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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고마워요

극한직업 : 중환자실 간호사

by 구름


일반병동으로 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욱더 중환자실이 참기 어려워졌다.


일반병동으로 이동하는 날 아침부터, 병실에 들어오는 간호사마다 오늘 내가 일반병동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축하해 줬다. 이 즈음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을 조금씩 하게 된 나는 새벽부터 만나는 사람들에게 계속 언제쯤 이동하는지 묻고 싶었다.


“언제?”


“몇 시?”


간신히 내뱉는 짤막한 단어들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내 말을 알아들은 간호사들은 일반 병실이 비어야 갈 수 있어서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오전 중에 이동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침대 맞은편 벽에 붙어 있는 시계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오전이 지나갔다.

하지만, 오전이 거의 끝나가는데도 여전히 이동할 낌새가 보이지 않아 또다시 내 마음속의 조급증이 도졌다.


중환자실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나는 진상 환자처럼 끊임없이 불편함을 호소했다. 콧줄 때문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고, 숨을 도저히 쉴 수 없을 것 같아 소리 지르고 고개를 들어 울었다. 간호사가 달려 들어와 어디가 불편한지 물었고, 나는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했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제대로 의사 전달이 되었다.) 간호사는 수치를 보더니, 지금 산소포화도도 좋고 콧줄 때문에 숨을 쉬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고 내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알려주며 입을 닫고 숨을 쉬면 호흡이 될 거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했더니 거짓말처럼 정말로 숨이 쉬어지면서 다시 안정을 찾게 되었다. 간호사의 조언 한 마디에 순식간에 숨을 쉴 수 있게 되고 나니,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그동안 콧줄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니 어이없기도 했고, 중환자실 간호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 중환자실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나를 수시로 돌봐주는 간호사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컸었는데, 중환자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섬망 증상과 함께 사지마비로 인한 불편함이 가중되어 그 화가 간호사들에게 돌아가게 된 것 같아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겪은 일이 떠오르며, 미안함, 죄책감, 부끄러움이 뒤섞여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며칠 전 멍하니 누워있다가 갑자기 아랫배가 사르르 하니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은 갑자기 극심해졌다. 처음에는 그냥 가스가 찬 기분이었는데, 나중에는 배가 찌르듯이 아프면서 배설 욕구가 들기 시작했다. 소변은 소변줄을 끼워 놓아 욕구가 들기 전에 빠져나가기 때문에, 갑자기 찾아온 배설 욕구는 정말 곤혹스럽고 당황스러웠다. 몸은 마비되었지만 의식은 멀쩡해졌던 나는 나름대로 참아보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기저귀에 대변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에도 배는 정말로 아팠고, 팔다리가 묶여버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뒤틀며 고통스러워하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수치스러움까지 찾아와 결국 나는 엉엉 울며 대변을 보는 환자가 되었다. 내가 너무 울고 몸을 뒤틀어 기계에서 또 “삐”하고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여자 간호사가 들어와 내 상태를 살피고 모로 누워 울고 있는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왜 울어요? 아파요? 배가 아픈 거예요?”


나는 우느라 차마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간호사는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해줬다.


“지난 일주일간 누워만 있었잖아요. 대변을 보지 못해 관장약을 넣었어요. 그러니까 지금 배가 아프고 대변을 보는 게 당연해요. 괜찮아요. 다 내보내세요, 정말 괜찮아요.”


그 괜찮다는 한 마디가 얼마나 듣고 싶었던지, 한참을 더 울고 나서야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타인인 환자를 돌보아주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중환자실 간호사는 내가 미처 몰랐던 극한직업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중환자실 입원 마지막 날에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간호사들에게 진상을 부렸고, 그들은 얼마나 큰 인내심과 직업 정신으로 나를 돌보아 주었는지 말이다.


일반병동으로 입원하고 재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주치의 회진 시간에 계속 마주쳤던 간호사에게 간신히 감사의 말을 전할 수 있었다.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죄송하고 감사했어요.”


“아니에요, 환자분이 이렇게 빨리 좋아지셔서 제가 다 기뻐요. 얼른 더 좋아져서 퇴원하셔야죠.”


미안하다는 나의 말에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고 나의 재활 경과가 좋은 걸 보고 함께 물개 박수를 쳐주던 간호사의 웃는 얼굴은, 앞으로 내가 평생 기억하게 될 "선한 사람"의 표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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