 비치 때문이다.


거의 도착했을 때쯤 전망대가 하나 있다. 잠깐 들러서 차를 대고 조금만 걸어가니 가슴이 시원 해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아빠, 엄마 빨리 오세요."


하면서 먼저 뛰어가는 수인이의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사실 여기서 봤을 때는 그냥 좋은 해변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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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리티디안 비치와 그 주변


이윽고 해변 입구 쪽 주차장에 차를 대로 이런저런 준비물을 바리바리 챙겨서 해변으로 이동했다. 조금만 걸어가면 새하얀 모래와 푸른 바다가 나오는데 본 순간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감탄 정도가 아니다. 놀라서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 거짓말 조금 보태면 엄청나게 큰 생수통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호텔 수영장을 두고 굳이 짐을 많이 챙겨서 해변에 온 귀찮음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상황. 너무너무 좋았다. 맑기로 유명한 하와이의 하나우마 베이보다도 더 맑았다. 살다 보니 이런 해변도 와 보는구나.


수인이는 바다에 빨리 들어가지 못해서 안달이 났다. 적당히 그늘을 찾아 짐을 풀고 아쿠아슈즈로 갈아 신고 가야 하는데 얼른 가자고 성화다. 그러면서도 조금 걸어가면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니 자꾸 신발을 벗고 모래를 빼려고 하는 우리 깔끔쟁이 딸.


"수인아 어차피 신발에 모래는 계속 들어가. 그냥 신고 있어. 물에 들어가면 다 씻어져."


생수처럼 맑았던 리티디안 비치의 바닷물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들어간 우리 딸은 엄청 신났다. 처음 키즈카페에 가서 점프를 팡팡 뛰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구명조끼 입으니 물에도 둥둥 뜨겠다, 날씨는 맑고 더워서 물에 들어가니 시원하겠다, 아빠가 옆에서 잡아주겠다, 눈 앞에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이 있고 그 속에 여러 물고기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겠다, 신나지 않을 수가 없긴 했다.


"와, 정말 재미있다!"

"수인아 물놀이 좋아?"

"응, 좋아."


이전과 다른 점은 이렇게 명확하게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들어가자마자 심지어 '정말' 재미있다고 하니 아빠 엄마도 덩달아 신이 났다. 물이 굉장히 얕은데도 물고기들이 많이 돌아다녔다. 매우 작은 파란 물고기, 바다 동물 백과에서 보던 노란 나비고기, 몸이 매우 긴 갈치처럼 생긴 물고기, 줄무늬 물고기 등 많은 물고기들이 돌아다니니 아직 잠수를 하지 못하는 우리 딸도 충분히 즐겁게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물고기 바위 뒤에 숨었어."

"엄마 잠수해!"


우리는 번갈아 스노클링을 하면서 즐기는 한편 나중에 수인이 보여주겠다고 고프로로 열심히 찍었는데 그 광경이 재미있는지 자꾸 잠수하라고 해서 더 즐거웠다는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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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짚고 헤엄치기란 바로 이런 것!


결국 셋째 날에도 우리는 또 리티디안 비치로 향했다. 바람이 심하거나 날씨가 안 좋거나 하면 출입을 통제하는 경우도 많다는데 우리는 날씨 요정 수인이 덕분에 이틀 연속으로 즐길 수 있었다. 오후가 되면 너무 뜨거우니까 아침을 먹고 바로 이동해서 약 2시간 정도 즐기다가 호텔로 돌아오는 코스. 적당히 체력도 소진하고 즐길 수도 있는 좋은 코스가 아니었나 싶다.


리티디안 비치는 보호구역이라고 해서 그 흔한 샤워 호스 하나조차 없다. 주차장에 마련된 간이 화장실 하나가 전부. 그래서 생수를 병에 담아 가서 대충 씻고 와야 되는 불편함도 있지만 이곳이 주는 감동에 비하면 그 정도 불편함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불편하게 만들어놓으니 사람들이 조금 덜 오고 해변이 더 깨끗하게 관리되고 하는 것일지도. 호텔로 돌아가자고 하니 안 가겠다고 떼를 쓰던 수인이 때문에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만큼 그곳이 좋았으리라. 애들은 중간이라는 것이 없으니까.


호텔로 돌아와서도 수영장에서 수영 삼매경에 빠졌다. 수영도 못하면서 물에 떠다니는 것은 어찌나 좋아하는지. 점프를 몇 번 해줬더니 계속 "점프해줘" "또, 또." 해서 점프도 또 얼마나 해줬는지. 호텔 수영장도 모자라 호텔 앞 비치에 가서도 또 수영. 이렇게 2일 내내 수영만 한 것 같다. 3박 4일이라 해도 첫째 날과 마지막 날은 사실상 이동이니까 괌에서 날이 밝을 때엔 오로지 수영만 한 셈이다. 마치 물 수(水)에 사람 인(人)을 써서 수인이인줄. 물을 좋아하는 우리 딸에게 괌은 완벽한 휴양지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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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인(水人) 입니다. 물이 좋아요.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처음부터 관광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먹고, 물놀이하고, 지겨우면 마트에 한 번 다녀오고, 가끔 쇼핑하고, 빨리 자고. 이 단순한 생활 반복이 참 즐거웠다. 중간에 수인이가 낮잠도 한 번씩 자주고 그랬다면 더 편했겠지만 그러지 않아 몸은 상당히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했던 듯싶다. 수인이와 함께 온전히 시간을 보내면 뿌듯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훈훈해진다.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진한 유대감, 이 맛에 계속해서 함께 여행을 오는 것 같다.


수인이는 괌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현지에서 구한 괌 여행 책자를 한국에까지 소중하게 들고 왔다. 처음에는 "바다책" 이러더니 이제는 "괌책" 이러는 걸 보면 어디 다녀온 지 확실히 안다. 그 기억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움만은 한켠에 오래 남기를. 고프로로 찍은 물고기 동영상과 물놀이 동영상도 계속해서 돌려보고 있다. 원래 좋아하던 <꼬모팝>, <타요의 씽씽극장>, <엄마 까투리> 보다 훨씬 더 재미있나 보다. 덕분에 아빠의 아이패드는 갑자기 우리 딸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아무렴 어떠랴. 많이 보고 오래도록 기억하렴.


우리 딸의 이 사진이 딱 이번 우리의 괌 여행을 제대로 보여준다. 티 없이 맑고 즐거웠던 기억. 다음에 수인이가 좀 더 커서 스노클링을 할 수 있게 되면 꼭 다시 와야겠다.


안녕, 괌!


와, 정말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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