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일반병동으로 이동하는 날 오전, 간신히 고개를 들어 계속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11시 30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난 중환자실이었다. 그리고 간호사들이 더는 일반병동 이동에 대한 아무런 얘기도 해주지 않았다. 난 이제, 내 병실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들어도 몹시 어눌한 말투로 묻기 시작했다.
“저… 언제… 옮겨요?”
“일반병실이 준비되었다는 연락이 와야 해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오후 1시 즈음이 되자 병실 안팎으로 뭔가 분주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내 병실에 들어온 간호사들끼리 얘기하는 것이 들렸다. 내가 입원할 병동이 너무 바쁜 나머지,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시 40분 이후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척하며 내색하지는 못했지만 속으로는 좌절했다.
‘아침에 그 난리를 피워가며 겨우 먹은 유동식을 또다시 중환자실에서 콧줄로 먹고 이동해야 한다니…’
그러던 중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보호자가 밖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으니 일단 옮겨서 점심을 먹자는 얘기가 들렸다. 나는 이번에도 가만히 있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신이 나서 쾌재를 불렀다.
‘야호!’
이동하는 시각이 결정되자, 중환자실의 선임 간호사분이 내 옆에 딱 붙어서 나를 챙겨주었다.
“환자분, 일반병동으로 가요 이제 ~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요.”
그러더니 며칠 째 감지 못해 헝클어진 채로 굳어버린 내 머리카락과 아침에 교체한 주사로 인해 퉁퉁 부어버린 내 오른팔을 보고는, 담당 간호사를 불러 크게 나무랐다. 내가 보호자라면 이런 상태로 환자가 나오면 정말 화가 날 것 같다며, 주사도 제대로 다시 놓고 머리도 다시 묶으라고 지시했다. 선임 간호사의 단호한 지시 한 마디에 간호사들은 다시 내 상태를 정비해주었다. 그리고는 중환자실 2번 병실 앞 복도로 내 침대를 옮겨 일반병동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내가 제대로 눈을 뜰 수 있게 된 이후 처음으로 2번 병실 밖으로 나와본 것이었다. 이전에 남편이 면회 왔을 때 알려주기로는 일반병동으로 옮기면 엄마가 24시간 상주하며 간호를 해준다고 했다.
‘밖에 엄마랑 남편이 와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중환자실 복도에 누운 채 멍하니 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상황이 실감 나지 않았다. 하얗고 하얀 중환자실을 이제 나가는구나, 하는 해방감과 행복감이 이어 찾아왔다. 그리고 그동안 괴로웠던 중환자실에서의 시간들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수일간 꿈을 꾸면서도, 중환자실을 나가기 직전인 이 순간에도, 나는 이 기억들을 기록해놓고 싶어 최대한 꾹꾹 눌러 그 순간들을 느끼고자 했다.
무심코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1번 병실이 있었다. 내가 있었던 2번 병실은 유리벽 너머로 간호사들의 사무공간이 보였던 것과는 달리, 1번 병실은 유리벽 너머가 하얀 문으로 막혀있어 아마 안에서는 그냥 흰 문과 벽만 보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있었던 병실도 1번 병실처럼 아예 하얀색으로 막혀있었다면, 나는 오히려 덜 괴로웠을까? 아니면 더욱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을까?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이제 나간다며 이송 직원 분이 오셔서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검사 때문에 여러 번 왔다갔다한 중환자실 문이었는데, 매번 난 눈을 뜨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비로소 처음으로 이 문이 열리는 것을 제대로 본 것 같았다. 그렇게 영원 같았던 중환자실의 생활이 끝나고, 드디어 하얀 방 밖으로 나가는 순간이었다.
문이 열리자, 남편, 아빠, 엄마의 얼굴이 차례로 보이고 목소리가 들렸다. 참을 새도 없이 내 입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마스크 뒤로 일그러지는 내 얼굴과 흐르는 눈물이 느껴졌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중환자실에서도 나이 있는 간호사의 목소리나, 엘리베이터에서 엄마와 비슷한 목소리륻 들었을 때 엄마가 생각나면서 울컥 눈물이 나곤 했다. 그때까진 잊고 있었던 기억이었는데, 진짜 엄마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니 울음이 터진 것이었다. 남편과 엄마는 내가 울음을 터뜨릴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곧바로 나를 다독여주었다.
"울지 마, 이제 다 괜찮을 거야. 엄마가 왔잖아."
"이제 일반병동으로 가서 잘 회복만 하면 돼."
3층 중환자실에서 14층 1인실 일반병동으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격해진 감정을 조금 진정하고 나서 보니 우리가 탄 엘리베이터가 몹시 조용하게 느껴졌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아빠, 엄마, 남편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남편은 그 조용한 적막이 어색했는지, 이송직원에게 실없는 농담을 건네고 있었다. 여전히 우리 남편인 것 같아 내심 다행이었다.
14층에 도착해 우리가 병동으로 우르르 들어가자, 간호사가 황급히 나와 1인실 병동은 간병할 사람 1인만 입장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아빠랑 남편이 서둘러 인사만 하겠다고 말하고 나와 인사를 했다. 남편과 아빠 손을 한 번씩 잡고 눈빛으로 ‘괜찮아’ 하고 말했다. 아빠와 남편이 떠나고, 이송요원과 간호사가 내 팔과 다리를 번쩍 들어서 병동 침대로 옮겨주었다.
아주 넓고 쾌적하고 조용한 1인실에 엄마와 나, 둘이 남았다. 중환자실을 나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난 들떴고 행복했다.
이제부터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