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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시작하고 끝내기

아이와 함께 여행하기 1부 마무리

by 본격감성허세남

2015년 5월이 생각난다. 처음으로 수인이와 함께 여행을 갔던 그때, 장소는 제주도였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수인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처음이라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다 처음 해보는 것들이었고 그러면서 우리도 조금씩 아빠 엄마가 되어간 것 같다. 다행히 제주도에서 잘 해준 수인이 덕분에 그 뒤로 독일, 대만, 홍콩, 하와이, 일본, 괌 등등 여러 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이번에 3년 만에 다시 제주도에 다녀왔다. 그리고 이번 여행이 당분간 수인이와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다. 곧 새로운 아기가 태어나고, 그 아기를 키우느라 바쁘고, 둘째가 적어도 수인이가 처음 제주도에 갔던 6개월 정도까지 크기 전에는 어려울 거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묘한 기분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나. 원래 제주도에 갈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닌데 저렴한 가격에 숙소를 얻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제주도 항공권까지 구입을 해버렸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곳, 그렇기에 제주도는 우리에게 더욱 특별한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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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그리고 2018년


일정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2박 3일, 출발 공항 역시 똑같이 김포공항. 쪽쪽이를 물고 세상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빠 엄마를 따라다니던 우리 딸은 이제 공항에서 먼저 뛰어다니는 아이가 되었다. 사실 더 힘들어지긴 했다.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수인이는 가방을 수하물로 보낼 때는 가방 간다고 엉엉 울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겠다고 또 엉엉 울었다. 세상 순하던 아이가 떼쟁이가 되었다. 언제쯤이나 저 대책 없는 떼가 사라지려나. 인천공항에서 하도 많이 놀아서 그런지 김포공항에서도 공항 놀이터에 가자고 자꾸 보채서 비행기 출발하기 전까지 또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느라 바빴다. 하필이면 비행기 연착까지 되다니. 출발하기 전부터 땀이 삐질삐질 났다. 수인이와 공항에서 함께 하는 시간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지금이 태어난 이후 가장 힘든 듯. 이 일을 당분간 안 할 테고, 그동안에 수인이도 더 커서 대책 없는 떼는 좀 사라질 테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여행은 좋지만 출발은 쉽지 않다.


이번에도 우리 날씨 요정 덕분에 날씨가 매우 쾌적했다. 갑자기 서울 날씨도 가을로 변해서 어리둥절하던 차였는데 제주도는 최고 기온이 32도 정도이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더 가을 같았다. 3년이라는 사건아 흐른 만큼 제주도의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공항에서 바로 빌릴 수 있었던 렌트카는 꼭 셔틀을 타고 나가야 빌릴 수 있게 바뀌었고, 도로에는 전기차들도 많이 보였으며, 흔히 말하는 '힙한' 곳들도 많아져서 살짝 어색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변함없이 제주도는 참 좋았다. 이번에는 제주시를 기준으로 동쪽에만 있으며 여유롭게 보냈는데 사람들로 북적거리지 않아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수인이도 많이 웃고, 우리도 많이 웃고, 경치도 경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지에서 함께 한 시간이 참 좋았는데, 당분간 이 시간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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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기 전날부터 수인이의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찬물로 물놀이를 해서 그런가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전날 하루 종일 열이 오르고 내려서 취소를 해야 하나 하고 마지막까지 고민을 참 많이 했더랬다. 그렇지만 어차피 국내라 문제가 생겨도 대응이 좀 쉬울 거고, 집에 있어봤자 티비 보고 그럴 테니 기왕에 예약한 거 가자 하고 나섰는데 제주도에서의 둘째 날 오전까지만 해도 수인이의 상태가 계속 좋지 않았다. 바다라든지, 까투리 버스라든지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이 나오면 잠깐 생기가 돌긴 했는데 그 외에는 뭔가 힘도 없고 그래서 여행 와서도 해열제를 주기적으로 먹이며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둘째 날 오후에 정방폭포를 가서부터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인이는 어렸을 때부터 폭포를 참 좋아한다. 정말 어렸을 때는 "어 어 어" 하면서 괴성으로 감탄을 하더니, 지금은 그렇게 감탄을 하지는 않지만 눈을 떼지 못하고 보면서 좋아한다. 정방폭포에 도착해서는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떼를 쓰던 수인이는 어떻게 꼬셔서 내리게 한 후 폭포를 보여줬더니 나중에는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폭포 보다가, 엄청 찬 물에 발도 담가봤다가, 바위에 앉아 주변에 널려있는 조약돌을 계속해서 던지는 놀이를 하며 한참을 보냈다. 무슨 야구 선발투수도 아니고 조약돌만 거의 200개를 던진 듯. 그래 놓고 나중에 가자고 하니 엄청 울어서 결국 힘들게 안고 많은 계단을 올라와야만 했다. 도무지 중간이 없어 아빠 엄마를 자주 난감하게 만드는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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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200개도 너끈히 던지는 미래의 선발 투수?


신기했던 건 그 이후였다. 정방폭포를 나와서 숙소가 있는 성산 쪽으로 돌아가는 길에 표선 해수욕장에 잠깐 들렀다. 원래 계획은 모래놀이하며 바다를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영복도 안 챙겼고, 수건도 챙기지 않았다. 하지만 곧 그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우리 수인이에게는.


"얼른 주차해. 바다 가자."

"엄마 얼른 와요!"


웬일로 주차장에서부터 아빠를 보채던 수인이. 이윽고 바다에 가서는 물 만난 고기처럼 놀기 시작했다. 처음엔 엄마 손을 잡고 다리가 잠길 정도 까지만 들어가더니, 곧 당연하다는 듯이 온몸을 적시고 머리까지 적시며 놀기 시작했다. 물에서 놀다가, 해변으로 와서 모래놀이하다가, 또 물에서 놀다가. 무한 반복. 그러면서 어찌나 깔끔하신지 "나 다리 좀 씻고 올게." 하면서 바다로 들어가서 모래를 털어내기도 하고. 씻으면 뭐하나 돌아올 때 다시 모래가 묻는데. 그래도 그 모습이 참 귀엽더라. 대책 없이 젖는 옷을 보며 멘붕이 오기도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그저 흐뭇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건은 즉석에서 구입했고, 온수도 나오지 않는 샤워시설을 돈 주고 써서 씻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생기도 별로 없고 콧물도 나오고 하던 수인이가 갑자기 바다에 다녀오더니 완치가 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열도 없고, 킁킁거리던 콧물도 사라지고. 무슨 일인지 우리 부부 모두 어리둥절. 우리가 장난처럼 수인이 물 수(水)에 사람 인(人)이라고 하는데, 태명이 돌고래였는데, 그래서 그런가 바다에 다녀오니 앓던 병도 나아버린 신기한 우리 딸. 어찌 됐든 다행이긴 했다. 그 뒤론 아주 활발하게 잘 놀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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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만난 전직 돌고래 유수인 양


참 많이 컸다. 어려서 아무것도 못 하던 아이가 이제 이렇게 혼자서 뭐든 할 수 있는 아이가 됐으니, 지금도 수인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끔씩 신기하다. 3년 전 제주도를 시작으로 여기저기 열심히 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우리 수인이 덕분이다. 늘 건강하게 잘 다녀줬고, 어딜 가든 아빠 엄마를 잘 따라와 준 덕분이다. 솔직히 순간순간 힘들었던 적이나 화가 난 적도 많았지만 그 모든 것을 쉽게 잊게 만들 정도로 사랑스러운 우리 딸 덕분에 지난 3년 동안 나와 아내는 정말 행복했다. 고마워. 나중에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꼭 읽어주렴. 지난 모든 글들은 오로지 너를 위해 쓴 것이니까.


첫 번째 제주도 여행을 끝내고 이런 글을 썼었다.


여행이 좋은 건 늘 마주하는 일상의 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여행을 가면 그 시간이 대부분 여행지에 할애되지만 가족과 함께 가니 가족에게 대부분이 할애되었다. 특히 우리 딸에게. 제주도에서 특별히 무언가를 많이 한 건 없다. 모두 다 가본 곳들이었고, 특별한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순간순간이 소중했고 행복했다. 이렇게 모든 시간을 아내와 수인이와 함께 보내본 것이 얼마만인지. 출산 초기에는 너무나도 정신이 없었으니 그 이후로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웃는 수인이의 모습을 보면 나도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도 이제 완전히 아빠가 됐나 보다.


저 느낌이 무척이나 좋아서 지금까지 다닐 수 있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곧 태어날 둘째도 과연 수인이처럼 잘 따라다녀줄까?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이런저런 사정이 많이 생기더라도 더 많은 시간을 내보려고 노력할 거다. 둘째도 더 분발해야겠지. 태어나기 전부터 큰 과제를 안고 태어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느낀다. 돈보다 시간이 훨씬 더 비싸고 가지기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도 시간 여유가 될 때마다 더 열심히 가족 모두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꼭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제주도에서 시작해서 제주도에서 마무리된 우리 가족의 여행기 1부. 2부에서는 더 다채롭고 풍요로운 이야기들이 많기를, 1부에서처럼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둘째의 임무가 막중하다. 힘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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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시작해 많은 곳을 다닌 후 다시 제주도로 돌아와 1부를 끝낸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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