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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일반실로, 그런데..

TV도 스스로 끌 수 없는걸요?

by 구름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주치의 회진시간, 여느 때와 같이 눈을 떠보라, 손가락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여보라, 손발을 들어보라 지시하던 주치의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갑자기 활력 넘치는 목소리로 바뀌더니, 반가운 말이 흘러나왔다.


“이제 일반병동으로 가도 되겠어요.”


지긋지긋한 이 하얀색 중환자실에서 탈출이라니! 겉으로 표현할 순 없었지만 정말 기뻤다. 언제쯤 일반실로 가는지 정말 궁금했고 기다려졌다.


그러더니 신기하게도 월요일, 화요일은 꿈도 거의 꾸지 않고 맨 정신으로 지내게 되었다. 여전히 두 팔은 침대에 묶여 있었고, 두 다리는 조금 들어 올리는 정도로 간신히 움직일 수 있었으며, 몸은 수시로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했다. 유동식을 먹는 콧줄은 여전히 죽을 만큼 불편했다.


그리고 이때 즈음 알게 되었다. 정해진 시간에 내 오른팔을 통해 진정제가 투여되는구나. 오른팔에 혈압계로 혈압 재듯이 묵직한 느낌이 들고 나면 진정제가 투여되고, 그러고 나면 난 졸리고 편안해지는구나. 이렇게 24시간 정신이 깨어 묶인 채로 버티는 것보다는 진정제를 통해 한숨 자고 일어나는 게 훨씬 낫구나.


수요일에 일반실로 가게 된다는 걸 나는 어떻게 알았을까.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아마도 남편이 면회를 와서 알려줬을 것이다.


어쩐지 화요일 낮은 마음이 참 편했던 것 같다. 화요일에는 진정제에 취해 내가 자꾸 자려고 하니까, 이제는 간호사들이 날 깨우기 시작했다. 내가 일반실로 가게 되는 것이 확정된 후부터, 나는 “재활” 그러니까 다시 살아 움직여야 하는 환자가 되었다. 오후 내내 잠에 취해있던 나에게 처음 보는 남자 간호사가 들어와 처음으로 TV를 켜주며 말했다.


“환자분, 그만 자요. 이제. 다리를 위로 들어보세요. 그렇게 말고 이렇게요. 제가 지난주 봤을 때보다 정말 많이 좋아지셨네요. TV 켜 드릴게요. 그만 자요.”


여전히 눈을 뜨기는 어려워 제대로 TV를 볼 수도 없었는데, 나는 TV 소리를 들으며 정말 그의 말대로 잠들지 않고 중환자실에서의 마지막 오후를 보냈다. “생생정보” “한국인의 밥상” “6시 내 고향” “일일드라마 수지맞은 우리” 등을 들었는데, 아직도 그 순서와 내용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TV를 틀어주고 나간 간호사는 다시 들어오지 않았고, 거의 5시간 정도를 같은 자세로 누워 듣다 보니 너무 정신 사납고 머리가 아파서 TV를 끄고 싶어졌다. 그러나 침대에 묶여 있는 손은 손가락만 간신히 리모컨에 닿을 듯 말 듯했다. 끙끙거리며 몸부림을 쳐도 도저히 맘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이렇게 TV도 스스로 끄지 못하는데, 내일 일반병실로 옮긴다고?'


낙담하며 털썩 누워 웅웅 거리는 소리를 그냥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중환자실에서의 마지막 밤도, 여지없이 콧줄 때문에 밤새 힘들었다. 잠을 자고 싶었지만, 콧줄이 너무 불편해서 괴로웠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유동식을 중단하고 싶어도, 본인들이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인 것 같았다. 계속 교수님께 확인 요청을 했으니, 조금만 더 참으라는 얘기만 반복했다. 난 자꾸만 구역질이 나와서, 양손이 침대에 묶인 채로 침을 흘리며 구역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은 결국 유동식을 그만 넣을 순 없다는 답을 했나 보다. 들어가는 속도를 줄여주겠다는 답을 듣고 또 지쳐서 포기하고는 잠이 들었다.


'이대로 일반병실로 가도 괜찮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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