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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오타루

여름 홋카이도 여행의 시작

by 본격감성허세남

여름 여행을 계획하고 나서 장소를 탐색하다가 일본의 홋카이도로 가기로 결정했다. 임산부와 어린아이, 그리고 이번엔 장모님과 장인어른까지 함께 가기로 했기에 홋카이도만큼 적절한 곳은 없을 것 같았다. 여름이지만 시원한 날씨, 렌트카 이용하기에 편리한 환경, 그리고 일본의 좋은 시스템들. 무엇보다도 여름의 홋카이도엔 라벤더가 있다! 언젠가 우연히 라벤더가 만개한 사진을 보고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실행하게 된 것.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사실상 마지막 국외여행이기에 멋지게 가고자 했고 결과적으로는 참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지난번 괌에 갈 때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수인이는 요새 떼가 엄청나게 늘었다. 최근에는 갑자기 "안돼요."라는 말을 모든 것에 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에 부정을 하고 있다. 출발하는 날도 역대급으로 떼를 쓰는 사람에 너무나도 힘들었다. 인천공항에 내려서 주차대행을 맡겼는데 그 아저씨가 아빠 차를 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아빠 차~ 안돼요. 안돼요. 아빠 차."

"나는 아빠 차에 혼자 있을 거야. 안가!"


이러면서 막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떼를 쓰는데 어찌나 힘들던지. 어렵게 어렵게 데리고 공항까지 왔는데 이번엔 식당에 가지 않겠다고 또 운다. 결국 한참 밖에서 실랑이를 하다가 식당에 들어왔지만 또 자리에 앉지 않겠다고 계속 떼쓰고, 옆 테이블에 혼자 가서 앉아있고... 사람이 많이 없었기에 다행이지 민폐를 엄청나게 끼칠 뻔했다. 출국 심사할 때는 역시나 울었고, 빨리 공항 놀이터 가자고 난리를 쳐서 공항 놀이터에서는 잘 놀았다만 그전까지 정말 역대급으로 힘들었다. 휴. 계속 이랬으면 수인이 데리고 여기저기 안 다녔을 거다. 미운 다섯 살이라더니, 정말 미운 나이다.


공항 놀이터에서는 마음껏 놀았는지 의외로 순순히 탑승구로 온 뒤에는 비행기 얼른 타자고 문도 열리지 않았는데 앞에 가서 서 있었다. 비행기가 30분가량 연착되는 바람에 자꾸 "빨리 비행기 타자." 라고 어찌나 졸라대던지. 원래 좌석 열에 따라 탑승하는데 애기가 하도 빨리 타자고 하니 승무원분이 양해를 해주셨다. 비행기 하루 이틀 탄 것도 아닌데 촌스럽게 왜 그러니. 비행기에 타서는 곧 잠에 들어서 수월하게 삿포로까지 갈 수 있었지만 최악의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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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비행기 타고 싶어서 1번으로 기다리는 중


삿포로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괜히 왔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비행시간이 2시간 30분 정도로 다른 일본 도시들보다 긴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용객에 비해 공항이 지나치게 작아서 그런지 입국 심사까지 40~50분가량 걸렸던 것 같다. 물론 짐은 이미 다 나와서 바닥에 나와 있었다. 이후가 더 문제였는데, 예약해둔 렌트카 사무소로 가기 위해 지정된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는 것이었다. 안내 직원 말로는 10분~15분 정도면 온다 그랬는데. 20분을 넘게 기다리고 나서 도저히 안 되겠어서 안내 직원에게 가서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냐 하니 자기가 전화를 다시 걸어본다 하고 해당 렌트카 사무실에 확인하더니 15분가량이 더 걸린다고 했다. 결국 렌트카를 빌리긴 했지만 공항에서 나온 뒤에 40~50분가량을 또 대기했던 듯. 다른 렌트카 사무소에서 와서 사람을 데려갈 때마다 수인이는 따라가려고 하고, 나중엔 지겨웠는지 "빨리 가자. 버스 타자." 이러면서 제촉을 하는데... 이때까지는 삿포로에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다행히 렌트카 상태는 괜찮았다. 그리고 날씨도 비가 온다던 예보와 달리 비는 오지 않았고 점점 개고 있었다. 예정보다 훨씬 늦어진 바람에 원래 첫날 하려고 계획했던 것은 하나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차를 타고 공항을 나오니 비로소 마음이 조금 풀렸다. 도로 옆으로 지나가는 홋카이도의 풍경은 평화로웠다. 도시가 드물게 있었고, 드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었으며, 나무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무성했다. 기온은 20도가 조금 안 돼서 쌀쌀했다. 예약한 숙소가 있는 오타루까지는 약 1시간 20분, 그 시간 덕분에 긴 기다림에 지친 마음이 조금 편안해질 수 있었다.


사진 2018. 7. 7. 오후 3 12 01.jpg 여기가 삿포로인가... 빨리 와라 버스야.


아침 7시 조금 넘어서 집에서 출발한 후 오타루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시간을 아끼고자 공항 편의점에서 가볍게 요기를 하긴 했지만 너무나도 지치고 배가 고파 바로 밥을 먹으러 갔다. 굉장히 작아서 바 테이블밖에 없는 'シロクマ食堂'이라는 곳이었는데 처음 밥을 먹은 이곳 덕분에 오타루에 대한 인상이 굉장히 좋아졌다. 다양한 요리를 파는 곳. 우리는 햄버거 스테이크, 크림 파스타, 게살볶음밥, 스테이크 덮밥 등 여러 요리를 주문했다. 바로 앞에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씩 정성 들여 만들다 보니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굉장히 만족스러운 맛이 보답으로 돌아왔다. 뭐랄까, 화려하지는 않지만 진정성이 있는 맛이랄까. 고정 메뉴 이외에 자주 바뀐다는 특선 메뉴를 맛보지 못해 조금 아쉬웠지만 만약에 오타루에 다시 간다고 해도 꼭 다시 갈 곳! 배가 부르니 마음이 여유로워지면서 모든 것에 관대해졌다.

(https://goo.gl/maps/uHgLiVxwYhq)


옆 자리에 앉아있던 두 사람은 우리가 들어갔을 때부터 수인이를 눈여겨보더니 "카와이"를 계속해서 말했다. 동작 하나하나에 웃어주기도 하고. 수인이가 이것저것 만지느라 잠깐 뭔가를 떨어뜨려도 웃어주고. 작은 식당일수록 함께 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우리 일행 5명과 우리에게 호의적이었던 2명, 그리고 만들고 서빙하던 2명. 이렇게 9명이 채웠던 아기자기한 그 공간과 그 시간은 아무래도 쉽게 잊히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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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제대로 맛봤던 곳


에어비앤비 사태 때문에 급하게 새로 예약한 오타루 숙소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베란다에 가면 멀리 보이는 바다에, 운하에 가까운 위치, 그리고 깔끔하고 완벽한 시설까지. 날씨 요정 수인이 덕분에 완벽한 날씨에서 맞은 둘째 날 아침은 굉장히 상쾌했다. 홋카이도의 7월 초는 최고 기온이 20도 초반 정도다. 우리나라 봄 날씨 정도. 날씨가 살짝 흐린 날은 20도가 살짝 안 돼서 긴팔을 입고 다닐 정도다. 여름이 이렇게 쾌적하니까 돌아다니기에도 스트레스가 없었다. 아내의 말대로 "제대로 피서 왔다"라고 느낄 만한 그런 날씨였다.


수인이는 숙소만 가면 신이 난다. 밖에서 노는 건 참 좋아하면서 동시에 숙소도 참 좋아하는 신기한 아이. 여행 내내 저녁에 마트에서 장을 봐서 다음날 아침을 숙소에서 해 먹었는데 덕분에 아침 시간이 조금 더 여유로웠다. 바쁘게 나갈 필요 없으니까. 우리가 외출 준비를 하고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수인이는 침대에서 빈둥거리기도 하고, 방방 뛰기도 했다.


"수인아 일본 집 좋아?"

"네! 정말 좋아요!" (와다다다 뛰어가기)


저녁에도 숙소로 들어오기 전에 마트에 들러서 이것저것 사 와서 가벼운 2차 자리를 갖기도 했다. 경상북도 분이시라 문어를 좋아하시는 장인어른 께서는 여행 내내 밤마다 문어와 함께 맥주를 드시곤 했다. 이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역시 가족여행에는 호텔보다는 에어비앤비 숙소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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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난 집이 제일 좋아요!"


예상치 않게 오타루에 숙소를 잡는 바람에 오타루 자체를 많이 둘러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오타루는 좋은 도시로 남아있다. 해진 뒤에 산책했던 오타루 운하의 고즈넉한 분위기, 셋째 날 삿포로로 떠나기 전에 둘러본 아기자기한 쇼핑 거리, 그리고 각종 간식들. '르타오'에서 사서 먹었던 홋카이도 멜론 치즈케이크는 엄청난 맛이었고, 돌아다니다가 사 먹은 오징어 간식도 참 맛있었다. 은은한 음악 소리와 함께 즐겼던 오르골 박물관도 좋았고. 비록 너무 비싸서 사 오지는 못해서 아쉽기도 했지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랑 함께 와서 좋은지 수인이는 잘 걸으려고 하지 않고 자꾸 안아달라고 했다. 두 분의 손을 잡고 점프하기도 하고. 그 모습이 참 보기 좋더라. 쇼핑을 하다가 사람이 바글바글 거리는 오징어 간식 가게에 아내와 함께 들어가신 장모님은 나와있던 이런저런 시식을 모두 다 하고 오셨는데 그 일이 특히 재미있었는지 여행 다녀온 이후에도 가끔 그 시식 이야기를 하시곤 한다. 그런 별거 아니지만 소소한 경험이 오타루를 더 좋게 만들었나 보다.


여행지가 어땠냐 보다 더 오래 남는 건 사람과의 기억이다. 시간이 지나면 오타루의 많은 것들은 잊혀서 기억도 안 나겠지만 수인이 손잡고 걸었던 거리, 시식 같은 작은 경험들은 절대 잊히지 않을 거다. 오타루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런 맛이 있는 조용한 도시였다. 걷기 좋은 도시, 소박한 도시. 그런 도시가 좋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서 완전 다르다던데 실제로 보면 어떤 모습일까? 다음에 다시 한번 오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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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는 가는 곳마다 웬만하면 가족사진을 1장씩은 꼭 찍었다. 특히 우리 5명 모두 가족사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수인이 3인 가족사진, 이렇게 2개는 꼭. 수인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바로 가까이 살면서 늘 함께 하신 두 분이니 수인이가 항상 익숙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진으로 남는 기회는 많지 않다. 기회가 있을 때 많이 찍어놔야지. 비록 기억은 못 하겠지만 나중에 수인이가 커서 사진을 보고 두 분이 수인이를 많이 안아주시고 함께 웃어주셨다는 사실을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알았지 수인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외손주. 흐뭇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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