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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함께 하기 좋은 곳

괌에서의 휴양

by 본격감성허세남

TV를 보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주도보다 더 많이 가족여행으로 가는 곳이 괌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수인이를 가지기도 전인 2014년 초에 사이판 가는 비행기에도 애들 울음소리가 가득했었다. 마침 집에만 있기 갑갑했던 찰나, 우리 가족도 남들 다 간다는 괌에 가기로 급 결정했다. 한 달 정도 남은 상황에서 갑작스레 결정했고 당일엔 엄청 서둘러서 출발했다. 여행사의 에어텔 패키지로 했더니 출발하기 3시간 30분 전에 공항에 오라니... 집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엄청 일찍 출발한 덕분에 괌까지의 비행시간이 매우 편리하기는 했다. 수인이도 이제 아는지 집에서 인천공항까지 가는 1시간가량의 이동에도 전혀 자지 않고, 공항에 와서는 왜 빨리 안 가냐며


"비행기, 비행기 타자."


이 말을 계속해서 했다. 말이 늦어서 답답했던 우리 딸은 말을 시작하자마자 급격하게 늘고 있다. 지난 설 연휴 일본 여행 때는 간단한 단어만 말하는 수준이었는데 불과 3개월 만에 본인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가끔씩 얘가 이런 말을 어떻게 하지 하고 생각할 만한 고급 어휘들과 문장들도 구사한다. 전에는 그저 따라다니기만 했던 수인이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게 되니 이제야 비로소 소통이 되기 시작한다. 여전히 짐을 부칠 때는 "내 가방. 내 가방이야 ㅠㅠ" 하면서 엄청 울기는 하지만. 이건 아무리 말해줘도 받아들이기 싫은가 보다.


우리 가족의 인천공항에서의 일정은 늘 같다. 면세점은 아예 관심도 없고, 무조건 놀이터다. 일단 출국 심사를 마치고 나면 바로 놀이터로 향해서 출발할 때까지 논다. 인천공항에는 놀이터가 여기저기 많아서 골라서 갈 수 있어서 좋고, 꽤나 괜찮은 미끄럼틀도 있어서 더 좋다. 한참 놀다가 비행기 타러 가자고 하면 수인이의 울음이 시작된다. 안 간다고, 아까는 비행기 타러 가자고 하더니...


"수인아 마지막으로 2번만 더 타자."


이렇게 설득하면 결국 듣기는 한다. "마지막!" 이러면서 타기도 하고. 이제 설득이 통하는 아이다. 비행기에 탄 수인이는 거의 이륙하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괌까지는 약 4시간. 그중에 2시간 30분가량을 푹 잤다. 새로 산 귀마개 덕분에 더 잘 잤나. 역시 우리 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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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31_101722.jpg 비행기에서 꿀잠을 자며 효도를 한 수인이


괌은 내리자마자 기온이 확연하게 달랐다. 더운 날씨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신기하게도 여행 오면 이런 날씨조차 즐겁다. 수인이도 신났는지 내려서부터 신나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스튜어디스 언니들에게 "안녕히 계세요." 하고 인사도 잘 하고. 입국 심사할 때도 인사를 해서 담당자를 웃게 만들었던 수인이는 괌 여행 내내 조잘조잘 말이 많았다. 호텔에서는 보는 사람마다 이런 말을 하며 사람들을 웃게 만들더니,


"인이에요. 엄마에요. 아빠에요." -> (수인이에요. 우리 엄마고 아빠에요)

"책이에요." -> (내가 좋아하는 책이에요)


심지어 외국인들을 보면 갑자기 ABCD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땡큐라고 알려주니 땡큐도 잘 했다.


"에비씨디이에프쥐 에취아제케엘엠엔오피"

"때큐" -> (땡큐)


그럴 때면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Smart!" 같은 감탄사를 연발하거나 같이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역시 아이랑 같이 다니면 이런 게 재밌다. 사람들이 모두 관대해지고, 즐거워진다. 전에는 보며 "Cute" 정도 말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함께 즐겨주니 분위기도 더 좋아진다. 수인이가 말을 하니까 새로운 재미가 생겨서 참 좋다.


조금 다녀보니 괌이 왜 인기가 많은지 금방 알겠다. 공항과 호텔이 매우 가깝고, 렌트카는 정말 저렴하고, 공항에서 바로 렌트카 픽업도 가능하니까 편리하고, 더운 날씨에 차도 많이 없고, 먹거리나 쇼핑도 적절히 갖춰져 있다. 확실히 근처의 사이판보다는 괌이 더 좋았다. 조금 더 도시랄까, 조금 더 세련됐달까. 사이판은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는 않았었는데, 괌은 다시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하고 여유로운 딱 휴양지. 전에는 휴양지가 별로라는 생각이 많았는데 이렇게 편안하게 즐기는 여행에 새롭게 재미를 느껴가고 있다.


물론 우리 딸이 잘 협조한 덕분이다.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자주니 얼마나 예쁜지. 요즘은 퍼즐, 특히 <엄마 까투리> 퍼즐에 꽂혀있는 덕분에 식당에 가서도 전처럼 태블릿 많이 보지 않아서 더 기특한 우리 딸. 처음에 잘 못하던 퍼즐을 척척 해나가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애들의 학습 능력이란. 어느새 이렇게 많이 컸니. 한국에서의 일상보다 여행을 떠나오니 그걸 더 크게 느끼게 된다. 아무래도 이전 여행의 기억들과 비교를 하게 되니까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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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든 엄마 까투리 퍼즐에 집중합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특히 호텔이 마음에 들었다. 이례적으로 좀 좋은 호텔 가보자 하고 롯데호텔을 예약했더니 여기저기 한국어로 안내도 잘 되어있고, 여행사 패키지에 포함이 된 건지 이런저런 혜택도 많았다. 치맥에, 조식 뷔페에, 중식 뷔페에, 라운지에 등등. 우리 부부는 호텔을 '돈의 맛'이라고 하곤 하는데 이번에 그 돈의 맛을 제대로 봤다. 방도 침실과 거실이 분리된 스위트룸 형태라 크고, 침대도 편하고 하니 돈의 맛을 제대로 보며 푹 쉬었던 3박 4일. 자주는 어렵지만 가끔씩 과감하게 좋은 호텔에서 묵어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인 것 같다.


특히 수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실 처음엔 수영장에 미끄럼틀도 없고, 수인이가 놀만한 것이 있을까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며 얼마나 잘 놀던지. 특히 자쿠지의 따뜻한 물을 좋아해서 그리로 자꾸 가자고 했다. 아빠 엄마는 더운데, 수영장에 있고 싶은데.


"따뜻한 물 가자."

"또? 으이구 이 할머니야!"

"으이구 이 한냐니야 (우헤헤헤)"


그 말을 또 따라 하던 우리 딸. 덕분에 한참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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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수영장에서 우리 가족. 특히 수인이가 좋아했다
괌의 대표 비치 중 하나인 투몬 비치


의외로 굉장히 좋았던 곳이 셋째 날 갔던 해변의 카바나였다. 2시간 무료 이용권이 있어서 수영장 카바나 대신 해변을 선택했었는데, 뜨거운 해변을 보며 시원한 카바나에 앉아서 쉬면서 이것저것 먹는 맛이 상당히 상쾌했다. 수인이가 꽂혀있는 양파링 과자가 괌에도 수출이 되어 있길래 사서 먹는데 이제는 제법 장난도 칠 줄 안다. 엄마가 양파링으로 코걸이를 만들어서 코에 거니까 자기는 아예 콧구멍 속으로 넣고 좋아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참 낄낄대다가 문득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런 평화롭고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고마워 우리 가족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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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국에 <토니 로마스>가 있을 때에 우리 부부는 유독 그곳에 자주 갔었다. 연애할 때부터, 결혼 전에 예비 처남에게 밥을 사줄 때도, 12월 31일에 기념으로 밥을 먹을 때도. 늘 장소는 토니 로마스였다. 점포가 하나둘씩 사라질 때도 일부러 남아있는 점포를 찾아서 가고 그랬는데,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서 아쉬운 곳이기도 하다. 괌에는 이런 토니 로마스가 있어 정말 반가웠다. 뻔한 패밀리 레스토랑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추억이 있는 소중한 브랜드.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첫째 날 저녁으로 가장 먼저 간 곳이 토니 로마스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리지널 립을 시키고, 다른 하나로는 새우튀김 요리를 시켰다. 이곳의 립은 늘 맛있다. 다른 데도 립을 파는 곳은 많지만 유독 이곳의 립이 우리에게 더 맞는 건 이전의 추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만 아무튼 이번에도 굉장히 잘 먹었다. 운전 때문에 맥주를 먹지 못한 건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살짝 흠이라면 사이드로 시킨 볶음밥이 별로였다는 점? 왜 볶음밥에서 쓴 맛이 났을까. 아내는 바닷물로 밥을 한 것 같다고 하던데. 그냥 밥에서는 그런 맛이 나지 않는 걸 보면 볶음밥을 잘못 볶은 듯. 그런 사소한 흠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오키나와에서도, 호놀룰루에서도, 괌에서도, 토니 로마스가 있으면 언제나 간다. 그래서 여행지에 토니 로마스가 있으면 그곳은 조금 더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괌 역시 그랬다. 이런 사소한 즐거움도 있는 곳, 괌은 참 기분 좋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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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로마스의 오리지널 립과 새우 튀김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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