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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재활'의 세계로 들어가며

by 구름


일반병동으로 이동하고 다음 날, 주치의 회진 때가 되어서야 나는 주치의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목소리로만 듣던 얼굴을 보니 새삼 낯선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얼굴과 익숙한 목소리를 매치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찰나에, 주치의는 바로 재활을 들어가도 되겠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재활’ 얘기에, 덜컥 겁이 났다.


‘이제 겨우 중환자실에서 나와서 누워만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재활을 한단 말이지?’


상주 간병인으로 24시간 나와 붙어 있는 엄마는 갑자기 사명감에 사로잡힌 듯, 재활을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죽을 각오로 해야 한다며 나에게 다짐을 받아냈다. 모든 것이 어리둥절했던 나는 엄마와 의료진 앞에서 그러마 하고 다짐했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막막했다.


중환자실 안에서는 나 스스로와의 싸움이었는데, 일반병동으로 이동한 이후로는 갑자기 갇혀있던 세계가 확 넓어진 것 같았다. 불과 3주 만에 어느 하얀 방에 갇혀있다가 나온 실험체가 된 기분이었달까. 그리고 재활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는, 신생아로 새롭게 다시 태어나 길러지는 기분이었다.


내 진단명이 어느 정도 확정된 것은 일반병동으로 이동한 이후부터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자가면역뇌염’ 일 수도 있고 ‘길랑바레증후군’ 일 수도 있다고 했다. 두 단어 모두 너무 생소한 나머지, 며칠 동안 엄마에게 아까 주치의가 말한 병명이 무어냐고 재차 물었다. 내 병명이 자가면역뇌염으로 추정된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이로부터 거의 1달이 지난 후였다.


나는 자가면역뇌염(추정) 환자가 되어, 대학병원 일반병동에 입원하여 재활치료를 받고, 그 이후 2개월 더 재활병원에 입원해서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았다.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했다. 자가면역뇌염의 3분의 1은 중증 장애를 갖게 되고, 3분의 1은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갖는 정도의 장애를 갖게 되고, 나머지 3분의 1만이 온전히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마지막 3분의 1에 해당될 정도로 회복을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에게 ‘왜’ 이 병이 찾아온 것인지, 과거의 나는 ‘어떻게’ 했어야 하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이 병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당연하게도 중환자실에서는 즐거운 기억보다는 괴로운 기억이 훨씬 많았지만, 일반병동과 재활병원에서는 조금씩이나마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2024년 3월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봄이 찾아오고 있었고, 따뜻한 봄 기운과 함께 재활이 시작되었다.




(일반병동과 재활병원에서의 이야기는 브런치북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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