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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여행

온천과 함께 마무리

by 본격감성허세남

여행의 후반부는 삿포로에서 마무리했다. 중간에 삿포로 근처 조잔케이 온천에 들렀다. 원래 도야 호수로 가려고 했지만 운전을 또 너무 많이 해야 하기에 삿포로에서 가까운 곳으로 급 변경했다. 조잔케이 온천은 별 기대 없이 갔는데 의외로 굉장히 좋았다. 큐슈에서 갔던 유후인이나 구로카와처럼 료칸 스타일은 아니고 주로 온천 호텔들이었는데, 현대적인 시설 속에 일본스러운 온천이 잘 갖춰져 있었다. 당일 온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실내탕, 그리고 노천 온천. 충분히 쾌적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노천탕에 여유롭게 앉아 밖을 보고 있는데 부슬부슬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지붕이 있어 비를 맞지 않는 상황. 나무가 우거진 곳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온천을 하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평화롭고 인상적이었다.


물을 좋아하는 우리 딸은 역시나 탕에서 매우 잘 놀았다고 했다. 온천을 마치고 마을을 둘러보는데 중간에 아래처럼 평화롭게 족욕을 즐길 수 있는 곳도 있고, 인공 폭포도 있었다. 그 모습이 이국적이고 좋았다. 폭포에는 정말 따뜻한 물이 떨어지고 있어 이곳이 천연 온천 마을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줬다. 수인이는 역시나 "폭포!" 하면서 좋아했음은 물론이다. 온천을 하고 나니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가끔 보면 할머니 같기도 하다.


삿포로에서 조잔케이 온천까지 차로 약 40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이렇게 좋은 온천이 있다니. 삿포로가 새삼 부러워졌다. 이번에 와서 삿포로라는 도시의 매력을 굉장히 크게 느꼈다. 여름에 20도 초중반 정도로 쾌적한 날씨고, 겨울엔 눈이 많이 온다지만 추운 건 이제 서울이 더 추울 테니까 뭐. 도시가 꽤 큰데 깔끔하면서 쾌적한 느낌이었다. 주변에 녹지도 많고. 게다가 저녁에 갔던 쇼핑몰이 너무너무너무 마음에 들었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느낌이 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 아내와 수인이와 함께 살면 좋지 않을까, 어디 돈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다음에 겨울에 꼭 다시 한번 와봐야겠다.


일본스러운 모습이라 좋았던 조잔케이 온천의 족욕장
온천을 마치고 보송보송해진 가족


삿포로 공항은 출국날에도 우리에게 최악의 경험을 선사했다. 삿포로의 유일한 단점은 공항이다. 공항이 너무 작다. 약 2시간 20분 전에 공항에 도착했지만 티켓 카운터가 2시간 전에 열어서 대기, 티켓팅을 한 뒤에 보안 검사를 받으러 대기를 약 30분, 들어가서 면세점의 과자 같은 거 하나 사려면 최소 줄 대기가 20분이라 그건 포기, 뭐라도 먹자 해서 식당에 가서 우동 및 이것저것 시켰는데 줄 서는데 15분에 음식 나오기까지 또 30분.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공항이 사람들을 수용하기가 힘든 수준이다. 특히나 성수기에는. 국제선 푸드코트는 음식도 별로였다. 그나마 그것이라도 후루룩 먹고 나니까 빠듯하게 출발 시간이 다 돼서 게이트로 급하게 이동. 다행히(?) 비행기가 연착돼서 조금 더 여유 있었을 정도니, 삿포로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만 공항만큼은 정말 최악이다.


그러고 보면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여행이었다. 일단 숙소부터 예기치 않게 다이나믹했다. 에어비앤비와 일본 정부의 다툼 때문에 숙소를 몇 번을 예약한 건지.


삿포로에 3박 예약

일본 정부에서 새로운 법을 강제하면서 곧 예약 취소될 거라는 메일을 호스트로부터 받음

출발 10일 전에 삿포로 3박 예약 자동 취소됨 (결제 취소 + 에어비앤비에서 그만큼 쿠폰 증정)

쿠폰으로 오타루에 2박 예약, 그리고 추가 금액을 내서 삿포로 1박 예약

삿포로 1박 예약이 출발 4일 전에 또 자동 취소됨 (에어비앤비에서 또 쿠폰 증정)

쿠폰으로 삿포로 새로운 집에 1박 예약


이렇게 해서 숙소가 오타루로 바뀌면서 운전 거리도 확 늘었고 출발 전까지 계속해서 호스트와 연락하고 해야 했다. 같이 가기로 하셨던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사정 때문에 마지막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상황이었고, 출국날은 비행기 연착에 도착한 공항에서도 한없는 기다림 때문에 시작하기 전부터 지쳤으니. 그래도 여행 내내 큰일이 없었고 날씨도 예상외로 좋았으니 다행인 걸까.


가장 힘들었던 건 수인이었다. 만 4세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이, 이제 말도 제법 하고 본인 생각도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 어느 여행보다도 역대급으로 떼를 써서 뒷골이 당겼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출발할 때 발렛 주차해준다고 엄청 울고, 보안 검수 때문에 울고, 밥 안 먹겠다고 혼자 다른 데 갔던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일본에서는 식당에 안 들어간다고 울고, 마트에 가서 장 봐야 하는데 혼자 가지 않겠다고 밖에 있겠다고 엄청나게 떼를 써서 아빠 엄마에게 또 혼나고, 출국날에는 역시나 공항에서 또 엄청나게 떼를 썼다. 한 번은 '돌멩이 친구'라고 돌멩이를 가지고 다니더니 그것이 떨어졌다고 울기도 했다. 이전에도 이렇게 역대급으로 떼를 썼다면 아마 지금처럼 많이 돌아다니진 않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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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이렇게나 다른 모습을 보이곤 했던 우리 딸


어쨌든 이번 여행 역시 별 탈 없이 마무리가 잘 됐다. 더위를 피해 떠나서 좋은 것도 많이 보고 온천 하면서 푹 쉬기도 했던 좋은 여행이었다. 매일 저녁에 마트에서 장을 봐서 소소하게 즐긴 파티도 좋았고. 역시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 집을 빌리면 이런 재미가 있어서 좋다. 가족여행은 집!


여행의 후반부에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해외여행 가는 것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덕분에 이번에 이뤘어. 고마워."


그 말을 듣고 나 역시 참 고마웠다. 함께 버킷리스트를 이뤄낸 것이니까. 언젠가 수인이가 크면 아빠 엄마와 함께 갔던 곳 중에 한 곳을 골라서 다시 같이 가는 걸 버킷리스트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아빠가 남겨놓은 글을 다 읽고, 그중에서 한 곳을 골라서, 이번에는 본인이 리드해서. 그럼 나는 무슨 기분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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