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진 Sep 04. 2022

푸른 바다의 하이난

아로하를 듣게 하는 추억의 장소

리조트에서 바라본 하이난의 바다


프로축구팀들은 매년 1~2월에 동계 전지훈련을 한다. 국내 날씨가 이때 너무 춥기에 따뜻한 날씨 속에서 운동을 할 수 있는 해외로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국내에서 이 시기에 동계 전지훈련을 하는 프로축구팀은 거의 보지 못했다.


1~2월은 축구를 담당하는 기자들에게도 해외 출장이 몰리는 시기다. 전지훈련 취재를 위한 해외 출국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부터 동남아, 유럽, 미국, 브라질 등 떠나는 곳도 각양각색이다.


2009년 2월에 난 중국 하이난섬을 찾았다. 중국의 하와이라 불리는 곳으로 지역의 위상은 우리나라의 제주도, 일본의 오키나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휴양지인 이곳은 취재를 위해 찾은 것이다. 그 취재 대상은 경남FC였다.


경남FC는 내 첫 담당 팀이었다. 2006년에 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 ‘쌀딩크’ 박항서 감독이 초대 감독으로 부임한 신생팀 경남FC가 내 담당 팀이었다. 그러나 후반기에 전북현대모터스 취재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담당 팀도 경남FC에서 전북현대모터스로 변경됐다. 전북현대모터스를 담당하면서도 가끔 경남FC 경기 취재를 했다. 그러나 담당 기자가 아닌데도 전지훈련 취재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갑자기 결정된 취재였기에 비자 발급은 급한 대로 관광비자인 L비자를 받아 가기로 했다. 취재 일정을 동행하기로 한 마산MBC의 아나운서, PD와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나 2시간여의 비행을 한 뒤 이른 새벽에 도착했다.

하이난은 당시에는 개발 붐이 일어날 때였다. 그래서 외국인 관광객보다는 내국인이 더 많이 찾는 곳이었다. 하지만 골프 여행으로는 유명했는지 하이난으로 가는 비행기에 탄 대부분 사람은 저렴하게 골프를 즐기려는 사람들이었다. (체류 일정까지 비슷했는지 골프 여행객들과 귀국 비행기에서 다시 마주쳤다)


제주도와 느낌이 비슷하다


사실 전지훈련 취재라는 것이 단조롭다. 매일 오전, 오후에 선수단 훈련이나 연습 경기를 보고 감독, 코치, 구단 관계자의 평을 듣는다. 그리고 매일 선수들과 인터뷰를 진행한다. 어떻게 보면 매일 새로운 기사를 만들기 위한 창작의 고통을 보내는 시간이다.



그래서 이렇게 식사 모습을 스케치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기사도 만든다. 하루는 식사 시간에 특식으로 라면이 나왔다. 선수들은 몸 관리 때문에 라면은 되도록 먹지 않는다. 식당에 비치된 라면은 대량으로 준비해야 했기에 면을 따로 삶아 국물에 말아 먹는 식이었다. 선수들은 오랜만에 먹는 라면에 기분이 좋은 듯 웃으면서 먹는 모습을 본 기억도 떠오른다.


전지훈련 취재는 선수단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같은 숙소에서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생활하기에 선수들이 처음에는 낯설어해도 시간이 지나면 먼저 인사를 건네며 가까워진다.


하이난에 갔을 때 가까워진 선수는 현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인 레전드 김병지였다. 당시 김병지는 K리그 최초의 500경기 출전을 목표로 경남FC에서 땀을 흘리던 중이었다. 그전부터 서로 얼굴을 알고 인사를 했지만, 이때를 계기로 연락도 자주 하며 조금씩 교류했다.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서로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있다.



김병지는 이 시즌에 등번호를 29번으로 달고 뛰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규정상 3자리 숫자 등번호는 불가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김병지의 등번호 500번은 시즌 마지막 정규리그 경기에 허용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김병지의 500번째 경기였던 2009년 11월 1일 전북현대모터스와의 경기만 등번호 500번을 허용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400경기, 500경기 등 기념비적인 경기를 뛰는 레전드 선수들은 해당 경기만 등번호를 바꿔 달 수 있게 했다. 김병지의 500경기가 바꿔 놓은 풍경이다. (언급한 대로 담당 기자가 아니기에 전지훈련 이후에 경남FC 기사는 거의 쓰지 않아 선배 동료의 기사를 걸어본다)



반복된 일정이지만 그래도 하이난의 좋은 점은 바다였다. 리조트식 호텔의 테라스에 서면 바로 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푸른 빛에 내 눈이 시릴 정도였다. 테라스에 앉아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독을 풀고 리프레시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굉장히 큰 호텔이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훈련장까지는 차로 10분 정도만 가면 되는데 걸어서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었다. 전지훈련을 진행하던 에이전트사와는 하이난에서 처음 인사를 했는데 며칠 같이 지내는 동안 친분을 쌓았고 훈련 시간이 되면 미리 걸어서 이동했다. 백사장을 따라 걸어가면 훈련장이 나오는데 이 걸어가는 길도 산책으로 제격이었다. 훈련장에 먼저 도착해서는 같이 가볍게 운동하며 선수단의 도착을 기다리기도 했다.


해안을 따라 걸으면 훈련장이 나왔다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무언가를 하나 사려면 차를 타고 몇십분을 가야 상점이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호텔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답답할 수도 있지만 그 답답함은 테라스에 나오면 바로 풀어졌다.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푸른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 몸은 상쾌해졌다.


그래서 귀국 후 너무 잊지 못해 (지금까지)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CBS의 ‘꿈과 음악 사이’에 사연을 보냈다. 하이난의 바다를 잊을 수 없어서 쿨의 아로하를 신청한다고. 당시는 스마트폰이 없었기에 사연은 문자 아니면 홈페이지에 접속해야 남길 수 있었다. 방송 시작 후 사연을 남겼는데 1시간 정도 지난 뒤에 내 사연 소개와 함께 아로하가 들렸다. 



그리고 몇 분 뒤 내가 하이난을 다녀온 것을 아는 지인으로부터 문자가 하나 왔다.


“지금 꿈음 들었는데 아로하 신청하셨죠?”
이전 12화 중국이 고대 축구의 발상지였다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